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29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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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麟祥 |
영어음역 | Jeong Insang |
이칭/별칭 | 인백(仁伯),구암(龜岩)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태용 |
[정의]
조선 중기의 선비.
[가계]
본관은 진주. 자는 인백(仁伯), 호는 구암(龜岩)이다. 진사 정기(鄭起)의 아들이다.
[생애]
성품이 온순하고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여 약관의 나이로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문하에 취학하였다. 조식이 훈계하여 이르기를 "몸을 사랑하기를 옥과 같이 하고 마음을 가지기를 물과 같이하며 병 때문에 스스로 게을리하지 말라"고 하였다. 어버이를 섬김에 효성을 다하였는데, 임진왜란 때 한꺼번에 부친상과 모친상을 당하였다. 이때 왜병이 갑자기 나타나 마을을 불태우자 부모의 관을 안고 슬피 우니 왜적도 그의 효성에 감동되어 군사를 거두어 물러갔다고 한다.
왜란이 끝난 뒤에 두문불출하고 학문에 정진하면서 후학을 가르쳤으며, 선비들과 더불어 덕천원록(德川院錄)을 수정하였다. 수직으로 가선동지(嘉善同知)에 올랐다.
[상훈과 추모]
후에 사림들이 청계사(淸溪祠)에 제향을 논의하던 중 사우가 훼철되어 이루어지지 못했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인물조(人物條)」에 이름이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