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
○ 강지특(姜智特) : 참의(參議) 강우(姜佑)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빼어난 자품이 있으니 고을 사람들이 ‘세상에 쓰일 재목’이라고 하더니 장성함에 이르러서는 문학과 절행으로 고을에 울렸다. 설창(雪牕) 하철(河澈)이 칭찬하여 이르기를 “영매하여 굳세고 뛰어난 것이 사람들의 경탄할 바”라고 했다. ○ 하경소(河鏡昭) : 자는 공극(公極)이요, 호는 동야(東野)니 각재(覺齋) 하항...
-
○ 최기필(崔琦弼) : 본관이 전주(全州)이다. 무과에 올라 봉사(奉事)가 되었더니 계사년(선조 26년, 1593)에 의병을 일으켜 진주성(晋州城)에 들어왔다. 병사(兵使) 최경회(崔慶會)가 임금이 피난한 곳으로 계문을 올리니 본주의 판관(判官)을 삼았다. 성이 함락되어 순절했는데 계해년(영조 19년, 1743)에 병조참의(兵曹參議)로 추증되고 창렬사(彰烈祠)에 모셨다. ○ 유함(...
-
○ 모순(牟恂) : 세종(世宗) 때에 과거에 급제해 벼슬이 좌사간(左司諫)에 이르렀다. 어머니의 종기를 빨아서 낫게 했고 또 어머니가 병들었을 때에 똥을 맛보았다. 일이 조정에 알려져서 정려(旌閭)되었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나와 있다. ○ 군만(君萬) : 광대이다. 그의 아버지가 밤에 호랑이에게 물려가자 군만이 하늘을 부르고 아침이 되기를 기다렸다가 활과 활촉을 가지...
-
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여중(汝中), 호는 매촌(梅村). 호조참의에 추증된 임계(臨溪) 강심(姜深)의 아들이다. 1560년(명종 27)에 출생하여 1627년(인조 5)에 별세한 무인으로, 일찍이 무예를 익혀 같은 시대에 무인으로 활약한 정기룡(鄭起龍)·주몽룡(朱夢龍)과 함께 ‘3룡(三龍)’으로 불렸다. 1583년(선조 16) 무과에 급제하였고, 1592년 임...
-
인간이 공동생활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재화(財貨)를 획득하고 이용하는 활동. 일반적으로 경제산업이란 인간의 공동생활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사회관계와 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 전반을 가리킨다. 보통, 농업·공업·수산업·임업·광업 등을 지칭하나, 넓게는 생산과 직접 관계되지 않는 상업·금융업·서비스업 등도 포함시킨다. 진주시는 경상남도 지역의 중심도시로서 산청군·의령군·함안군·고성군·...
-
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집자리 및 무덤에서 다량 출토된 토기. 청동기시대 민무늬토기의 한 양식으로 아가리[구연부(口緣部)] 주위에 구멍무늬[공렬문(孔列文)]를 일정한 간격으로 배열한 토기이다. 공렬문토기는 굵은 사립이 많이 섞인 점토를 태토로 깊은 바리모양[심발형(深鉢形)]을 기본으로 한 토기로서 아가리 주변에 공렬문을 배치하고 있다. 구멍을 내는 방법은 완전히...
-
조선 중기의 문신·의병장. 본관은 현풍(玄風). 자는 계수(季綏), 호는 망우당(忘憂堂). 황해도관찰사 곽월(郭越)의 아들이고, 남명 조식(曺植)의 외손이다. 1585년(선조 18) 문과에 급제하였으나 왕의 뜻에 맞지 않는 글귀 때문에 파방(罷榜)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 선조가 황해도 의주(義州)로 피난하자, 경상남도 의령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1592년 5월 경상남도 함안군을...
