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
-
경상남도 진주시 지역에 전해오는 매맞아 죽음으로써 죄업을 벗은 가마못의 구렁이에 관한 설화. 우리나라 민간신앙 중에 용신신앙(龍神信仰)이 예로부터 전해온다. 그 중의 하나가 용과 못된 구렁이에 관한 전설이다. 대개 구렁이를 죽이면 화를 당하는 것이 설화의 일반적인 내용인데, 가마못 구렁이는 오히려 황천에 보내 주어서 고맙다고 현몽한 것이 특이한 설화이다. 『한국구비문학대계(韓國口碑...
-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에 전해오는 길쌈을 하면서 부르는 노래. 1980년 8월 12일 정상박, 김현수가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 일심경로당에서 채록하였으며, 1981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대계』8-3에 수록되었다. 제보자는 이조이(여, 68세)이다. 이삼삼아서 옷해입고 무등산천 구경가자 무등산천에 괴사리는 이실맞고 사라졌네 에제오신 새선배는 시누방에 사라...
-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에 전해오는 매구 변신담. 1980년 8월 12일 정상박, 성재옥이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 서문경로당에서 채록하였으며, 1981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대계』8-3에 ‘코에 쥐가 들어서 매구가 된 여자’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었다. 제보자는 추상세(남, 당시 78세)이다. 그 후 2003년 안동준이 지식산업사에서 발행한 『진주 옛 이야기』에 다...
-
경상남도 진주시 진주성의 공북문 성벽에 새겨진 글귀. 공북문 성벽 석각은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본성동에 위치한 진주성의 북쪽문인 공북문(拱北門) 서쪽 성기에 새겨져 있는 글씨로 가로 80㎝, 세로 25㎝ 크기의 석재에 ‘康熙十九年山陰馬兵中哨泗川昆陽河東丹城咸陽六官一哨’라고 씌어져 있다. 이는 진주성의 수축을 담당하였던 구역의 표시를 나타낸다. 조선시대의 축성 기록을 살펴보면, “세...
-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에 있는 국립박물관. 경상남도 지역의 출토 문화재의 수집·보존에 앞장서고, 문화재 조사·연구·전시와 다양한 교육문화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문화의 특색을 조명하는 한편 지역문화의 중추적 역할을 다하고자 설립되었다. 국립진주박물관은 고고학적 연구·조사를 담당하는 국립 기관으로서, 경상남도 지역에 산재해 있던 각종 유물을 한자리에 모아 정리하고 가야의 문화를 소개하기...
-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 국립 진주 박물관에 있는 조선 전기 상산 김씨 집안에서 재산 상속과 관련하여 작성된 문서. 조선 시대에는 분재(分財)라고 일컬은 재산 상속 제도가 있었다. 크게 부모가 살아 있을 때 이루어진 분재와 부모 사후에 이루어진 분재로 나뉜다. 「김광려 삼남매 화회문기」는 1480년(성종 11) 2월 상산 김씨(商山金氏) 김정용이 죽은 후 자녀 삼남매가 한자리에 모여...
-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 국립 진주 박물관에 있는 조선 후기 선조가 김시민에게 내린 선무공신 교서. 공신 교서는 왕명 문서 가운데 문체나 재료 등에 있어 최고의 격식을 갖춘 문서였다. 사전에 공신 개개인에 맞는 문장을 별도로 짓게 하고, 교서 제작에 쓰일 비단 등도 별도로 마련한 뒤 서사를 맡은 관원이 정서하였고, 최종적으로 왕의 인장인 보인(寶印)을 찍어 발급하였다. 「김시민 선무...
-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 창렬사에 배향된 배위에 대한 내용을 새긴 석비. 창렬사의 동사와 서사에 배향된 인물에 대한 기록이므로 ‘동배서배비’라고 한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제1차 진주성전투(진주대첩)와 제2차 진주성전투(계사년 전투)에서 순국한 인물들 39기의 위패 중 창렬사의 동사와 서사에 배향된 인물에 대해 1833년(순조 33) 임금이 위무의 글을 지어 보냈다....
