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중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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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27일 낙생면 판교리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운동. 낙생면의 만세시위운동은 초대면장 남태희 등의 주도하에 돌마면과 연합하여 전개되었다. 남태희는 3월 27일 돌마면에서 시위를 주도한 한백봉, 한순회 등의 권유를 받고 면민들에게 시위를 권고하고 참가를 유도하였다. 율리에서 시작한 만세시위가 분당리 장날에 군중이 가담하면서 규모가 증대되었다. 시위대는 행진을 계속하여 낙생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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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27부터 3일간 한백봉, 한순회, 남태희 등이 돌마면과 낙생면의 면민을 규합하여 진행한 연합적 만세시위운동. 돌마면과 낙생면 면민의 연합시위는 규모나 영향력이 지대한 것으로 파급효과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달성할 수 있었다. 시위를 주도하기 이전에 봉화와 횃불을 통해 상호 교감을 일으켜 분위기를 조성하는 작전을 구사하였다. 시위운동의 주도자들은 3월 28일에도 봉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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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운중동에 있었던 옛 지명. 조선시대에는 광주군 낙생면 뫼운리 지역으로 웃뫼운리와 아래뫼운리로 나뉘었다. 웃뫼운리[상산운리]는 국사봉 밑에서 청계산 아래까지 이어지는 마을로 안동김씨가 세거하였고, 자연마을인 중간말[중산운리], 점말, 백당골, 안골 마을과 함께 지금의 운중동이 되었다. 아래뫼운리는 두밀리와 함께 지금의 하산운동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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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운중동에 있었던 지명. 본래 경기도 광주군 낙생면의 지역으로 국사봉 밑이 되므로 뫼루니, 머루니, 뫼룬, 뫼운, 또는 산운이라 하였다. 뫼루니마을의 윗마을을 윗뫼루니 또는 상산운리 등으로 불렸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산운의 중간이 되므로 운중리라 하였다. 상산운리는 운중리에 속하였으며, 1973년에 성남시에 편입되었다. 1975년 낙생출장소에 편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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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있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행정동인 운중동은 하산운동, 대장동, 석운동, 운중동의 4개 법정동을 관할한다. 성남시 서남단의 청계산 준령 동사면에 자리하며, 안양으로 통하는 관문 지역이다. 과거 자연 마을이 있었던 하산운동과 운중동 일부가 판교신도시로 개발되었으며, 분당신도시와 인접해 도농 복합 형태의 전원 마을이 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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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운중동에 있는 옛 지명. 본래 경기도 광주군 낙생면의 지역으로서 국사봉 아래가 되므로 뫼루니, 머루니, 뫼룬, 뫼운, 또는 산운이라고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산운의 중간이 되므로 운중리가 되었다. 1973년에 성남시에 편입되고, 1975년 낙생출장소에 편입되어 운중동, 대장동, 석운동, 하산운동의 4개 동이 합하여 운중동의 관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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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운중동을 흘러 탄천으로 유입하는 하천. 운중천의 수원은 운중저수지이다. 운중저수지는 과거에 농업용수를 확보하기 위한 저수지였으며, 운중천은 농업용수 관개로의 기능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운중천 일대가 주택가와 판교테크노밸리 등으로 개발되면서 해당 기능은 상실되었으며, 현재 운중저수지 및 운중천은 유량 조절과 관광 및 주민 휴양 등의 기능을 하고 있다. 하천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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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운중동에 있는 옛 지명. 본래 경기도 광주군 낙생면의 지역으로서 국사봉(도산천)의 아래가 되므로 뫼루니, 머루니, 뫼룬, 뫼운, 또는 산운이라고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산운의 중간이 되므로 운중리 또는 중산운리가 되었다. 1973년 성남시에 편입되고, 1975년 낙생출장소에 편입되어 운중, 대장, 석운, 하산운의 4개 동을 합하여 운중동의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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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 붙여진 이름. 즉, 땅을 인식하고 그 땅과 다른 땅을 구별하기 위하여 사람들이 붙인 이름. 사람이 땅에 정착하여 생활하기 시작하면서 생활의 편리함을 얻기 위해 자연적 환경이나 지형의 특색, 또는 당시의 산업이나 사회제도 등의 인문적 특성을 반영하여 땅에 각각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 그리하여 지명에는 사람들의 사상, 의지, 생활모습, 언어, 풍속, 도덕, 종교 등이 표현되어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