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31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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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河載文 |
영어음역 | Ha Jaemun |
이칭/별칭 | 의윤(義允),동료(東寮)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최판도 |
성격 | 선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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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 하경운(河慶運) |
어머니 | 은진임씨 임찬원(林纘源)의 딸 |
아내 | 진양정씨 정주빈(鄭周贇)의 딸 |
출신지 | 진주(晋州) |
성별 | 남 |
생년 | 1830년 |
몰년 | 1894년 |
본관 | 진양(晋陽) |
자 | 의윤(義允) |
호 | 동료(東寮) |
[정의]
조선 후기의 선비.
[가계]
본관은 진양. 자는 의윤(義允), 호는 동료(東寮). 송정(松亭) 하수일(河受一)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하경운(河慶運)이며 어머니는 은진임씨(恩津林氏)로 임찬원(林纘源)의 딸이다. 부인은 진양정씨로 정주빈(鄭周贇)의 딸이다.
[생애]
1830년(순조 30)에 출생하여 8세에 친상을 당하고 15세 때는 조부인 부용담(芙蓉潭) 하필룡(河弼龍)의 상을 당하면서도 법도에 한치의 어긋남도 없어 많은 사람들이 감탄을 했다고 한다. 장성하여서는 밤을 새워 독서를 하였으며, 하동 모한재(慕寒齋)에서 경서를 읽으면서 성현들의 가르침을 배웠다. 모한재에 있을 때 월촌(月村) 하홍달(河弘達)의 지도를 받으며 선비들과 학문을 연마하였고 『겸재유집(謙齋遺集)』 간행에도 참여했다. 당시 조선이 서양과 수교를 하면서 문물이 유입되는 것을 보고 이 나라는 장차 나라가 아닐 것이다. 금수의 나라가 될 것이라며 위정척사의 생각을 굳건히 가지고 있었다. 당시의 유학자 월고 조성가(趙性家)와 함께 진주향교에서 행한 향음주례에 참석해 『대학』 등을 강론했으며 산천재(山川齋)에서 『남명집』을 수정하는 일에 함께 참여를 했다.
한때 과거에 뜻을 두고 향시에 합격을 하기도 했으나, 세상과 뜻이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는 과거를 포기하고 자기 수양을 목표로 학문에 정진하였다. 40여 년간 지극한 효성으로 어머님을 모시고 살았다. 1871년(고종 8) 모친상을 당하여 예에 따라 상을 치르고 고향 진주시 수곡면 사곡으로 돌아와 학문을 연마하다 1894년 별세하였다. 고향 정자에 동료(東寮)라는 호를 지어 편액을 붙였으니, 일찍이 주자가 서료(西寮)라고 이름붙인 데에서 취한 것이다.
[묘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