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승안(姜承顔) : 경진년에 합격했다. ○ 하경복(河敬復) : 좌찬성(左贊成)을 지냈고 시호는 양정공(襄靖公)이며 이하리(籬下里)에 살았다. ○ 정세창(鄭世昌) : 현감(縣監)을 지냈고 진성(晉城)에 살았다. ○ 하순(河恂) : 현령(縣令)을 지냈고 진성(晉城)에 살았다. ○ 하한(河漢) : 동지중추(同知中樞)를 지냈고 시호는 강장공(剛莊公)이다. ○ 강숙량(姜淑良) ○ 윤계(...
○ 강지특(姜智特) : 참의(參議) 강우(姜佑)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빼어난 자품이 있으니 고을 사람들이 ‘세상에 쓰일 재목’이라고 하더니 장성함에 이르러서는 문학과 절행으로 고을에 울렸다. 설창(雪牕) 하철(河澈)이 칭찬하여 이르기를 “영매하여 굳세고 뛰어난 것이 사람들의 경탄할 바”라고 했다. ○ 하경소(河鏡昭) : 자는 공극(公極)이요, 호는 동야(東野)니 각재(覺齋) 하항...
조선 후기의 학자. 본관은 태안(泰安). 자는 춘경(春卿). 호는 서계(西溪). 능허(凌虛) 박민(朴敏)의 증손으로, 아버지는 황해도수군절도사를 지낸 박창윤(朴昌潤)이며, 어머니는 진주하씨(晋州河氏)로 하달영(河達永)의 딸이다. 『영남인물고(嶺南人物考)』에 의하면, 1677년(숙종 3) 출생하여 1736년(영조 12) 59세의 나이로 별세하였다. 1706년(숙종 32) 사마시에 급...
조선 중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군직(君直), 호는 오오당(五吾堂). 괘곤정(掛壼亭) 하정(河瀞)의 아들이다. 두 번이나 향시에 합격했으나 최종적으로 예조에서 통과되지 못하였다. 이후 평생을 궁한 대로 살면서 검약을 지키고 학문에 몰두하였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이름이 올랐다. 『자경훈몽(自警訓蒙)』과 『궁격설역리(窮格說易理)』 등의 유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