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29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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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燦益 |
영어음역 | Jeong Chanik |
이칭/별칭 | 명숙(明叔),삼모재(三慕齋)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태용 |
[정의]
조선 후기의 선비.
[가계]
자는 명숙(明叔), 호는 삼모재(三慕齋). 학포(學圃) 정훤(鄭暄)의 후손이다.
[생애]
생몰년은 미상. 영조 재위(1725~1777) 전후에 활동하였다.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며, 외모가 단정하고 일찍이 학문에 눈을 떠 당시의 학자 병계(屛溪) 윤봉구(尹鳳九)에게서 수학했다.
윤봉구가 찬한 「천명인심도(天命人心圖)」를 보고 크게 감화받았으며, 미호(渼湖) 김원행(金元行)과 역천(櫟泉) 송명흠(宋明欽)과 함께 도의의 교분을 삼고 여러 사우(士友)와 같이 상소하여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과 동춘(同春) 송준길(宋浚吉) 두 선현을 문묘에 배향할 것을 청하였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그 행적이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