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석
-
○ 조기(趙琦) : 을축년(인조 3년, 1625)에 와서 정묘년(인조 5년, 1627)에 갔다. 아래 유승서(柳承瑞)에 이르기까지는 병사(兵使)로써 목사(牧使)를 겸했다. ○ 허완(許完) : 정묘년(인조 5년, 1627)에 와서 무진년(인조 6년, 1628)에 갔다. ○ 박상(朴瑺) : 무진년(인조 6년, 1628)에 와서 경오년(인조 8년, 1630)에 갔다. ○ 이익(李榏) :...
-
○ 양역(梁嶧) : 호는 운곡(雲谷)이요, 본관이 남원(南原)이니 대사간(大司諫) 양사귀(梁思貴)의 셋째 아들이다. 기유년(세종 11년, 1429)에 사마시에 합격해 연일진병마첨절제사(延日鎭兵馬僉節制使)를 지냈다. 온화하고 부드러우며 공손하고 검소한데다가 뜻이 멀고 행실이 높아서 안과 밖에서 추중(推重)되었다. 단성(丹城)으로부터 진주 운곡(雲谷)에 옮겨와서 살았다. ○ 하공효(河...
-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진주에서 순절한 의기(義妓). 본관은 신안(新安). 아버지는 주달문이고, 어머니는 허씨이다. 전라북도 장수 출신이다. 1593년(선조 26) 진주성전투에서 전사한 경상우도병마절도사 최경회(崔慶會) 혹은 충청병사 황진(黃進)의 각별한 사랑을 받았다는 등 여러 가지 주장이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 임진왜란 중이었던 1593년 6월 김천일, 황진, 최경회, 고종후...
-
인간의 육체를 표현매체로 삼아 사상·감정·감각·정서 등을 율동적으로 표출하는 행위. 무용에는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동시에 내포되어 있다. 시와 음악은 시간과, 회화와 조각은 공간 속에 존재한다고 할 때 그 차이를 보다 확실히 할 수 있다. 발레처럼 공간의 패턴이 중심이 되는 경우도 있으며, 탭댄스처럼 시간적 리듬이 중시되는 것도 있다. 따라서 여러 예술 분야 중에서도 무용이 갖고...
-
진주목 관아의 기녀로서 임진왜란 때 진주성이 왜적에게 함락되던 계사년(1593) 6월 29일 촉석루 아래 우뚝한 바위(의암, 義巖)에서 왜장을 끌어안고 강물로 뛰어들어 죽은 순국의 여인. 논개의 사실을 맨 먼저 기록한 이는 유몽인(柳夢寅)[1559~1623]이다. 그는 인조반정 후 양주 서산에 숨어 지내다 광해군 복위를 꾀한다는 무고에 얽혀서 아들과 함께 서인 정권의 손에 죽임을...
-
의암(義巖) 논개(論介)를 기리는 의암별제에서 행해지는 노래와 춤. 의암별제는 매년 음력 6월에 길일(吉日)을 택하여 기생들만이 치른 대규모 의식으로, 악공을 제외하고 제관(祭官) 등 모든 의식을 여자(기생)들이 주관하는 점과 선비들의 음악인 정악(正樂)을 사용한다는 점을 특징으로 하는 행사이다. 조선시대 종묘(宗廟)에서 역대 임금을 제사지낸 종묘대제(宗廟大祭)나 문묘(文廟)에서...
-
임진왜란 때 적장을 안고 남강에 투신하여 순국한 의기 논개(論介)의 사당. 의기사는 1721년(경종 원년) 경상우병사로 부임한 최진한이 진주지역민 등의 요구와 유몽인(柳夢寅)의 『어우야담(於于野談)』을 근거로 논개에 대한 포상을 조정에 건의하였고, 1740년(영조 16) 경상우병사 남덕하의 건의가 받아들여져 건립되었다. 1779년(정조 3)에 경상우병사 홍화보(洪和輔)가 낡고 부서...
-
1885년 이후 경상남도 진주 출신 작곡가들의 주요 가곡과 진주와 관련된 음악작품을 모아 엮은 악보집. 『진주가곡집(晋州歌曲集)』은 1885년 이후 경상남도 진주 출신 작곡가들의 주요 가곡과 진주지역 관련 곡들을 모아 엮은 악보집이다. 총 203곡의 작품을 수록하였으며, 지역민들의 애향심을 고취하고 음악사적 자료를 정리하려는 취지에서 기획되었다. 2005년 6월 10일 경상남도 진...
