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3168 |
---|---|
한자 | 河必淸 |
영어음역 | Ha Pilcheong |
이칭/별칭 | 천기(千期),태와(台窩)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성문 |
성격 | 문신 |
---|---|
아버지 | 하세응(河世應) |
성별 | 남 |
생년 | 1701년 |
몰년 | 1758년 |
본관 | 진양(晋陽) |
자 | 천기(千期) |
호 | 태와(台窩) |
[정의]
조선 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진양(晋陽). 자는 천기(千期), 호는 태와(台窩). 진사 지명당(知命堂) 하세응(河世應)의 아들이다.
[생애]
1738년(영조 14)에 38세로 문과에 급제해 성균관 전적, 주부, 직장 등의 벼슬을 지내고 승문원정자 벼슬로 승진을 했으며, 외직으로는 찰방 등의 벼슬을 지냈다. 당시 조정은 당쟁으로 시끄러웠다. 일찍이 부친인 지명당 하세응은 장희빈의 신원을 청하는 상소를 올리는 등 당시 집권층인 노론과 대립하였다. 미관말직의 벼슬보다는 학문에 뜻을 둔 하필청은 벼슬을 그만두고 낙향을 결심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여생을 보냈다.
하필청이 죽자 면우(俛宇) 곽종석(郭鍾錫)이 묘비의 비문을 지었는데 ‘자기 마음 바깥에 있는 것은 초개와 같이 가볍게 여기고, 자기 마음속에 있는 것은 태산보다 무겁게 생각했다( 自外者 輕如一芥 而在我者 重於泰嶽)’라고 기록해 놓았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이름이 올랐다.
수정일 | 제목 | 내용 |
---|---|---|
2011.07.11 | 2011년 한자(문) 재검토 작업 | 곽종석(郭鍾錫)이 묘비의 비문을 지었는데 자기 마음 바깥에 있는 것은 초개와 같이 가볍게 여기고, 자기 마음속에 있는 것은 태산보다 무겁게 생각했다(자외자 경여일개 이재아자 중어태악(自外者 輕如一芥 而在我者 重於泰嶽))라고 기록해 놓았다. ->곽종석(郭鍾錫)이 묘비의 비문을 지었는데 “자기 마음 바깥에 있는 것은 초개와 같이 가볍게 여기고, 자기 마음속에 있는 것은 태산보다 무겁게 생각했다(自外者 輕如一芥 而在我者 重於泰嶽)”라고 기록해 놓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