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식
-
○ 성여신(成汝信) : 자는 공실(公實)이요, 호는 부사(浮査)며, 우윤(右尹) 성두년(成斗年)의 아들이니 가정(嘉靖) 병오년(명종 1년, 1546)에 나서 만력(萬曆) 기유년(광해군 1년, 1609)에 생원과 진사의 두 시험에 합격했다. 일찍이 남명(南冥)과 구암(龜巖)의 두 문하에서 유학하여 경의(敬義)의 지결(旨訣)을 얻어듣고 종신토록 마음에 깊이 새겼다. 서책은 읽지 않은...
-
○ 강지특(姜智特) : 참의(參議) 강우(姜佑)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빼어난 자품이 있으니 고을 사람들이 ‘세상에 쓰일 재목’이라고 하더니 장성함에 이르러서는 문학과 절행으로 고을에 울렸다. 설창(雪牕) 하철(河澈)이 칭찬하여 이르기를 “영매하여 굳세고 뛰어난 것이 사람들의 경탄할 바”라고 했다. ○ 하경소(河鏡昭) : 자는 공극(公極)이요, 호는 동야(東野)니 각재(覺齋) 하항...
-
○ 하경휘(河鏡輝) : 자는 공곽(公廓)이요, 호는 매헌(梅軒)이며 환성재(喚醒齋) 하락(河洛)의 아들이다. 만력(萬曆) 기축년(선조 22년, 1589)에 사마시에 올랐다. 성품이 지극히 효성스러워서 어버이를 섬김에 뜻을 어기지 않았다. 임진란 때 환성공(喚醒公)이 상주성(尙州城)으로 달려가는데 겨우 북문에 이르러 적병이 갑자기 닥쳤다. “여기가 나의 죽을 곳이다. 너는 빨리 나가...
-
○ 남원양씨(南原梁氏) : 효열부(孝烈婦). 승의랑(承義郞) 진양(晉陽) 강수제(姜壽齊)의 아내요, 찰방(察訪) 양장(梁樟)의 딸이다. 집에 있을 때는 지극한 효성으로 부모를 섬겼다. 나이 15세에 어머니의 병이 위독하자 손가락을 끊어 입에 넣어서 소생할 수 있었다. 시집을 가서는 시부모를 섬김에 정성과 공경을 다했다. 지아비가 죽자 양씨가 이르기를 “내가 지하로 따르고자 하나 차...
-
○ 하륜(河崙) : 고려 말에 과거에 합격해 중앙과 지방에 역임하고 경세제민(經世濟民)의 재질이 있었다. 태종(太宗)을 도와 정사좌명공신(定社佐命功臣)이 되고 진산부원군(晉山府院君)으로 봉했으며 벼슬이 영의정에 이르렀고 시호를 문충공(文忠公)이라 했다. 『호정집(浩亭集)』이 있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나와 있다. ○ 하연(河演) : 하윤원(河允源)의 손자이다. 과거에...
-
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에 전해오는 강함(姜涵)의 효행에 얽힌 설화. 1980년 8월 6일 류종목, 빈재황이 경상남도 진양군 수곡면 사곡리 식실마을에서 채록하였으며, 1981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대계』8-3에 수록되었다. 제보자는 하성근[남, 70세]이다. 옛날에 강함이라는 외자 이름의 선비가 살고 있었다. 그는 남명 조식(曺植)[1501~1572] 선생의 문...
-
경상남도 진주시에 전해오는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선비정신에 관한 설화. 남명 조식 설화는 1622년 어우당(於于堂) 유몽인(柳夢寅)이 완성한 『어우야담(於于野談)』에 처음 실렸으며, 전통문화연구회가 2001년에 편찬한 『어우야담』에 국역하여 다시 수록하였다. 남명 조식은 두류산(현 지리산)의 산천재(山天齋)에서 성리학 연구와 후진 양성에 전념하여 명망이 높았고, 이에 여러 차...
-
경상남도 진주시 정촌면(井村면)에 전해오는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외도(外道) 이야기. 1980년 8월 11일 류종목, 빈재황이 경상남도 진양군 정촌면 화개리 모심마을에서 채록하였으며, 1981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대계』8-3에 수록되었다. 제보자는 강기중(남, 87세)이다. 진주 덕산(德山)에 살던 조식이 서울로 유람을 갔다. 한 오십 리를 걸어가니 해...