-
기녀(妓女)들을 중심으로 하여 노래와 춤을 관장하던 기관인 진주교방(晋州敎坊)을 중심으로 형성된 예술. 진주의 교방예술은 진주교방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교방은 고려·조선시대 기녀들을 중심으로 하여 노래와 춤을 관장하던 기관이다. 교방청(敎坊廳)은 본래 중국 당나라 때 궁중 내에 설치되었던 것으로, 관기들과 악공들에게 가무악(歌舞樂)을 가르쳤다. 이러한 중국 교방의 전통은 우리나라...
-
진주의 소리는 진주지역의 교방을 중심으로 전승되던 가곡, 시조 등 소리와 동편제를 중심으로 한 판소리. 진주는 일찍부터 물산이 풍부하여 토착부호들이 많아 전통문화의 수요가 많았기 때문에 우리의 전통문화가 성행했다. 또한 진주는 역사적으로 행정과 군사의 중심지여서 일찍부터 교방이 설치되어 관 주도의 문화가 전파되었고, 가무가 발달하여 많은 명창이 배출되었다. 진주는 신라시대부터 서부...
-
경상남도 진주 지방의 교방에서 추어지던 일종의 놀이춤. 원래 「포구락무」는 궁중에서 행했던 춤과 노래 중 하나로 공을 구멍에 던져 넣는 놀이를 표현한 것이다. 진주포구락무는 채구(彩毬)를 구문(毬門)의 풍류안(風流眼)에 던져 넣는 놀이를 음악과 무용으로 형상화한 궁중정재가 진주권번에서 지역화 된 춤으로서 고종[재위 1863~1907] 때 진주부사를 지냈던 정현석의 『교방가요』에서...
-
처용설화에서 비롯된 탈을 쓰고 추는 향악정재. 신라 헌강왕 때의 처용설화로부터 기원된 것으로,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걸쳐 궁중정재와 구나의(驅儺儀)의 뒤에 추는 향악정재이다. 주로 궁중에서 거행되는 세말의 나례에 공연되었으나, 민간의 처용희도 있었다. 의식무로서의 기능이 유지되기는 했으나, 놀이로서의 성격이 확대되었다. 영조 이후에는 중단되었다가 1920년대에 『악학궤범』에 의거해...
-
경상남도 진주지역에서 행하여지는 지역 축제에 대한 개관(槪觀). 축제는 기본적으로 경제적인 부담이 따르지만, 그로 인한 이윤 창출 역시 가능하다. 축제가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것은 스펙터클이 펼쳐지는 시공간에서 저절로 기쁨과 신명에 도취되는 흐뭇한 경험과 감동이 있기 때문이다. 축제의 장에서는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억압과 구속, 부족감, 상대적인 박탈감을 떨쳐버릴 수 있기 때문에 축제...
-
조선 후기 공연되었던 향악정재의 하나로 초패왕 항우(項羽)와 한 고조 유방(劉邦)의 초(楚)와 한(漢)나라 사이의 승부를 정재화한 무극. 사마천의 『사기』「항우본기」에 기록된 중국 진나라 말기의 초한승부에 연원을 두고, 이들의 ‘홍문연’(鴻門宴) 고사를 의방(依倣)하여 이 장면만을 정재화한 것이다. 이러한 항장무는 진주의 교방에도 전하여져, 진주목사를 역임한 정현석이 지은 『교방가...
-
황창(黃昌)의 얼굴을 본뜬 가면을 만들어 쓰고 추는 검무. 신라의 7세 소년이었던 황창랑이 뜻을 품고 백제에 들어가 칼춤을 추어 이름을 날렸는데, 백제왕이 이 소문을 듣고 불러들여 칼춤을 청하자 이 틈을 타서 백제의 왕을 찔러 죽였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춤이다. 황창랑을 ‘관창’으로 보는 설이 있다. 이 춤은 본래 신라에서 만들어져 천년을 전하여 온 것으로서, 사람들은 이를 우리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