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08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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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晋州鳴石雌雄石 |
영어음역 | Myeongseok Jaungseok |
영어의미역 | Patriotic Stone Couple |
이칭/별칭 | 운돌,명석 자웅암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유물(일반)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신기리 산 278 |
집필자 | 백태남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8년 12월 23일 - 진주 명석 자웅석 경상남도 민속문화재 제12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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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진주 명석 자웅석 경상남도 민속문화재 재지정 |
성격 | 신앙대상물 |
재질 | 돌 |
높이 | 수돌 : 97㎝|암돌 : 77㎝ |
소장처 주소 | 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신기리 산 278번지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남도 민속문화재 |
[정의]
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신기리 산 278번지에 있는 자웅을 상징하는 1쌍의 암석.
[개설]
이 자웅석은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던 성기숭배의 대상물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조성경위]
원래 숫돌은 현 위치에서 북동쪽 300m 지점의 논두렁에 서 있었고, 암돌은 북쪽 500m 지점의 하천 변에 누워 있던 것을 1970년 음력 3월 3일 옮겨 세우고 1973년 명석각(鳴石閣)을 준공하고 그 안에 보존하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고려 고종 18년(1231) 몽고의 침입에 대비하여 진주성을 수축하는데, 부역에 동원되었던 광제암(廣濟庵)의 승려가 이곳을 지나다가 급히 걸어오는 1쌍의 돌을 만났다. 승려가 “영혼이 없는 석물이 어디를 가느냐?” 하고 물으니까, 돌들이 “진주성 부역에 고생하는 백성들의 부담을 덜어주려고 성돌이 되고자 간다.”고 답하였다. 승려가 “이미 성을 다 쌓았다.”고 하자 돌들이 크게 울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그 자리에 섰다 한다. 때문에 이 자웅암을 ‘운돌[鳴石]’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이 자웅석의 형성유래를 들은 중국의 문인 두사충(杜思冲)은 “크나큰 그 돌 낭랑한 그 울음이여 그 이름의 크고 장함 천만년 빛나리(磊磊維石 琅琅其鳴 其名宏大 於千萬齡)”라고 「자웅석찬(雌雄石讚)」이라는 시를 지어 보냈다고 한다.
[형태]
숫돌은 자연석 위에 거북 머리같이 볼록하게 된 부분이 있어 남자 성기 모양으로 보이는데 높이 97㎝, 둘레 214㎝이고, 암돌은 여자가 족두리를 쓴 형태로 높이 77㎝, 둘레 147㎝이다.
[현황]
현재 명석각 안에 있으며, 1988년 12월 23일 경상남도 민속문화재 제12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남도 민속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명석면에서는 해마다 음력 3월 3일에 유교식 제사를 올리는데, 제를 지내는 목적은 호국충절을 기리고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기 위한 것이다. 이 날은 출향인사(出鄕人士)를 초대하여 함께 제를 지내며, 오후에는 각종 민속놀이를 벌여 주민들의 화합을 도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