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30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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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河璿 |
영어음역 | Ha Seon |
이칭/별칭 | 사윤(士潤),송대(松臺)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최판도 |
성격 | 학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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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 하경휘(河鏡輝) |
어머니 | 성주이씨 이창의 딸 |
아내 | 강경윤의 딸 |
출신지 | 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 효자리 효동 |
성별 | 남 |
생년 | 1583년 |
몰년 | 1652년 |
본관 | 진주(晋州) |
자 | 사윤(士潤) |
호 | 송대(松臺) |
[정의]
조선 중기의 선비.
[가계]
본관은 진주. 자는 사윤(士潤), 호는 송대(松臺). 환성재(喚醒齋) 하락(河洛)의 손자로, 아버지는 매헌(梅軒) 하경휘(河鏡輝)이며 어머니는 성주이씨이다.
[생애]
1583년(선조 16) 진주 수곡면 효자리 효동에서 출생하여 어릴 때부터 총명함이 뛰어나고 재주와 기개가 월등했다. 임진왜란을 맞아 조부와 부친이 상주성에서 순국하자 어린 나이로 왜적의 눈을 피해 시신을 모셔와 고향인 수곡에 안치하고 홀로 된 모친을 봉양하면서 지극 정성으로 받들었다. 왜란 후에는 선대의 문적들이 모두 흩어져버린 것을 안타깝게 여겨 글들을 모아 『세고(世稿)』를 편찬했다. 1613년(광해군 5) 진사시에 합격한 후 사헌부 감찰, 훈련원 주부에 제수되었으나 고향으로 돌아와 자연을 벗삼으며 학문에 정진하다 1652년(효종 3) 별세하였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인물조(人物條)」에 이름이 올랐다.
[저서]
『송대문집(松臺文集)』1권이 있다. 일찍이 인조 때 영의정을 지낸 백헌(白軒) 이경석(李景奭)은 하선의 문장을 보고 “기개는 보통사람들의 부류가 아니다”라고 했다.
[묘소]
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 효자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