-
임진왜란 때의 의병. 본관은 태안(泰安). 자는 진경(眞卿).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관민(官民)이 흩어짐을 보고, 같은 고향의 뜻있는 선비들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이에 합세하여 그를 대장으로 추대하려 하였지만 사양하고 자신은 종사관(從事官)이 되어 군무를 정돈하며, 여러 곳으로 옮겨다니면서 군의 사기를 높였다. 1593년(선조 26)...
-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 국립 진주 박물관에 있는 조선 후기 무신 박진영의 유품. 박진영 장군 유품은 조선 후기 무신인 박진영(朴震英)[1569~1641]이 남긴 유품들로,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내인리의 밀양 박씨(密陽朴氏) 영동 정공파(令同正公派) 종손인 박성길(朴性吉)이 소장하고 있다가 2005년 후반부터 2006년 9월 9일까지 3회에 걸쳐 진주 국립 박물관에 기증하였다. 1...
-
경상남도 진주시에 전해오는 남녀 사이의 사랑을 노래한 애정요. 사랑 노래로 채록된 자료는 남녀 사이의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되지만, 구체적인 사설의 내용은 다르다. “비오소서 비오소서”로 시작되는 사랑 노래는 사랑하는 임이 가지 못하도록 비가 많이 내렸으면 좋겠다는 심정을 노래한 것이고, 이어지는 노래는 누추한 초가집이라고 임에게 오지 말기를 부탁하지만 우산과 갈모를...
-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에 있었던 조선시대의 관청 건물. 원래 관찰사는 각도에 1명씩 임명했던 조선시대의 지방장관(종 2품)을 말하는데 관찰사를 다른 말로 ‘감사’라고도 불렀기 때문에 관찰사가 있는 관청을 ‘감영’이라고 했다. 경상도관찰사는 조선시대 내내 대구(달성) 등 경상북도에만 주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경상남도에는 없었다. 그러나 조선 말기 경상도가 남북으로 나눠진 후 관찰사가...
-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에 있는 실크의 전시·판매 시설. 진주의 실크산업 부흥을 위해 중소기업청과 경상남도와의 협의 끝에 진주시 소재의 실크 제조업체들이 공동 브랜드인 (주)실키안을 만들고, 1999년 6월에 진주성 앞에 있는 문화관광센터 1층에 실크전시장을 설립하여 실크로 만든 제품들을 전시·판매하고 있다. 실크전시장에서는 다양한 진주 특산품들과 더불어 실크로 된 상품들을 상설 전...
-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에서 전승되는 우곡 정온의 충절을 담은 인물담. 1980년 8월 12일 정상박, 성재옥이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 서문경로당에서 채록하였으며, 1981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대계』8-3에 수록되었다. 제보자는 정문석(남, 당시 63세)이다. 이 내용은 『진양군사』, 『진주시사』 등에도 소개되어 있다. 우곡(隅谷) 정온(鄭溫)은 고려 조정에서...
-
조선 중기 진주 목사인 이상일(李尙逸)[1600~1674]의 선정을 기리는 비. 이상일은 1650~1654년에 걸쳐 진주목사를 지내면서 선정을 베풀었다. 보덕(輔德)으로 전임되어 진주를 떠나자, 1654년(효종 5)에 이상일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1973년에 옮겨와서 현재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 진주성 내 비석군 가운데 있다. 비의 제목은 ‘牧使 李尙逸 去思碑(목사 이상일...
