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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402742
한자 姜式儁
영어음역 Kang Sikjun
이칭/별칭 미중,소은
분야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경상남도 진주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임경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효자
아버지 강흥운(姜興雲)
어머니 하씨
강필준
출신지 진주(晋州)
성별
생년 1734년연표보기
몰년 1800년연표보기
본관 진주(晋州)
미중(美仲)
소은(素隱)

[정의]

조선 후기의 효자.

[가계]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미중(美仲), 호는 소은(素隱). 조선 중기의 무신인 강덕룡(姜德龍)의 6대손이고, 아버지는 매은(梅隱) 강흥운(姜興運)이다. 어머니는 인재(忍齋) 하윤관(河潤寬)의 딸이다.

[생애]

1734년 진주시 대곡면 설매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자질이 남달라 6~7세에 문리를 알았으며 효성 또한 뛰어났다. 한말 선비 이도묵은 강식준의 학문은 경(敬)으로 위주로 삼고 행동은 효를 근원으로 삼았으니 다 천성에서 나온 것이다라고 했다. 평생을 고향에서 학문 정진에 힘쓰다가 1800년 6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일찍이 면우 곽종석은 "옛날 진양의 소은 강공은 향리에 은거하면서 학문을 독실히 하고 의로운 행동으로써 고을에서 명성이 드러났다. 궁벽한 시골에서 평생을 살면서 부귀 현달로써 이름을 세상에 드러내기보다는 잠기어 묵묵히 세상을 마쳤다." 라고 하면서 그의 행적이 전해지지 않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했다.

[활동사항]

아버지가 병들었을 때 똥을 맛보고 병세를 진단하였으며, 손가락을 잘라 피를 드렸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였다. 시묘살이를 할 때 햅쌀을 올리고자 하였으나 고기가 없는 것을 걱정하니, 까마귀가 8개의 계란을 물고 와서 놓고 갔다고 한다.

또 어떤 흰옷을 입은 사람이 꿩을 묘에 올라가는 길에 두고 가기도 하였으며, 얼었던 눈이 저절로 녹기도 하고, 예전에는 물이 없었던 우물이 여막 옆에 있었는데 강식준이 시묘살이를 하자 샘물이 솟아 나왔으며, 시묘살이가 끝나자 그 물이 다시 말랐다고 한다. 당시 마을 사람들은 형제가 부모에게 효도하고 우애가 깊은 것을 보고 ‘효우가(孝友家)’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학문과 사상]

강식준은 옛 성현들의 학문을 그대로 본받아 따르고자 했다. 1799년 가을에 진주목사 윤노동이 진주향교에 여러 선비들을 모아놓고 향음주례를 행하면서 강식준에게 주관하도록 할 만큼 그의 학문적 위치는 뛰어났다.

『심경』, 『근사록』 등의 책을 손수 손자에게 써 주면서 "우리 집안은 가난해 농사를 지을 논밭이 없다. 너희들은 글을 읽어 이를 체득하여 실천하는 것이 할아버지의 뜻이다."라고 할 만큼 학문에 남다른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저술]

강식준의 문집인 『소은집(素隱集)』에는 자손들에게 남긴 글과 자신이 평생 지키고자 했던 「근태명(勤怠銘)」, 「서좌우(書座右)」 등의 글이 많이 실려 있다. 또 「논학(論學)」, 「논심(論心)」, 「변화기질(變化氣質)」 등의 학문적 깊이를 알 수 있는 글도 다수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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