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2913 |
---|---|
한자 | 鄭鑌毅 |
영어음역 | Jeong Binui |
이칭/별칭 | 극명(克明),무호옹(無號翁)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태용 |
성격 | 효자 |
---|---|
아버지 | 정식 |
어머니 | 진양인 하덕원의 딸 |
형 | 정선의 |
아우 | 정종의 |
아내 | 안동인 권찬의 딸 |
출신지 | 진주(晋州) |
성별 | 남 |
생년 | 1770년 |
몰년 | 1838년 |
본관 | 해주(海州) |
자 | 극명(克明) |
호 | 무호옹(無號翁) |
[정의]
조선 후기의 효자.
[가계]
본관은 해주. 자는 극명(克明), 호는 무호옹(無號翁). 농포(農圃) 정문부(鄭文孚)의 후예이다.
[생애]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의하면, 어버이를 섬김에 효성스럽고 형을 받드는 데에는 우애로웠다. 정빈의의 형이 안주(安州)의 임소(任所)에 있을 때에 갑자기 풍비증(豊痺症) 때문에 여러 달 동안 고통이 심했다. 정빈의가 산에 올라가서 백일 동안 기도를 올리자 병이 조금 나아졌다. 벼슬을 사양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사람들이 모두 감탄하였다. 늦게야 학문을 시작하여 세상에서 중히 여기는 바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