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27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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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姜應台 |
영어음역 | Kang Eungtae |
이칭/별칭 | 성재(誠齋),대림(大臨)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백태남 |
성격 | 문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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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 강관(姜琯) |
어머니 | 곡부공씨(曲阜孔氏) |
성별 | 남 |
생년 | 1495년 |
몰년 | 1552년 |
본관 | 진주(晋州) |
자 | 대림(大臨) |
호 | 성재(誠齋) |
제향 | 임천서원(臨川書院) |
대표관직 | 사헌부지평승문원교리|한성부서윤|예빈시첨정|순천도호부사|홍문관부수찬 |
[정의]
조선 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대림(大臨), 호는 성재(誠齋). 아버지는 현감을 지낸 강관(姜琯)이며, 어머니는 곡부공씨(曲阜孔氏)이다.
[생애]
1495년(연산군 1)에 출생하여 1532년(중종 27) 37세의 나이로 늦게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그 이듬해 예문관에 들어갔다. 1541년부터 성균관전적과 사헌부지평을 역임하였고, 1544년에는 지평으로 있으면서 경연(經筵)에서 훈구파의 횡포가 심하다고 통박하여 그들의 미움을 사서 파면되어 낙향하였다. 1546년 명종 즉위 후에는 승문원교리, 한성부서윤, 예빈시첨정 등을 거쳐 순천도호부사에 전임되었다. 1549년(명종 4)에는 홍문관부수찬으로 다시 기용되었으나 병으로 부임하지 못하고 1551년 밀양도호부사로 보임되어 재직 중 1552년(명종 7) 병사하였다. 어려서부터 효행이 지극하였고, 주위 사람들로부터 순박하고 장자다운 기품이 있다고 칭송을 들었다.
[상훈과 추모]
경상남도 진주시 금산면 가방리의 임천서원(臨川書院)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