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35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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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晋陽郡 |
영어공식명칭 | Jinyang-gun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우연섭 |
[정의]
경상남도 서남부에 1994년까지 존속했던 행정 구역.
[개설]
1895년 지방 제도 개정에 의해 진주부 진주군이 되었다가, 1896년에 13도제(道制) 실시로 경상남도 진주군이 되면서 경상남도의 도청 소재지가 입지하게 되었다. 1914년 군·면 통폐합에 의해 진주군의 44개 면이 17개 면으로 통합되고, 함안군의 3개 면이 2개 면으로 폐합되어 진주에 편입되었다. 1925년 경상남도 도청이 부산으로 이전되고 부산의 성장이 가속화되면서 진주는 예전의 지위와 위세가 축소되었다. 1968년 10월 1일에는 군 청사를 진주시 상봉서동 1018-3번지의 임시 청사로 이전했다. 1970년 5월 16일에는 군 청사를 진주시 상대동 284번지[동진로 155] 신축 청사로 이전했다. 1995년 1월 1일 진주시와의 통합 당시 면적 644.23㎢이었고, 인구는 76,000명이었다.
[변천]
통일신라시대에는 지금의 진주 지방을 청주(菁州)라 불렀다. 757년 강주(康州)로 개칭하였다가 혜공왕 때 다시 청주로 환원하였다. 940년(고려 태조 23) 다시 강주가 되었고, 995년(고려 성종 2) 진주(晋州)로 개칭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진양대도호부(晋陽大都護府)로 승격되었다가 1402년 진주목(晋州牧)으로 환원되었다. 1896년 13도제 실시에 따라 진주군으로 개편되었다. 1931년에 진주면이 읍으로 승격하고, 1939년에 도동면과 거평면을 편입하여 진주읍이 부로 승격하면서 나머지 지역이 진양군으로 개칭되었다. 법률 제4774호(1994. 8. 3공포)에 의거 1995년 1월 관내의 내동면(奈洞面), 정촌면(井村面), 금곡면(金谷面), 문산면(文山面), 진성면(晉城面), 일반성면(一班城面), 이반성면(二班城面), 사봉면(寺奉面), 지수면(智水面), 대곡면(大谷面), 금산면(琴山面), 집현면(集賢面), 미천면(美川面), 명석면(鳴石面), 대평면(大坪面), 수곡면(水谷面)의 16개면이 진주시와 통합되어 새로운 진주시로 개편되었다.
통합 이전 진양군의 1980년대 이후 인구 변화를 살펴보면 1980년 10만 805명, 1985년 8만 3503명, 1990년 7만 2986명으로 계속 감소했으며, 1980~90년에는 27.6%의 인구 감소 현상을 보였다. 인구 이동에 있어 전출 인구의 대부분은 통합 이전 진주시로 유입되었는데, 이는 대부분 학생들이 진주시 소재의 학교로 진학했기 때문이다. 가구수도 인구수처럼 1980년 2만 99가구, 1985년 1만 9,973가구, 1990년 1만 9,631가구로 줄어들었으며, 1991년에는 2만 467가구로 약간 늘었다. 남녀 성비는 99:100으로 여성이 약간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