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03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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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觀光 |
영어의미역 | tour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
집필자 | 이수진 |
[정의]
다른 지방이나 나라의 풍광(風光)·풍속(風俗)·사적(史蹟) 등을 유람(遊覽)하는 일.
[관광의 개념]
‘관광’이라는 어휘는 중국 주(周)나라 시대의 『역경(易經)』에 “관국지광(觀國之光), 리용빈우왕(利用賓于王)”이라 하여 ‘나라의 빛을 본다’는 뜻으로 처음 사용되었다.
이 말은 타국의 광화(光華)를 보기 위해 여러 나라를 순회 여행하는 ‘이동의 개념’과, 타국을 순방하여 그 나라의 토지·풍속·제도·문물의 관찰을 행하는 ‘견문의 확대’ 및 ‘치국대도의 설계’라는 국가 행정목적의 3개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현대용어로서의 관광의 개념은 유럽에서 건너왔다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관광객을 ‘투어리스트(tourist)’라고 하는데 이것은 주유여행(周遊旅行), 즉 ‘투어(tour)’를 한다는 뜻으로, 정주지(定住地)에 다시 돌아오는 것을 전제로 한다. 특정한 목적지와 귀향지가 있다는 의미에서 여행의 개념과 통하며, 따라서 ‘방랑(放浪)’, ‘유랑(流浪)’과는 다른 개념이다.
현대의 관광은 일종의 산업에 포함되어 보이지 않는 무역으로서 무역외수지의 하나를 이루며, 외국과의 문화교류나 국제친선에 큰 도움이 된다. 국내적으로는 국민의 보건증진이나 교양의 향상에 공헌할 뿐만 아니라 국민경제를 발전시켜 지역격차의 시정을 꾀할 수 있다.
이러한 현대 관광산업의 개념은 세계 각국이 관광이 지니는 경제적·문화적 의의를 인식하였기 때문이며, 국책사업의 하나로 여긴 것은 대체로 20세기 이후의 일이다.
[한국의 관광산업과 역사]
한국의 관광역사는 신라 화랑도의 명소 순회여행, 시인(詩人)·묵객(墨客)의 풍류여행, 불교신도의 봉축행사 참가, 각 지방의 민속행사 참가, 천렵과 뱃놀이 등에서 그 원류를 찾아볼 수 있다.
구한말 문호개방에 이은 일제강점기에 철도의 개통에 따른 철도경영의 일환으로 1912년 부산과 신의주 등지에 서구식 숙박시설의 효시인 철도호텔을 개관하는 등 관광사업이 태동되었으나, 이를 진정한 의미의 관광이라고는 할 수 없다.
8·15 광복 이후, 건국 초기의 구미 각국과의 외교관계 수립을 계기로 외래(외국) 관광객이 한국을 방문하기 시작하였고, 그에 대비한 숙박시설의 건설을 중심으로 한국의 관광 산업이 시작되었다.
이러한 관광 산업의 태동은 6·25 전쟁으로 인해 원점으로 되돌아갔으나, 전후 복구기를 거치면서 1954년 2월에 교통부 육운국에 관광과가 신설되어 관광 산업을 국책사업의 일환으로 다시금 추진하기 시작하였다.
정부의 교통부가 1957년 국제관설관광기구(IUOTO)의 정회원으로, 1958년에는 태평양·아시아관광협회(PATA)에 준회원으로 가입되었고, 1961년에 관광사업진흥법이 제정·공포됨으로써 우리나라는 관광산업의 기틀을 다지게 되었다.
또한 1962년 국제관광공사법이 제정되어 국제관광공사(현 한국관광공사)가 설립되었다. 1964년에는 교통부 육운국 관광과가 관광국으로 독립되어 독자적인 관광행정을 수행하였으며, 1965년 관광분야 국제회의인 PATA 총회가 서울에서 개최되는 등 1960년대는 한국 관광산업의 기반조성과 국제관광객 유치를 위한 체제정비기였다.
