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자광
-
전라북도 남원시 대강면 사석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자식을 엄하게 가르쳐 훌륭하게 키워 낸 어머니 이야기. 전라북도 남원시에는 유자광(柳子光)과 관련한 이야기들이 많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유당 어머니의 엄한 교육」에서 유당은 유자광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일종의 교훈담으로, 자식 교육에서 어머니의 역할이 얼마나 큰지를 강조하는 이야기이다. 1979년 7월...
-
전라북도 남원시 산동면에서 유자광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전라북도 남원시에는 유자광과 관련한 이야기들이 많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유자광은 서얼 출신으로 태어났지만 머리가 명석하여 후에 높은 벼슬자리에 올랐으며, 무오사화를 일으켜 권력을 장악하였다. 1979년 8월 2일 남원시 산동면 평산리에 사는 이복순(여, 54)과 산동면 식련리에 사는 황판계(...
-
최명희의 『혼불』은 남원시 사매면 노봉마을을 배경으로 일제강점기인 1932년부터 1938년까지의 매안이씨 양반가의 이야기를 서술한 소설이다. 민속학의 보고, 모국어의 보고로 칭송받고 있으며, 특히 종부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고 자연 환경을 세밀히 묘사하여 생태 문학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노봉마을은 소설 『혼불』의 무대이다. 고전 문학의 고장인 남원은 현대 문학을...
-
전라북도 남원시 고죽동 황죽마을에서 고산마을을 잇는 소로. 소로란 주 간선 도로와 보조 간선 도로 이외의 도로로서 접근 기능을 수행하는 도로를 가리킨다. 고죽동(高竹洞)은 고산(高山)마을과 황죽(黃竹)마을이 합쳐진 이름이다. 고산마을은 역사적으로 남원에 전란이 있을 때마다 피난처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1597년 정유재란으로 남원성(南原城)이 함락될 때에도 많은...
-
전라북도 남원시 도통동에 속하는 법정동. 고산마을은 지형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굴속같이 아늑하다고 하여 고산골이라 하였다. 황죽마을은 자연생 대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져 있었는데, 무령군 유자광(柳子洸)이 태어나자 대나무가 누렇게 말라 죽었다고 한다. 이것은 유자광이 태어나면서 마을 정기를 다 뽑아 대나무가 누렇게 죽은 것이라고 하는데, 이후로 마을 이름을 유자...
-
전라북도 남원시 고죽동에 있는 소로. 누른대길은 누른대, 즉 황죽(黃竹)에서 유래한다. 처음에는 ‘대나무가 괴로워한다’는 뜻에서 고죽리(苦竹里)라 하였으나, 나중에 황죽 또는 누른대라는 말로 불렀다. 원래 이곳은 조선의 권신으로 연산군 때 무오사화를 일으킨 무령군 유자광이 태어난 곳이라고 한다. 유자광이 태어날 때 천마봉 아래의 지운(地運)을 흡수하여 대나무가...
-
조선 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영광(靈光). 자는 경정(景正), 시호는 정숙(貞肅). 대언 유두명(柳斗明)의 아들이다. 음직으로 계성전직에 보직된 후 1426년(세종 8)에 무과에 급제하였다. 호조참의를 거쳐 경주부윤으로 있을 때 소송을 제기한 자가 뇌물을 바치자 태형으로 죽게 하여 파면되었다. 이후 남원에 돌아가서 오랫동안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 후에 아들 유자...
-
조선 전기·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본관은 영광(靈光). 자는 우복(于復). 중추부지사 유규(柳規)의 서자이다. 건춘문(建春門)을 지키는 갑사(甲士) 출신으로, 1467년(세조 13) 이시애의 난에 자진 출전하여, 난이 끝나자 병조정랑이 되었다. 이후 온양별시문과(溫陽別試文科)에 응시하여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1468년 왕위에 오른 예종에게 남이의 언행과 시를 빌미삼아 그...
-
조선 전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약한 문신. 유자택은 영광에서 태어났으나 훗날 남원시 고죽리로 이주하여 영광유씨의 시조가 되었다. 그 후손이 번창하여 이백면과 사매면 등 여러 곳에 동족 부락을 형성하였다. 유자택의 아버지 유혜방(柳惠芳)은 선대 이래 영광에서 살았다. 일찍이 영광군수를 역임하고 후에 영광군으로 봉군됨과 아울러 시호를 익양공이라 하였다. 유혜방의...
-
전라북도 남원시 이백면에 속하는 법정리. 척동리는 마을에 잣나무가 많아 잣골이라 하였다. 그 후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뒷산에 옥녀가 베를 짜는 옥녀직금 형국이 있는데 그중 잣골은 옥녀가 비단을 재는 자에 해당된다고 하여 척동(尺洞)으로 고쳤다고 한다. 연산군 때 고죽동(高竹洞)에 거주하던 유자광(柳子光)이 마을 뒤로 흐르는 요천의 수위를 조절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