-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 국립 진주 박물관에 있는 조선 전기 태조 이성계가 이제에게 내린 개국공신 교서. 고려에 이어 조선에서도 공신에게 교서와 녹권을 발급하는 제도가 지속되었다. 개국공신교서는 조선의 개국에 큰 공을 세운 공신들에게 각각 발급되었다. 「이제 개국공신교서」는 1999년 6월 19일 보물 제1294호로 지정되었으며, 2018년 6월 27일 국보 제324호로 지정되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에 있었던 금융기관. 조선식산은행(朝鮮殖産銀行)은 일제강점기인 1918년에 산업기관에 자금을 대출할 목적으로 설립된 특수은행이다. 실제적으로는 일제의 조선식민지화 산업을 지원하여 조선인에 대한 착취와 약탈을 감행하였고, 조선총독부 산하 최대의 금융정책기관으로 활동하다가 해방 후 한국산업은행에 흡수되었다. 진주지역에 있던 산업기관에 자금을 대출해 주기 위한 목적...
-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 국립진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중기의 유통식 화포. 우리나라에 보물로 지정된 중완구(中碗口)는 2점이 있다. 1점은 국립진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고, 다른 1점은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국립진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중완구는 경상남도 하동군 옥동면 동화리 산 57번지 등산길에서 우연히 발견되어 매장문화재발견신고를 거쳐 동년 12월 20일 당...
-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 국립 진주 박물관에 있는 조선 전기 화포. 지자총통(地字銃筒)은 1557년(명종 12) 3월 김해부(金海府)의 도회(都會)에서 장인 김연(金連)이 주조하였다. 조선군이 사용하던 화기 중 천자총통 다음으로 규모가 큰 화포이다. 보존 상태가 비교적 좋은 편이고, 국방 과학 기술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인정되어 1986년 3월 14일 보물 제862호로 지정되었다. 지...
-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에 있는 비각. 조선 말 가선대부 김상현(金尙鉉)의 정부인 연안차씨(延安車氏)와 그의 아들 전 의관(議官) 김정식(金正植)은 질병 등으로 재난을 당하고 있던 주민들을 구원해 주었다. 뒤에 주민들이 “마을이 재난을 입었을 때 참다운 정성과 물자를 풀어서 마을 사람들을 구해준 고마움을 기리기 위해” 모자의 시혜불망비(施惠不忘碑) 2기를 각각 1901년과 1907년...
-
조선시대 때 경상남도관찰사가 업무를 처리하였던 관아 영남포정사의 정문. 조선 광해군 10년(1618) 병사를 지내던 남이흥이 내성의 동쪽문을 고쳐 세우고 옆에 대변루(待變樓)를 새로 지었는데, 이것이 망미루의 본래 건물이다. 후에 1895년(고종 32)에 전국 8도제가 폐지되고 23부제로 시행됨에 따라 진주부가 설치되면서 진주관찰부의 선화당 관문이 되었다. 1896년에 전국을 13...
-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에 있는 사우.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왜적의 침입에 맞서 싸운 진주성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한 진주목사 김시민(金時敏), 창의사 김천일(金千鎰) 등 39위와 모든 군졸의 신위를 안치하기 위하여 1595년 경상감사 정사호(鄭賜湖)가 건립하였다. 1607년 창렬사라 사액되었고, 1712년(숙종 38) 병사 최진한(崔鎭漢)에 의하여 중수되었다. 김시민 목...
-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과 본성동에 위치한 진주성 내에 있는 누각. 호정 하륜이 지은 「촉석루기(矗石樓記)」에 의하면 남강 가에 뾰족뾰족한 돌들이 솟아 있는 까닭에 그 모습을 따서 누각의 이름을 촉석루라고 지었다고 하나, 다른 일설에 의하면 촉석산에서 돌을 캐다가 누각을 지었으므로 촉석루라고 하였다고도 한다. 진주성의 남장대 혹은 장원루라고도 불린다. 전자의 남장대라는 이칭에서는 지...