-
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晋州). 자(字)는 미백(美伯). 조선 중기의 무신인 강덕룡(姜德龍)[1560~1627]의 6대손으로 아버지는 강흥운(姜興雲)이다. 어머니는 인재(忍齋 ) 하윤관(河潤寬)의 딸이다. 순박하고 온후하였으며, 행실을 지극히 하였다. 조선 후기의 학자인 하홍도(河弘度)[1593~1666]의 저서『겸재집(謙齋集)』의 내용 중에 하홍도가 북인인 정인홍(鄭仁弘...
-
진주지역에 있는 서원. 경상도 지역에 건립된 193개의 서원 중 경상남도 지역은 19개 군에 44개 서원이 건립되었는데, 그 가운데 진주지역에 해당되는 서원은 7개로 경상남도에서 가장 많다. 재실의 수에 있어서도 진주지역에 약 500여개가 분포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으며, 현재도 문중에 따라 새로 건립하고 있는 실정이다. 서원은 선현을 모시는‘사(祠)’와 제자를 교육하는‘재(齋)’에...
-
경상남도 진주시 가좌동 경상 대학교 도서관 고서실 문천각에 있는 조선 후기 책판. 경상 대학교 소장 『송암집(松嵒集)』, 『황암집(篁嵒集)』, 『농은집(農隱集)』 책판은 1891년에 송암 박제현(朴齊賢)과 그의 아우 황암 박제인(朴齊仁), 그리고 손자 농은 박도원(朴道元)의 문집으로 경상남도 함안에서 간행되었다. 후손 박인건(朴仁健)과 박용하(朴龍夏)가 문집 간행을 주도하였으며,...
-
조선 중기의 문신·의병장. 본관은 현풍(玄風). 자는 계수(季綏), 호는 망우당(忘憂堂). 황해도관찰사 곽월(郭越)의 아들이고, 남명 조식(曺植)의 외손이다. 1585년(선조 18) 문과에 급제하였으나 왕의 뜻에 맞지 않는 글귀 때문에 파방(罷榜)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 선조가 황해도 의주(義州)로 피난하자, 경상남도 의령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1592년 5월 경상남도 함안군을...
-
·임천서원(臨川書院) : 관방마을 중앙에 있는 서원으로, 조선조 숙종 28년(1702)에 신암(新庵) 이준민(李俊民), 성재(誠齋) 강웅태(姜應台), 부사(浮査) 성여신(成汝信), 창주(滄州) 하증(河憎), 조은(釣隱) 한몽삼(韓夢參)의 학덕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서원이었으나, 고종 때 대원군의 서원 혁파로 훼철되었다가 1937년에 복원되었다. 임천서원에 배향된 이준민은...
-
조선 전기의 학자 남명 조식의 사상과 학문을 연구하기 위한 기관. 조선 전기의 학자이자 교육자인 조식(曺植)[1501~1572]의 자는 건중(楗仲), 호(號)는 남명(南冥)이다. 경상도 합천(陜川) 출신으로, 벼슬을 하지 않았으나 영남학파의 거두이다. 1990년 8월 설립된 남명학연구소는 남명 조식의 사상과 학문을 연구하기 위한 연구기관이다. 남명학을 중심으로 한국 전통사상을 연구...
-
조선 전기의 문인 이정(李瀞)[1541~1613]의 시문집. 본관은 재령(載寧). 자는 여함(汝涵), 호는 모촌(茅村). 그의 증조부는 부제학을 지낸 이중현(李仲賢)이고, 아버지는 비인현감(庇仁縣監)을 지낸 이경성(李景成)이다. 그의 아버지는 남명 조식과 자주 왕래하였으며, 만년에는 모두 진양 원당(元塘)으로 이사하였다. 모촌 이정은 모은(茅隱) 이오(李午)의 5대손인데, 모은 이...
-
언어를 표현매체로 한 예술 및 작품. 진주의 역사가 오래된 만큼 진주 문학의 연원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유사』에 전하는 「욱면랑(郁面娘)의 성불 등천」이 있다. 이것은 진주를 배경으로 한 불교설화인데 수행과 정진의 깊이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한편의 장엄한 종교 문학이 되기도 한다. 고려와 조선시대에 걸쳐 여러 기록에서 진주를 문향(文鄕) 혹은 명시(名詩)의 고향이...
-
공동생활을 영위하는 인간의 조직화된 집단. 진주는 가야시대에 고령가야의 고도로 발전하기 시작하여,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거열성으로, 신라시대에는 거열주, 청주, 강주로 개칭되었다. 고려 건국 후 940년(태조 23년)에 처음으로 진주로 개칭되었으며, 983년(성종 2년)에 전국 12목 중의 하나인 진주목이 되었다. 1896년(고종 33년)에는 전국을 13도로 개편할 때 진주는 경상남...
