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부면 공비침투사건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900427
한자 瓦阜面 共匪浸透事件
영어공식명칭 The Guerrilla Infiltration from North Korea to Wabu-myeon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경기도 남양주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금보운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69년 10월 11일연표보기 - 와부면 공비침투사건 무강공비 3명 발견
종결 시기/일시 1969년 10월 12일연표보기 - 와부면 공비침투사건 무장공비 2명 사살, 1명 도주
발생|시작 장소 도곡마을 -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진중리 지도보기 도곡마을
성격 사건사고
관련 인물/단체 대간첩대책본부|군·경·예비군|북한 무장간첩

[정의]

1969년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에 침투한 북한 무장간첩대와 군·경·예비군의 소탕 사건.

[개설]

1969년 북한 무장간첩대가 경기도 양주군 와부면 진중리[현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진중리] 민가에 침입한 것을 계기로 수색이 시작되었다. 대간첩대책본부는 수도 외곽 지대에 비밀 거처를 구축하고 남한의 산업 시설을 상시 감찰한 간첩대라고 평가하였다. 와부면 공비침투사건은 무장간첩대 3명 중 2명 사살, 1명 도주로 마무리 되었다.

[역사적 배경]

1960년대 한국의 반공 분위기의 강화와 베트남전 참전을 계기로 베트남을 제2전선으로 하는 남북 긴장이 형성되고 있었다. 1960년대 후반 미중 관계 개선과 국제적 긴장 완화는 남북 정부가 안보 위기 및 중요성을 강조하며 권위주의 정부의 수립으로 나아가는 과정에 있었다. 이는 남북간 상호 견제 강화와 북한의 무장간첩 파견으로 이어졌는데, 1968년 청와대 간첩 침투·푸에블로 호 나포·울진삼척 무장대 파견 등이 대표적이다. 와부면 공비침투사건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경과]

1969년 10월 11일 밤 8시 45분경 양주군 와부면 진중리 도곡마을 민가에 괴한 3명이 침입하였다. 12일 군·경·예비군이 검문하자 근처 민가에서 식량을 훔친 후 ‘삐라’를 남기고 도주했다. 1969년 10월 12일 오후 휴전선 인근에서 국군에 의해 발견된 이후 2명이 사살되었으나, 1명은 휴전선 북방으로 도주하였다. 교전 과정에서 국군 2명이 부상당했고, 무장간첩대의 무기를 노획했다.

[결과]

군·경·예비군을 중심으로 인근을 수색하였으나 도주한 1명의 행방은 확인되지 않는다.

[의의와 평가]

경기도 남양주 지역은 접경 지역이자 서울 중심지에서 약 24㎞ 떨어진 곳으로 해방 이후 북한 지역에 속해 있었고, 인민위원회의 관할 하에 관리되었으나 정전 협정에 따른 군사 분계선 변화로 남한 지역에 속하게 되었다. 이후 1960년대 후반 남북 관계와 국제 정세를 반영한 무장간첩대의 침투를 통해 분단 하 접경 지역으로서의 경기도 남양주 지역이 갖는 안보적 성격을 확인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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