-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본성동에 있는 성. 진주성은 남강에 면한 단애상에 축조한 성으로 임진왜란 당시 김시민(金時敏) 장군이 왜군을 대파하여 임란삼대첩(壬亂三大捷) 중의 하나인 진주성대첩이 벌어진 곳이며, 1593년 6월 왜군의 재침 시에는 군·관민 6만이 최후까지 항쟁, 장렬한 최후를 마친 곳이다. 진주성은 일명 촉석성(矗石城)이라고도 하는데, 본래 백제 때는 거열성(居列城)이었...
-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본성동에 위치한 진주성 내에 있는 귀부. 진주성 내에 있는 호국의 종각 남쪽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전체 길이가 160㎝, 폭 140㎝, 높이 40~60㎝이다. 머리 부분에는 목 비늘이 새겨져 있고, 이빨을 조각하는 등 섬세하지만 등 부분에는 무늬가 없어 밋밋하다. 비좌의 크기는 75×15㎝이며, 귀부 자체는 4개의 발에 각각 발가락 3개씩, 그리고 꼬리를...
-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본성동에 위치한 진주성 내에 있는 벽돌기단. 건축물의 기단부를 벽돌로 쌓은 것으로, 원래는 경상남도 합천군 봉산면 죽죽리의 폐사지에 있던 것을 옮겨와 복원한 것이다.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본성동에 있는 진주성 내 박물관 앞에 위치하고 있다. 기단석 위에 일정 간격으로 높이 15㎝가량의 탱주(撐柱)를 세우고, 그 사이에 벽돌을 쌓은 다음 갑석을 덮었다. 사용...
-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 진주성 내에 있는 하마비(下馬碑). 하마비는 조선시대 종묘 및 궐문 앞에 세워놓은 비로 말을 타고 이곳을 지나는 사람은 누구든지 말에서 내려야 한다는 글이 적혀 있다. 진주는 1604년(선조 37) 이래로는 경상도 우병영, 1895년에는 진주관찰부, 1896년 이래로는 경상남도관찰사가 있던 곳이다. 이곳을 방문하는 수령 이하 모든 관리와 일반인은 말에서 내리...
-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에서 전승되는 여우의 폐해로 인해 진주성 동문을 막게 되었다는 설화. 진주성(晋州城) 동문 막은 유래 설화는 특정 지역에서 옛날에 일어났으리라고 믿어지는 사실을 설명해 주는 전설로 지역적 전설에 해당한다. 지역적 전설은 대부분 지방의 지리적 특징이나 명칭의 유래, 습관의 기원 등을 이야기한다. 또 전승 집단이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과 환경이 어떻게 하여 생...
-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 진주성의 서북쪽에 위치한 누각. 현판에는 진남루(鎭南樓)로 되어 있으나, 진주성의 북쪽에 위치하여 북장대로 불린다. 또한 내성의 북쪽 끝에서 내성과 외성에 주둔한 병사 모두를 지휘할 수 있어 공북루(拱北樓)라는 별칭이 생겼다. 1584년(선조 17) 목사로 부임한 신점(申點)이 처음으로 세웠다.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 167번지 진주성 서북쪽의 높은 언덕에...
-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에 있는 보건의료기관. 진주시민의 건강증진을 위한 질병예방과 치유활동을 위해 설립되었다. 1956년 8월 보건소법이 제정되어 1958년 10월 15일 진주시에 시립간이진료소 형태로 도동진료소(하대동)와 평거간이진료소(판문남동)가 설치되었다. 이후 1963년 4월 10일 진주시 보건소 설치조례가 제정되어 같은 해 9월 10일에 진주시 보건소가 개소하였다. 198...
-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에 있는 사회복지시설. 저소득계층의 자립능력을 지원하고, 종합적인 사회복지서비스를 제공하며, 노인의 건강증진·여가선용·교양·오락 등 노인의 복지 증진에 필요한 편의를 제공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늘어나는 노인인구의 증가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노인들에게 건전한 여가선용의 장소를 제공하기 위해 진주시 주관으로 1990년 2월 5일 진주시 종합사회복지관으로 개관하...