-
조선 전기의 선비, 효자. 본관은 창녕(昌寧). 자(字)는 이선(而善)·흡여(翕如), 호는 매죽헌(梅竹軒). 아버지는 부사(浮査) 성여신(成汝信)이다. 1571년(선조 4)에 성여신의 장남으로 태어나 진주 대여촌에 살았다. 어릴 때부터 재주가 뛰어나 모촌(茅村) 이정(李瀞)[1541~1613]에게서 학문을 배웠다. 아버지와 스승은 모두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제자들이다. 노파(...
-
조선 중기의 학자.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공실(公實), 호는 부사(浮査, 桴楂)·야로(野老). 우윤을 지낸 성두년(成斗年)의 아들로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우고 충절을 지킨 성여충(成汝忠)과 성여효(成汝孝)가 그의 형이다. 1546년(명종 1) 출생하여 1632년(인조 10) 86세로 별세하였다. 조식(曺植)의 문인으로 일찍부터 문명을 떨치다가 1609년(광해군 1) 63세로 사...
-
조선 전기의 선비. 본관은 밀양(密陽). 자(字)는 군필(君弼), 호는 무송(撫松). 아버지는 참봉(參奉)을 지낸 손광후(孫光後)이며, 어머니는 진주유씨다. 오곡(梧谷) 손수령(孫壽齡)의 후손이다. 1531년(중종 26) 경상남도 진주에서 태어나 진주 이하리(離下里)에 살았다. 남명(南明) 조식(曺植)의 문인으로 평생토록 벼슬하지 않고 처사(處士)로 지내면서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
조선 중기의 학자 최영경(崔永慶)[1529~1590]에 관한 사실을 모아 편찬한 실기(實記). 1700년(숙종 26)에 양천익(梁天翼)이 수우당 최영경에 관한 사실을 모아 정리하여 펴낸 책이다.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고제(高弟)인 최영경이 기축옥사(己丑獄事)에 무고(誣告)되어 옥사한 이후 100여년이 지난 후 선생의 증손 최정석(崔廷奭)이 수우당 선생의 글들이 참화와 병란에...
-
조선 전기의 선비. 본관은 거창, 자는 사훈(士勳)이다. 진주 백곡리에 살았다. 기질이 헌앙(軒昻)하였고, 맑고 고고함으로 자신을 지켰다. 학문에 힘써 배우기를 즐겼다. 또한 뒤늦게 남명 조식(曺植)의 문하에 들어갔는데 조금의 교만함도 없었다. 조식이 그를 칭찬하여 “이 사람은 천성이 맑고 고고하다. 아는 것과 식견이 통달하고 분명하다. 비록 시와 예를 아는 이름난 유학자라도 사훈...
-
조선 전기의 선비. 자는 사운(士雲)이다. 『진양지(晋陽誌)』권3「인물조(人物條)」에 따르면 양응룡(梁應龍)은 그 천성이 속되지 않고 뛰어나 사람들과 함부로 교유하지 않았다고 한다.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문하에 출입하며 학문을 익혔다. 진주 운곡(雲谷)에 살았다고 전한다. 진주에는 남명 조식의 학통을 이어받은 선비들이 많은데, 양응룡도 그 가운데 한 명으로 조선시대 진주의 학...
-
경상남도 진주에 세거하는 성씨의 하나. 여양진씨는 고려 인종 때의 장군인 진총후(陳寵厚)를 시조로 한다.「여양진씨대동보」에 의하면 진총후는 고려 예종조에 호분위 대장군을 지내고, 인종 때 이자겸의 난을 토평하는데 공을 세워 신호위 대장군(神虎衛大將軍)에 오르고 여양군에 봉해졌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여양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1450년 전후 진식(陳寔)[1519~1...
-
조선 중기 영남사림으로서 남명학파를 이룬 성리학자 조식. 조식(曺植)의 생졸년은 1501(연산군 7)~1572(선조 5)이며, 본관은 창녕, 자는 건중(楗仲)이며, 남명은 그의 호이다. 어떤 위대한 인물이 역사에 출현하는 데에는 역사적 전통과 지리적 특성이 바탕이 된다. 남명 역시 조선 초기 이후 사림파(士林派) 학자들이 형성해온 학문적 연원과, 지리산을 중심으로 한‘경상우도(慶尙...