-
자동차·기차·배·비행기 등을 이용하여 사람이 오고 가거나 짐을 실어 나르는 일. 진주시는 동쪽으로 마산시 및 함안군과 접해 있고, 서쪽으로 하동군, 남쪽으로 사천시 및 고성군, 북쪽으로는 산청군 및 의령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경상남도 서부 지역의 중심 도시이다. 역사적으로 진주시는 경상남도 서부 지역의 문화·정치·경제의 중심지이고, 교통의 결절지이다. 진주시는 영남과 호남을 연결...
-
조선 중기의 문신·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본관은 언양(彦陽). 자는 사중(士重), 호는 건재(健齋)·극념당(克念堂). 아버지는 진사 김언침(金彦琛)이다. 1573년(선조 6) 은일지사(隱逸之士)로 천거 받아 군기시주부가 되고, 그 뒤 용안현감과 강원도, 경상도의 도사를 지냈다. 사헌부지평의 자격으로 정치의 폐단을 논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임실현감으로 좌천되었다. 그 뒤 담양부사, 한...
-
사람이나 차들이 편히 다닐 수 있도록 만든 비교적 큰 길. 진주는 역사적으로 서부 경상남도의 문화·정치·경제의 중심지이고, 도로 교통의 결절지이다. 진주시는 영남과 호남을 연결하는 동서 방향으로 남해고속국도와 남북을 연결하는 통영~대전 간 고속국도가 교차하고 있고, 2번 일반국도·3번 일반국도·33번 일반국도가 통과하는 영남과 호남 간 그리고 중부 지역과 남부 지역 간의 교통 요충...
-
공동생활을 영위하는 인간의 조직화된 집단. 진주는 가야시대에 고령가야의 고도로 발전하기 시작하여,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거열성으로, 신라시대에는 거열주, 청주, 강주로 개칭되었다. 고려 건국 후 940년(태조 23년)에 처음으로 진주로 개칭되었으며, 983년(성종 2년)에 전국 12목 중의 하나인 진주목이 되었다. 1896년(고종 33년)에는 전국을 13도로 개편할 때 진주는 경상남...
-
마을의 수호신으로 산신을 모셔놓은 신당. 우리민족 최초의 산신은 단군이다. 왜냐하면 『삼국유사』「고조선조」에 따르면 단군이 아사달에 들어가서 산신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사달은 한문으로 조산(朝山)으로 번역된다. 따라서 산신은 일반적으로 남성이면서 나이가 많은 노인으로 형상화된다. 그러나 드물기는 하지만 『삼국유사』에 나오듯이 박혁거세와 알영부인의 어머니인 선도산(仙桃山) 신모(神母...
-
조선시대의 효자. 원래 순창(淳昌)의 사인(士人)이다. 호남에서 옮겨와 진주 덕산(德山)에서 살았다. 사람됨이 기개가 크고 효성스러웠다. 아버지 상을 당해서는 3년 동안 죽만 먹었으며, 밤낮으로 슬퍼하였다. 효행이 조정에 알려져서 마을에 정문(旌門)을 내려주었으며, 그 효행이 『진양지(晋陽誌)』권3「효행조(孝行條)」에 기록되어 있다....
-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회원(會元). 기묘명현(己卯名賢) 양팽손(梁彭孫)의 후손이며, 대사성을 지낸 양응정(梁應鼎)의 아들이다. 1561(명종 16)에 태어나 성혼(成渾)의 문하에서 수업하였으며,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경서(經書)에만 전심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적과 끝까지 항전하다가 진주성전투에서 성...
-
경상남도 진주시와 전라남도 순천시 일대에서 공동으로 개최되는 연극예술 축제. 영호남연극제는 지역적으로 인접해 있으며 문화예술의 정서 또한 유사한 남도문화권을 중심으로, 경상남도 진주시와 전라남도 순천시에서 동서화합과 지역연극의 발전을 위하여 2000년부터 격년제로 개최되는 연극예술 축제이다. ‘훈훈한 정, 작은 만남’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있으며, 영호남 지역의 연극 교류와 더불어...