-
매년 개천예술제에서 함께 열리는 전국 단위의 사진 촬영 대회. 진주전국사진촬영대회는 경상남도 진주의 개천예술제와 함께 개최되는 행사로서, 한국사진작가협회 진주지부의 주관으로 열리는 전국 단위의 사진촬영대회이다. 1952년에 개최되었던 제3회 영남예술제(현 개천예술제)에서 사진부가 신설되었는데, 이것이 현재 진주전국사진촬영대회의 시발점이 되었다. 한국사진작가협회 진주지부는 1965년...
-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 국립 진주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전기 화포. 천자총통은 1555년(명종 10) 10월 장인 양내료동(梁內了同)이 주조한 것으로, 조선군이 조선 후기까지 사용하던 화기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화포이다. 1978년 12월 7일 보물 647호로 지정되었다. 청동으로 만든 유통식(有筒式) 화포이다. 포신(砲身)에 8개의 굵은 마디[竹節]와 손잡이 2개가 있다...
-
조선 전기의 선비. 본관은 삭녕(朔寧). 자는 명숙당(明叔堂). 고려 명종 때의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 최천로(崔天老)를 시조로 하고, 최유가(崔瑜價)를 중시조로 하는 삭녕최씨 후손이다. 아버지는 참봉 최수만(崔壽萬)이고, 어머니는 창녕성씨(昌寧成氏)이며, 부인은 진주강씨이다. 1554년(명종 9)경 당시 진주목 진성면 대사리에서 태어나 북면 사죽리 단지동으로 이사를 하여...
-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 국립 진주 박물관에 있는 문서첩. 최희량 임란 관련 고문서-첩보 서목은 정유재란 당시 고흥 현감 최희량이 상부에 보고한 문서들을 엮어 놓은 문서첩이다. 1979년 7월 26일 보물 제660호로 지정되었다. 1598년(선조 31) 3월부터 7월 사이 고흥 현감 최희량(崔希亮)[1560~1651]이 지휘 계통상 상급 기관인 삼도 수군 통제영과 전라 감영에 보고한...
-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 진주성 내에 있었던 사우. 1592년(선조 25)에 일어난 임진왜란 때 왜적의 침입에 맞서 싸운 진주성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한 진주목사 김시민(金時敏)의 신위를 모시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으며, 김시민의 신위는 창렬사(彰烈祠)주벽에 옮겨 모셨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에 있는 조선시대 석탑.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구양리에서 발견되어 탑 옆에 세워놓은 설명판에 '함양구양리 삼층석탑(咸陽九楊里 三層石塔)'으로 표기되어 있다. 현재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에 있는 진주성 내 국립진주박물관 앞에 위치하고 있어서 박물관 앞 석탑으로도 불리고 있다.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구양리의 옛 절터에서 발견된 것이라 전할 뿐 유적에 대한 자세...
-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 진주성 안에 있는 사찰. 고려 말 처음 건립될 당시의 이름은 내성사(內城寺)였다고 한다. 조선시대 숙종이 임진왜란 때 진주성 싸움에서 전사한 승병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호국사(護國寺)라는 이름을 내렸다. 고려 말기에 왜구(倭寇)의 빈번한 침입을 막기 위해 진주성을 고쳐 쌓고, 승병(僧兵)을 양성하기 위해 세웠다. 진주성 내 서장대와 창렬사 사이의 골짜기에 자...
-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본성동에 위치한 진주성 내에 있는 종. 1980년 12월에 선조들의 거룩한 호국의 얼을 계승, 선양하기 위하여 진주시민들의 뜻을 모아 제작하였다. 호국의 종 주조는 김철호(金哲怙)가 맡았으며, 처음에는 1972년에 준공된 촉석문에 걸었다. 그러나 종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자 촉석광장에 호국의 종각을 건립하여 보관하고 있다. 호국의 종각은 재일동포 최복순(崔福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