-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의 의병. 본관은 함양. 자는 재일(栽一). 『진양속지(晋陽續誌)』에 의하면, 남명 조식(曺植)의 문하에서 학문을 익혀 진사에 급제하였다.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초유사 김성일(金誠一)의 막하에서 왜적과 싸우다 불화살[火箭]에 맞아 전사하였다....
-
경상남도 진주에 세거하는 성씨의 하나. 시조 김덕지(金德摯)는 신라 경순왕의 둘째 아들이다. 935년 경순왕이 고려 태조에게 투항하려 할 때 극력 간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마의태자를 따라 금강산으로 들어갔다고 하나 그의 행방에 대해서는 자세하지 않다. 그 후 세계(世系)가 실전(失傳)되고, 김덕지의 14세손 김환(金環)이 고려 때에 벼슬이 삼중대광(三重大匡) 영도첨의사(領都僉...
-
공자(孔子)를 개조(開祖)로 하는 전통시대의 대표적인 사상. 유교의 교리는 곧 인의(仁義)와 도(道)와 수기(修己), 치인(治人)에 귀결된다. 『시경』, 『서경』, 『주역』, 『예기』, 『춘추』의 오경(五經)과 『논어』, 『맹자』, 『중용』, 『대학』의 사서(四書)는 유교의 중요한 경전이다. 공자 이후 유교가 천하에 행하여져 여러 학파와 함께 일어났으나 증자(曾子), 자사(子思)를...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재령(載寧). 자는 여함(汝涵). 이경성(李景成)의 아들이다. 남명 조식(曺植)의 문하였으며, 1597년 정유재란 때에는 의령현감으로서 경상우도병마절도사 김응서(金應瑞)와 함께 의령에 침입한 나베시마 휘하의 왜군을 격파하였으며, 1602년 상주목사 뒤에 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1592년(선조25) 임진왜란 때 함안군수 유숭인(柳崇仁)의 휘하에서 소모관(召...
-
1641년 간행된 이정의 시문집. 『귀암집(龜巖集)』은 1641년(인조 19)과 1749년(영조 25) 및 1902년(고종 39) 등 세 차례에 걸쳐 간행되었다. 진주 동산리 간암 박태형 가문 소장 『귀암집』은 1641년에 간행된 초간본이다. 2011년 4월 28일 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513호로 지정되었다. 귀암(龜巖) 이정(李楨)[1512~1571]은 조선 전기 중종과 명종...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자수(子修), 호는 신암(新菴). 참봉을 지낸 이공량(李公亮)의 아들이며, 영남의 대학자인 조식(曺植)은 그의 외숙이다. 1524년(중종 19)에 태어나 1549년(명종 4)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홍문관정자에 제수되었다. 1554년 사간원 정언이 되었고, 이후 홍문관수찬사헌부지평 등 청요직에 있으면서 당시의 권신 윤원형(尹元衡)...
-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의 의병. 본관은 영일(迎日). 호는 옥봉(玉峰). 고려 말 충신 문충공 정몽주(鄭夢周)의 후예이다. 경상북도 영일 출신으로, 평생 충의로써 나라를 구하는 데 힘썼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가재를 털어 창의하여 최기필(崔琦弼)을 도와 왜적을 토벌하는 데 앞장섰다. 당시 최기필은 의병을 일으켜 관군과 의병의 왜적 토벌작전을 지원하다 제2차...
-
조선 전기의 역학자·선비. 자는 이남(以南)이다. 1558년(명종 13)에 생원 시험에 합격하였다. 진주 진성면 동산리 월정마을에 살았다 하여 사람들이 동산옹(東山翁)이라고 불렀다. 효성이 지극했으며, 이름을 숨기고 재주를 세상에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우람한 체구에 소탈한 성격이었으며, 세상에서 알아주지 않자 부귀영화에 초연하여 스스로 놀림감이 되기도 했다고 한다. 재기가 탁월하...
-
경상남도 진주 정강서원(鼎岡書院)에서 봉축(奉祝)하는 9현에 대한 기록과 9현의 저술, 서원에 관계된 기록을 모은 책. 『정산지』는 진주 유생인 박지서가 1747년(영조 23)에 편찬했으나 그 뒤 속록(續錄)을 덧붙여 1753년에 완성하였으며, 정조 말에 이르기까지 내용이 계속 추가되었다. 체제는 서(序), 목록(目錄), 구선생행록(九先生行錄), 정강서원저술(鼎岡書院著述), 발(跋...
-
조선 중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인백(仁伯), 호는 구암(龜岩)이다. 진사 정기(鄭起)의 아들이다. 성품이 온순하고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여 약관의 나이로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문하에 취학하였다. 조식이 훈계하여 이르기를 "몸을 사랑하기를 옥과 같이 하고 마음을 가지기를 물과 같이하며 병 때문에 스스로 게을리하지 말라"고 하였다. 어버이를 섬김에 효성을 다하였는데,...