-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논개에 관한 유흥요. 이 노래는 본래 진주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이나 세월이 지나면서 전국적으로 전파되어 전승되고 있다. 전파 범위가 확장된 만큼 노랫말도 다양하게 전개되었는데, ‘진주 기생 의암이가···’로 시작되는 노랫말이 가장 원형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이 노래의 정확한 발생 연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노랫말에 ‘진주 기생 의암’이라는 호...
-
임진왜란 때 진주에서 있었던 두 차례의 큰 전투 조선시대에 일어난 임진왜란 때 진주성전투는 두 차례 있었다. 임진년(1592년, 선조 25년) 10월(이하 음력)의 전투를 제1차진주성전투라 하고, 이듬해 계사년(1593년) 6월의 전투를 제2차진주성전투라 부른다. 제1차진주성전투는 곧 진주대첩으로서 임진왜란 3대첩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반면, 제2차진주성전투는 성이 함락됨과 동시...
-
지표 공간에서 공간적으로 펼쳐지는 위치·기후·식생·토양·지형·해양 등의 자연 현상. 인간 생활과 관계가 깊은 대기와 바다가 만나는 비교적 엷은 접촉대의 환경은 그 구성 요소가 어떤 조화를 이루느냐에 따라 장소마다 달리 나타난다. 환경의 구성 요소를 분류하고 지구적인 차원에서 그 분포를 연구하는 것은 자연지리학의 본질적인 영역에 속한다. 진주의 위치는 수리적(數理的)으로 동경 127...
-
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곤양. 자는 경운(景雲). 호는 매헌(梅軒). 진주정씨에서 분적한 곤양정씨(昆陽鄭氏)의 중시조이다. 좌찬성에 추증된 정호(鄭浩)의 아들이다. 초명은 무수(茂壽)이나 1586년(선조 19) 무과 급제 후 왕명에 따라 기룡으로 이름을 고쳤다. 1562년(명종 17) 출생하여 1622년(광해군 14) 60세로 별세하였다. 무과에 급제한 후 1590년 경상우도절...
-
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 1392년(태조 1) 진주를 진양이라 하고 태조현비의 내향이므로 목을 높여서 진양대도호부라 개칭, 진양대도호부사를 두었다. 1402년(태종 2) 진양을 진주로 고치고 대도호부를 목으로 개칭하였다. 1413년(태종 13) 지방제도의 대대적 개편 때 진주는 목으로서 정3품의 목사가 배치되고, 그 아래 판관(종5품)과 교수(종6품...
-
한국전쟁 당시 진주지구 내 북한군을 격퇴시킨 전승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1950년 7월 29일 미 제25사단 ‘칸’ 기동부대가 진주지구에 쳐들어온 북한군 제6사단과 제9사단 병력을 격퇴시킨 전승을 기리기 위해 1958년(단기 4291년) 7월 10일 육군 제1206 건설공병단에서 건립하였다.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진주성 내에 위치하고 있다. 진주지구 전승비에 기록된 비문의 내...
-
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까지의 한국전쟁 기간 중 진주지역에서 벌어진 사건. 한국전쟁은 민족의 비극으로서 우리 사회에 큰 피해와 흔적을 남겼다. 따라서 한국전쟁의 기원과 원인, 수행 주체와 성격에 관한 문제는 오늘날에도 중대한 쟁점이 되고 있고, 그 중에서도 전쟁을 일으킨 책임 주체를 둘러싼 논란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전통주의설과 수정주의설 등이...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윤경(潤慶). 호는 송암(松菴). 장무공(莊武公) 황윤(黃潤)의 8대손이다. 1728년(영조 4)에 일어난 무신란(戊申亂) 때 의병장이 되어 적을 거창의 소사평(素沙坪)에서 크게 무찔러 공을 세웠다. 무신란은 청주 출신의 이인좌(李麟佐)가 주동이 되어 일으켰기 때문에 ‘이인좌의 난’이라고도 하는데, 당시 정권에서 배제된 소론과 남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