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31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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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河鎭伯 |
영어음역 | Ha Jinbaek |
이칭/별칭 | 자추(子樞),국담(菊潭)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수덕 |
성격 | 선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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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 하일호(河一浩) |
출신지 | 진주 단목 |
성별 | 남 |
생년 | 1741년 |
몰년 | 1807년 |
본관 | 진양(晋陽) |
자 | 자추(子樞) |
호 | 국담(菊潭) |
[정의]
조선 후기의 선비.
[가계]
본관은 진양(晋陽). 자는 자추(子樞), 호는 국담(菊潭). 죽와(竹窩) 하일호(河一浩)의 아들이다.
[생애]
어릴 때부터 재주가 남달랐다. 소년시절에는 문충공 하륜(河崙)의 재실인 오방재(梧坊齋)에서 글을 읽으며 포부를 키워나갔다. 부모가 병이 났을 때는 5개월 동안 탕약을 받들면서 한 치도 예에 어긋나지 않았으며, 상을 당해서는 3년 동안 부모가 살아있을 때와 같은 마음으로 예를 치러 주위의 칭송이 자자했다.
또한 집안 일 등으로 바쁜 가운데서도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1790년(정조 14) 부모의 명으로 진사시에 응시해 합격을 했으나, 이후로 과거에 뜻을 두지 않고, 자연을 벗 삼아 학문에 정진하고자 집 주변에 조그마한 못을 파고 못 주위에 국화를 심고 호를 국담(菊潭)이라고 지었다. 주자 등 선현들이 남긴 책들을 읽으면서 마음을 수양하였는데, 뛰어난 자질로 부귀공명을 구하기보다는 은둔하는 선비로서 일생을 마치고자 했던 것이다. 1807년 향년 67세로 세상을 떠났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인물조(人物條)」에 이름이 올랐다.
[저술]
문집으로 『국담문집(菊潭文集)』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