-
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 1392년(태조 1) 진주를 진양이라 하고 태조현비의 내향이므로 목을 높여서 진양대도호부라 개칭, 진양대도호부사를 두었다. 1402년(태종 2) 진양을 진주로 고치고 대도호부를 목으로 개칭하였다. 1413년(태종 13) 지방제도의 대대적 개편 때 진주는 목으로서 정3품의 목사가 배치되고, 그 아래 판관(종5품)과 교수(종6품...
-
조선 전기의 학자.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건중(楗仲), 호는 남명(南冥). 본가는 삼가판현(三嘉板峴)[지금의 경상남도 합천지역]에 있었고, 토동(兎洞)은 외가이다. 아버지는 조언형(曺彦亨)으로 승문원판교(承文院判校)를 지냈으며 강직하기로 이름이 높았다. 어머니는 인천이씨(仁川李氏)로 충순위(忠順衛) 이국(李菊)의 딸이자 좌의정(左議政) 최윤덕(崔潤德)의 외손녀였다. 조식은 이...
-
절대(絶對)의 초인간적인 신을 숭배하여 선악을 권계하고 행복을 얻고자 하는 행위. 인간에게 종교가 필요한 이유는 인간이 스스로 한계를 갖는 유한한 존재라는 자각에서 기인한다. 특히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사후세계에 대한 불안감이 매우 크기 때문에 전지전능(全知全能)하다고 믿는 절대자에게 의탁하여 현세에서는 안심입명(安心立命)을 추구하고, 사후세계에서는 구원을 희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
조선 후기 진주 유학자 하성의 시문집. 『죽헌선생문집(竹軒先生文集)』의 저자 하성의 자는 자경, 호는 죽헌이다. 본관은 진주로, 사간 하진보에 입양되어 최영경(崔永慶)에게 수업을 받았다. 임진왜란 때는 곽재우(郭再祐)를 좇아 화왕산성에 출전하기도 하였다. 광해군 때에는 인목대비와 영창대군에 대한 그릇된 처사에 대해 정온(鄭蘊)과 함께 상소를 올리기도 하였다. 죽헌 하성[1571~1...
-
조선 전기의 선비. 본관은 여양(驪陽). 자는 경직(敬直), 호는 백곡(栢谷). 청백리 진유(陳猷)의 증손이다. 아버지 부제학 진식(陳寔)이 간신 김안로(金安老)의 죄를 극언하고 화를 피하여 진주로 내려왔다. 원래 진식은 진극경의 당숙이며, 생부는 생원 진정(陳定)이다. 효자로 이름을 남긴 진인(陳寅)의 아버지이다. 1546년(명종 1) 진주 백곡촌에서 태어나 마동에서 살았다. 약...
-
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단목리에 있는 책판. 이 책판의 저자 창주(滄洲) 하징(河澄)[1563~1624]은 정인홍의 문인으로 남명 조식의 제자들에게 인정을 받아 1606년에는 덕천서원의 원장으로 역임하였으며 남명의 작품을 간행하는 것을 주도하였으며 1620년에는 『진양지』를 최초로 편찬하였다. 창주집 책판은 1897년 12월에 진주의 오방제에서 목활자로 간행되었던『창주선생유사서』를...
-
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 사곡리에 있는 서원. 1610년(광해군 2)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제자인 하항(河沆)을 모시기 위해 대각사를 세웠다. 이후 손천우, 하응도, 김대명, 이정, 유종지, 하수일 등 일곱 명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위패를 모시고 매년 음력 3월, 9월 중정일에 향사하고 있다. 1869년(고종 6)에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18년 복원하여 오늘에...
-
경상남도 진주시 금산면 가방리(加芳里)에 있는 조선 중기의 누각(누정) 건물. 진주를 중심으로 한 경상우도(慶尙右道) 학자들이 모여 학문을 닦던 장소였다. 부사정(浮査亭)의 ‘부사(浮査)’는 부사 또는 야로(野老)로 불려지던 성여신(成汝信)[1546~1632]의 호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성여신의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공실(公實), 호는 부사·야로로 남명 조식(曺植) 선생의 문...
