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3010 |
---|---|
한자 | 曺潤孫 |
영어음역 | Jo Yunson |
이칭/별칭 | 장호(莊胡)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장경준 |
성격 | 무신 |
---|---|
아버지 | 조숙기(曺淑沂) |
어머니 | 정유의(鄭攸宜)의 딸 |
본관 | 창녕(昌寧) |
시호 | 장호(莊胡) |
대표관직 | 웅천현감|평안도병마절도사|한성부판윤|병조판서 |
[정의]
조선 전기의 무신.
[가계]
본관은 창녕. 할아버지는 울진현령 조안중(曺顔中)이고, 아버지는 대사헌을 지낸 조숙기(曺淑沂)이다. 어머니는 정유의(鄭攸宜)의 딸이다.
[생애]
진주 송곡리에 살았다. 1502년(연산군 8) 무과에 급제하고, 이듬해 선전관이 되었다. 1506년 유빈(柳濱)·윤상로(尹漡老) 등과 협의하여 연산군을 폐하려 하였으나 박원종(朴元宗)·성희안(成希顔) 등의 반정이 먼저 성공하였으므로 공신녹권(功臣錄券)만을 받았다.
1509년 웅천현감으로 있을 때 남해안 일대에 침입한 왜구를 격파하였으며, 1512년 갑산부사로 야인을 토벌하였다. 이듬해 함경도병마절도사로 부임하였으며, 1523년 야인이 여연(閭延)·무창(茂昌)에 침입하여 점차로 마을을 형성하려 하는 것을 몰아냈다. 1528년 평안도병마절도사로 부임하여 다시 야인의 침입을 격퇴하였다.
1533년(중종 28) 한성부판윤, 1536년 병조판서를 거쳐 좌찬성에 이르렀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장호(莊胡)이다. 『진양지(晋陽誌)』권3「인물조(人物條)」에 이름이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