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33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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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王諧 |
영어음역 | Wang Hae |
이칭/별칭 | 신라 왕해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
시대 | 고려/고려 전기 |
집필자 | 백태남 |
[정의]
고려 전기의 문신.
[가계]
예빈경을 지낸 왕유(王惟)의 아들이다.
[생애]
젊어서 문과에 급제하였고, 이후 승진하여 감찰어사가 되어 원칙대로 법을 집행하여 칭송을 받았다. 뒤에 진주부사가 되어 선정을 베풀었으며, 동경유수(東京留守)가 되어 경주로 전임하게 되었으나 진주 백성들의 청으로 1년을 더 유임하였다. 성품이 강직하고 청백하였을 뿐 아니라 절도가 있었으므로 모든 일을 백성에게 이롭게 하였다. 1246년(고종 33) 별세하자 모두가 나라의 귀중한 보배를 잃었다 하여 슬퍼하였다.
[활동사항]
고종 때 소부소감(小府少監)으로 경상도를 안찰할 때 갖가지 청탁을 물리쳤으며, 당시의 권신 최우(崔瑀)의 아들 최만종(崔萬宗)·최만전(崔萬全) 형제가 쌀 50여 만석을 백성에게 놓아 이식을 받아들이면서 가혹하게 백성들을 착취하여 국가에 조세도 제때 내지 못하게 되자, 세금을 바치기 전에 사채 빚을 독촉하는 자는 처벌하겠다는 포고문을 내려 이들 형제의 횡포를 견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