-
진주 지역의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며 정신 수양의 장소로 활동되었던 건축물인 누각과 정자. 일반적으로‘누정’은 사방을 멀리 넓게 볼 수 있도록 다락 구조로 높게 지어진 누각(樓閣)과 경관이 수려하고 사방이 터진 곳에 지어진 정자(亭子)를 함께 일컫는 말로 자연 속에서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며 정신 수양의 장소로 활용되었던 건축물이 대부분이다. 누정은 경관이 좋은 산이나 대(臺), 또는...
-
조선 중기의 문신 최영경(崔永慶)의 사제비(賜祭碑). 수우당(守愚堂) 최영경[1529~1590]은 정여립 옥사 사건에 연루되어 억울한 죽음을 당하였다. 옥사한 다음 해인 1591년(선조 24)에 그가 무죄였음이 판명되자, 1594년 선조가 최영경의 영령을 위로하기 위해 제문을 내려주었다. 1821년(순조 21) 이 제문을 돌에 새겨 비석을 세웠다. 원래 1821년 당시 남명(南冥)...
-
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 압사리에 있는 서당.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명종·선조 시기에 이조참판·대사성을 지낸 동강(東岡) 김우옹(金宇顒)을 모시기 위하여 1920년 지방 선비들이 건립하였다. 김우옹은 남명(南冥) 조식(曺植)과 퇴계(退溪) 이황(李滉)에게서 학문을 배워 문장과 도학으로 명망이 높았으며, 20권의 문집과 『속강목(續綱目)』36권을 지었다. 『속강목』은 동양사(東洋史)에...
-
조선 철종 13년(1862) 2월 14일 경상도 진주지역에서 일어난 최초의 반봉건 농민항쟁. 진주의 농민항쟁은 그동안 누적된 삼정문란과 경상도우병사 백낙신(白樂莘)의 가혹한 수탈에 저항하여 유계춘(柳繼春) 등이 농민들을 이끌고 일으킨 대규모 농민운동이었다. 엄격한 신분제와 자급자족적 경제체제에 바탕을 둔 지주(地主)·전호제(佃戶制)가 근간을 이루고 있던 조선왕조의 봉건적 사회체제는...
-
1990년 이후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발간되고 있는 일간지. 1989년에 권력과 지방 토호세력을 견제하며 자주, 민주, 통일을 지향하고자 진주시민 1,000명이 주주로 참여하여 만든 시민주 신문이다. 1989년 6월 진주YMCA가 주최한 ‘지방자치와 지역 언론의 역할’이란 주제의 시민논단을 계기로 창간 작업이 시작되었다. 논단에 참가한 사람들 중심으로 7월에 준비위원회가 결성되고 그...
-
조선 중기 17세기 초에 이루어진 진주의 사찬(私撰) 지리지. 지리지는 수록된 공간 범위에 따라 전국지인 여지(輿誌)와 지방지인 읍지(邑誌)로 나눌 수 있다. 또 지리지를 편찬한 주체에 따라 국가기관에서 만든 관찬(官撰) 지리지와 개인이 편찬한 사찬 지리지로 나누어진다. 전국 단위의 지리지로는 『동국여지승람』이 대표적이다. 조선 중기 이후 활발하게 편찬된 읍지는 전국 지리지인 『동...
-
진주지역의 농업 생산량을 높이기 위해 물을 공급하는 시설. 조선시대에는 덕천강 유역에서 수전농업(水田農業)이 크게 발달하였다. 적어도 덕천강 유역의 농업지대는 진주지방에서는 가장 큰 규모였을 것이다. 그래서 진주지방을 중심으로 전개된 역사적 사건과 활동을 해석하는 데 덕천강 유역의 수전농업에 대한 연구가 매우 중요하다고 하겠다. 조선 초기에 남명 조식(曺植)이 덕천강 상류 덕산에...
-
진주지역을 대표하는 진주성 촉석루, 남강 의암, 뒤벼리, 새벼리, 망진산 봉수대, 비봉산의 봄, 월아산 해돋이, 진양호 노을 등 여덟 곳의 비경. 진주는 예로부터 산과 들과 강을 끼고 있는 천혜의 고을이다. 조선시대 대표적 지리지인 『신증동국여지승람』「형승조(形勝條)」에는, 고려 명종 때의 문인 이인로(李仁老)[1152~1220]가 지은『파한집(破閑潗)』의 내용을 인용하여 “진양의...
-
경상남도 진주에 세거하는 성씨의 하나. 진주하씨의 시조는 고려 현종 때 상서공부시랑(尙書工部侍郞)을 지내고 평장사(平章事)에 추증된 하공진(河拱辰)이다. 그런데 하연(河演)[문효공(文孝公)]이 1451년(문종 1) 처음으로 족보를 내면서 그 서문에 ‘세계가 전함이 없고 『고려사(高麗史)』에 홀로 하시랑 공진이 있어 듣기에 기쁘나 동원(同源)이면서 분파가 확실치 않다.’고 한 것과...
