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륭
-
○ 하경휘(河鏡輝) : 자는 공곽(公廓)이요, 호는 매헌(梅軒)이며 환성재(喚醒齋) 하락(河洛)의 아들이다. 만력(萬曆) 기축년(선조 22년, 1589)에 사마시에 올랐다. 성품이 지극히 효성스러워서 어버이를 섬김에 뜻을 어기지 않았다. 임진란 때 환성공(喚醒公)이 상주성(尙州城)으로 달려가는데 겨우 북문에 이르러 적병이 갑자기 닥쳤다. “여기가 나의 죽을 곳이다. 너는 빨리 나가...
-
경치가 빼어나 구경하기 좋은 명소. 진주는 자연환경적으로 남강이 굽이쳐 흐르고, 역사적으로 사천·남해·산청·함양·거창·합천·의령 등 경상남도 서부지방의 전통적 문화 중심지로서 관광자원이 풍부하다. 서부 경상남도의 중심인 진주시는 남해고속국도, 통영~대전간 고속국도, 경전선 철도, 사천공항 등이 입지한 교통의 요충지로서 역사적으로 경제·사회·문화·교육의 중심권을 형성하고 있다. 진주...
-
○ 진주성(晋州城) : 지금의 진주성은 삼국시대에는 거열성, 통일신라시대에는 만흥산성이라 하다가 고려시대 이래로는 촉석성 또는 진양성이라 하였다. 1963년 1월에 사적 제118호로 지정되었다. 진주성의 첫 축성 내력은 현재로서는 알 수 없으나, 초기에는 토성이었던 것을 고려 우왕 5년(1379)에 석성으로 개축하여 오늘에 이른 것이다. 조선 선조 24년(1591)에는...
-
진주목 관아의 기녀로서 임진왜란 때 진주성이 왜적에게 함락되던 계사년(1593) 6월 29일 촉석루 아래 우뚝한 바위(의암, 義巖)에서 왜장을 끌어안고 강물로 뛰어들어 죽은 순국의 여인. 논개의 사실을 맨 먼저 기록한 이는 유몽인(柳夢寅)[1559~1623]이다. 그는 인조반정 후 양주 서산에 숨어 지내다 광해군 복위를 꾀한다는 무고에 얽혀서 아들과 함께 서인 정권의 손에 죽임을...
-
조선 후기의 효자. 본관은 해주. 자는 후지(厚之), 호는 역효당(亦囂堂). 정대륭의 후손이며 정상점의 아들이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3「효행조(孝行條)」에 의하면, 이학(理學)에 잠심(潛心)하여 세상에서 명유(名儒)라 일컬었으며, 효행으로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증직되고 정려(旌閭)를 받았다....
-
조선 후기의 효자. 본관은 해주. 자는 옥여(玉汝), 호는 만성재(晩省齋)·부암(敷庵). 승지 정대륭(鄭大隆)의 후손이다. 진주시 용암리 출신이다. 지극한 효성으로 동몽교관을 증직받고 정려(旌閭)되었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3「효행조(孝行條)」에 이름이 올랐다....
-
경상남도 진주에 세거하는 성씨의 하나. 해주정씨(海州鄭氏)는 고려 신종[1197~1204] 때 문과에 급제하여 전법정랑(典法正郞) 시중평장사(侍中平章事)의 관직을 지낸 정숙(鄭肅)을 시조로 하고 있다. 선계(先系)는 문헌이 전해오지 않아 상고할 수가 없으나, 해주(海州) 수양산(首陽山) 아래에서 세거했던 사족(士族)으로 고려 때에 정씨로 사성(賜姓) 받았다고 전한다. 시조 이후 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