1970년대에 들어와서는 국립공원과 도립공원 지정이 되었으며, 아시아관광협회(ASTA)·동남아시아관광협회(EATA) 등의 국제적 관광기구에 가입, 국제협력의 기반을 구축하고, 경부고속도로의 개통(1971)·보문단지의 조성(1979) 등으로 관광의 광역화를 꾀하였으며, 관광진흥기금의 설치(1972), 관광기본법(1975)의 제정 등을 통해 관광진흥과 관광지개발에 진력, 1978년에는 외래관광객 100만 명을 돌파하는 획기적인 기록을 남겼다.
1980년대는 한국 관광문화의 틀을 잡는 데 큰 기여를 한 시기로 볼 수 있다. 1983년에는 ‘관광목적 50세 이상의 해외여행’을 자유화한 데 이어, 1986년에는 관광진흥법을 전면 개편하고, 아시안게임(1986년)·서울올림픽대회(1988년) 등을 개최함으로써 국민관광객은 1억 6000여 명을 기록, 외래관광객은 180여 만 명을 넘어섰다. 따라서 1980년대는 관광기회의 평준화·대중화·대량화를 이룩한 시기로 평가받는다.
1990년대에 들어와 정부는 108개국이 참가한 ‘대전엑스포’(1993년)를 열고, 이어 1994년을 ‘서울정도(定都)600년’을 기념하는 ‘한국방문의 해’로 설정하여 외래관광객을 유치하는 데 더욱 심혈을 기울였다. 1995년부터는 본격적인 지방자치가 실시되면서 지자체마다 축제를 개발하여 관광사업에서 수익을 올림과 동시에 지역 이미지를 제고시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진주의 관광 자원]
경상남도 진주시는 논개가 왜장의 목을 껴안고 투신한 곳으로 알려진 남강변을 중심으로, 지역의 유적들을 관광지로 개발하고 있다. 우리나라 3대 누각 중 하나로 알려진 고려 공민왕 때의 촉석루, 진주성 전투에서 전사한 김시민을 비롯한 수많은 군졸들의 신위를 모신 창렬사, 남강 상류를 막아 만든 인공호인 진양호 등의 관광 자원들이 대표적이다.
그밖에도 논개의 영정을 모셔놓은 의기사, 진주 유림의 고향인 진주향교, 봉이 날아가 버렸다는 데서 이름을 붙인 비봉산, 각종 지역축제의 개최 등 국내는 물론 해외의 관광객을 유치하는 데 한 몫 하고 있는 실정이다.
[진주 관광 산업의 현재]
최근 경상남도 진주시는 굴뚝 없는 산업인 관광산업의 육성을 위하여 다양한 관광 상품을 개발하고 국내외 여행사를 초청하여 관광설명회 등을 개최하고 있다.
2005년 4월에만 25회에 걸쳐 1,100명의 인원이 참가한 관련 행사가 진행되었고, 5월에는 외국인 31개 여행사에서 1,800여 명, 국내단체 관광객 43개 여행사에서 1,780명 등을 유치하는 등의 실적을 올렸다. 이러한 통계는 경상남도 진주시의 성공적인 관광정책을 증명하는 증거자료로 볼 수 있다.
특히, 일본지역의 여행사에 대한 협조체제 구축과 다양한 분야의 행사를 개최하여 일본 관광객 유치에 힘을 쏟고 있으며, 적극적인 홍보활동을 통하여 관광을 통한 경제발전에 노력하고 있다.
이처럼 관광객이 증가세를 보이는 것은 3년간에 걸쳐 보수하고 재정비된 진주성, 진양호 주변의 야간경관 조명과 음악분수가 야간의 관광자원으로 활용된 데 기인한다. 또한 진주성 등지에서 개최되는 사진전시회와 대회를 통해 지역의 절경이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널리 알려져 인기를 얻고 있는 것으로도 보인다.
한편, 국제 관광 도시로서의 면모 정착을 위하여 주한 외국인에 ‘서한 보내기 운동’과 ‘외국기자 초청 관광설명회’를 전개하는 것은 물론 이들 홍보활동의 범위를 중국, 대만지역으로도 확대하고 있는 실정이다. 각국의 관광공사와 연계한 사업들은 매년 증가세를 나타내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 유치실적은 2004년 3,000여명에서 2005년 11,000여명으로 급격히 증가하였고, 2009년 12월 말 현재 46,704명을 기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