-
하수일이 촉석루의 공사과정을 표현한 글. 진양하씨인 하수일(河受一)이 1583년에 진주성 내의 촉석루 중수 공사과정을 설명한 글이다. 하수일[1553~1612]은 남명 조식의 뛰어난 제자였던 각재 하항의 종질(從姪)이면서 그의 문인(門人)이기도 하다. 그는 촉석루가 중수되자 이를 기려서 기문을 짓게 되었다. 촉석루가 만들어진 역사적 배경과 여러 차례 헐리고 다시 세워진 사실을 알려...
-
조선 전기의 학자. 본관은 화순. 자는 효원(孝元), 호는 수우당(守愚堂). 아버지는 병조좌랑을 지낸 최세준(崔世俊)이고, 어머니는 평해손씨(平海孫氏)로 현감을 지낸 손준(孫濬)의 딸이다. 1529년(중종 24) 태어나 남명 조식(曺植)의 문인으로서 학문에 몰두하였다. 과거에 실패하고 1572년(선조 5) 경주참봉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고, 이후에도 조정으로부터 수령·도사·사...
-
조선시대의 선비. 본관은 진양. 호는 태촌(台村). 대사간(大司諫) 하결(河潔)의 후손이다. 성품이 강건하고 청고하여 스스로 수양에 힘썼다.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학문을 사숙하였으며 임진왜란 뒤에 향교를 증수하고 덕천서원을 수리하였다....
-
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첨경(瞻卿), 호는 양정재(養正齋). 아버지는 대사헌에 증직된 설총(雪聰) 하철(河澈)이며, 어머니는 고령박씨 박신(朴紳)의 딸이다. 1664(현종 5) 하동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부모에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가 돈독하였으며, 육례(六禮)에 통달하여 주위의 칭송을 받았다. 부친이 별세하자 예에 따라 상을 치르고 여막을 지켰는데, 모친에게 문안...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 자는 도원(道源), 호는 환성재(喚醒齋). 아버지는 생원 하인서(河麟瑞)이며 어머니는 풍양조씨 조협(趙協)의 딸이다. 부인은 동래정씨로 이조판서를 지낸 정광세(鄭光世)의 손녀이며 생원 정충집(鄭忠輯)의 딸이다. 1530년(중종 25)에 태어나 일찍이 학문에 뜻을 두고 남명(南溟) 조식(曺植)을 사사하였다. 1568년(선조 1) 진사시에 장원하여 왕...
-
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차해(次海). 할아버지는 창주(滄洲) 하증(河憕)이고, 아버지는 하달도(河達道)이다. 어머니는 함안조씨 주부(主簿) 조영기(趙英沂)의 딸이다. 부인은 전의이씨 승의랑(承議郞) 이전(李瑑)의 딸이다. 1630년 진주 단목리에서 태어났다. 9세 때 부친이 세상을 떠나자 모친을 지극 정성 봉양했고, 1660년에 생원(生員)시에 합격하였으나 과거에...
-
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송정(松亭) 하수일(河受一)의 9세손으로, 아버지는 예암(預庵) 하우현(河友賢)이며 어머니는 분성이씨(盆城李氏) 이익의 딸이다. 부인은 은율임씨 임박(林璞)의 딸이다. 1790년(정조 14)에 출생하여 10세 때 부친을 여의고 종조부인 함청헌(涵淸軒) 하이태(河以泰)에게 공부를 배웠다. 15세 때 어머니마저 별세하자 상례를 정성으로 치러 마을의 칭...
-
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응서(應瑞), 호는 지명당(知命堂). 송정(松亭) 하수일(河受一)의 현손이며, 하무(河楙)의 아들이다. 1661년(현종 2) 진주 수곡면 사곡마을에서 출생하였다. 재주가 뛰어나고 견문이 넓어 문장을 만드는 데 있어서 모두 경전의 뜻을 전하였다. 당시의 학자 식산(息山) 이만부(李萬敷)와 눌암(訥菴) 이광정(李光庭)과 더불어 학문과 도의를 논하...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 자는 태이(太易), 호는 송정(松亭). 고려 명신 하공진(河拱辰)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하면(河沔)이며 어머니는 함안조씨 조정견(趙庭堅)의 딸이다. 부인은 파평윤씨 윤언례(尹彦禮)의 딸과 밀성손씨 손천뢰(孫天賚)의 딸이다. 1553년(명종 8)에 출생하여 어릴 때부터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가르침을 가장 충실히 전수받은 종숙 각재(覺齋) 하항(...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 자는 원룡(元龍). 호는 영무성재(寧無成齋). 1540년(중종 35)에 태어나 남명 조식(曺植)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효심이 깊고 우애가 남달리 뛰어나 3형제가 한 집안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가난하게 살면서도 항상 웃으며 사람들을 대했다고 한다. 명종 때 진사시에 합격한 후 소촌도찰방(召村道察訪)이 되었고, 임진왜란 후에는 이원익(李元翼)의 천거로...
-
조선 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임보(任甫), 호는 모송재(慕松齋). 송강(松岡) 하항(河恒)의 아들이다. 어릴 적부터 가학(家學)을 이어받아 배우면서 실천에 힘썼다. 1613년(광해군 5)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며, 영남 사림을 이끌고 남명(南冥) 조식(曺植)을 문묘에 종사(從祀)할 것을 조정에 청하는 소를 올렸다. 후진 양성에 힘써 이름이 널리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
-
조선 중기의 효자·유림. 본관은 진주. 자는 천지(千之), 호는 이곡(梨谷). 월촌(月村) 하달홍(河達弘)의 아들이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3「효행조(孝行條)」에 하인수의 효행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타고난 인품이 순수하고 행동거지가 단정했으며 효심 또한 지극하고 학문의 깊이도 매우 뛰어났다. 어릴 적부터 필법이 출중했으며, 한결 같이 어버이의 뜻에 순응하여 털끝만큼도...
-
근대 개항기의 유학자, 독립운동가. 본관은 진주. 자는 복영(復榮), 호는 여인헌(與人軒). 송정(松亭) 하수일(河受一)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하성운(河聖運)이며 어머니는 재령이씨로 이인동(李麟東)의 딸이다. 부인은 광주노씨(光州盧氏)로 노이정(盧以挺)의 딸이다. 1860년(철종 11)에 출생하여 1894년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천품이 강직하고 효제충신을 생활의 신조로 삼았으며 부...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덕재(德哉), 호는 영모정(永慕亭). 하숙(河淑)의 아들이다. 진주 단지동에 살았다. 1555년(명종 10)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정자를 거쳐 1599년 주서가 되었다. 이듬해 세자시강원 사서가 되고 정언, 병조정랑, 지평, 예조정랑, 헌납 등을 역임했다. 1567년 선산부사가 되었고, 1573년(선조 6) 장령이 되었다. 그 뒤...
-
조선 전기의 유학자. 본관은 진주. 자는 호원(浩源), 호는 각재(覺齋). 1538년(중종 33)에 태어나 남명 조식(曺植)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1567년(명종 22) 사마시에 합격한 후 참봉에 임명되었으나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평소 효심이 지극하여 매일 새벽에 일어나 세수하고 머리를 깨끗이 빗질한 후 어머니 침실로 찾아들어 문안을 드리니, 여러 문인들이 말하기를, 『소학』의...
-
조선 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자상(子常), 호(號)는 송강(松岡). 안주목사 하우치(河禹治)의 증손이고, 아버지는 생원(生員) 하위보(河魏寶), 어머니는 사천이씨(四川李氏)이다. 아내는 참의(參議) 정륜(鄭綸)의 딸 진주정씨(晋州鄭氏)이다. 어린 시절부터 성리학에 전념하였을 뿐 아니라, 부모 섬기는데 효성이 지극하여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어머니 상(喪)을 당하여 애...
-
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한경(漢卿), 호는 일헌(一軒). 집의를 지낸 하진(河溍)의 아들이다. 1634년(인조 12)에 출생하여 나이 13세에 허목(許穆)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으며, 성년이 되어서는 조선 중기 진주지역의 학자인 하홍도(河弘度)의 문하에 출입하면서 남명 조식(曺植)의 학문을 사숙하였다. 인조반정(仁祖反正) 이후 덕천서원(德川書院)을 중심으로 남인계열...
-
경상남도 진주시 미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동향(東向) 마을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동향은 남명 조식의 ‘송인숙(送寅叔)’이란 시에 ‘사명동향군서향(寺名東向君西向)’ 이라는 구절에서도 찾아볼 수 있으며, 향양리의 여러 자연마을 중 가장 오래된 마을로 짐작된다. 1914년 진주군 미천면 진교동, 장죽동, 개심동, 동향동을 통합하여 향양리(向陽里)라 하였다. 향양리는 동서 및 북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