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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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의 건물, 구조물 등을 쌓아 만드는 일 또는 사람이나 물품 등을 수용하기 위한 구축물. 건축의 범위와 종류는 매우 광범위하여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집이나 궁궐, 사찰, 관아 건물은 물론이고, 성곽, 교량, 탑, 부도, 심지어는 무덤까지도 건축의 범위에 속한다. 또 그 재료에 따라서도 나무로 만든 목조 건축, 흙으로 만든 토축 건축, 벽돌로 만든 전축 건축, 돌로 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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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 수정구와 중원구를 연결하는 시도. 공원로는 수정구와 중원구의 중심 주택 지역을 연결하는 도로로 경충대로, 둔촌대로, 산성대로, 수정로 등과 차례로 교차한다. 공원로의 산성대로-수정로 구간은 수정구의 신흥2동과 신흥3동, 수정로-태평로 구간은 수정구의 신흥2동과 태평4동, 산성대로-둔촌대로 구간은 중원구 상대원동의 행정구역 경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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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 중원구에 위치한 시도(市道). 광명로는 성남대로 모란삼거리에서 동동북(東東北) 방향으로 나뉘어져 황송길 금광삼거리까지 이르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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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에 세거하는 성씨의 하나. 광주이씨는 광주(廣州)의 토성으로 성남을 본관으로 하는 명문이다. 광주이씨의 중흥조라 할 수 있는 고려 말의 이당(李唐)은 광주의 아전을 지내다가 생원이 되었으며, 그의 아들 5형제가 모두 문과에 급제했다. 그 중 둘째아들 둔촌(遁村) 이집(李集)이 고려 말에 이색, 정몽주, 이숭인 등과 깊이 사귀고 고려가 망하자 현재 서울 강동구 둔촌동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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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구보의 집은 답십리 개천 주변에 있었다. 이삽십 평 남은 되는 집이었다. 끼니도 어려운 사정이었으니 집의 형편이야 짐작이 가지만, 그래도 어머니에게는 더없는 의지처였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는 않았다. 바람은 밖에서 불어왔다. 소년 구보가 초등학교 2학년 될 때쯤 서울은 재개발 바람이 불었고, 소년 구보가 살던 답십리 개천 일대도 철거 대상이 되었다. 구보의 나이 아홉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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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집안의 가장이 된 구보는 구두 공장에 다니면서 구두일 하는 사람들을 많이 알고 있었다. 그들이 그랬다. 직접 구두 수선하는 일을 배워 보라고, 공장 다니는 것보다 보수가 훨씬 낫다고. 그도 그 일을 해보고 싶었다. 한참을 망설이고 생각했다. 한 달 두 달 일 년, 그 이상 고민하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신문을 보게 되었다. 구두 세탁과 수선을 함께 하는 사람의 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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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상대원동과 하대원동에 있었던 옛 지명. 대원동리는 조선시대 경기도 광주군 세촌면에 속해있던 마을로 이후 상대원리와 하대원리로 구분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의하여 상대원리는 중부면에, 하대원리는 돌마면에 편입되었다. 현재는 모두 중원구에 편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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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 중원구에 있는 중천. 고려 시대에 대원(大院)이 있어서 위쪽을 상대원 아래쪽을 하대원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대원천은 상대원에서 하대원을 거쳐 흐르기 때문에 대원천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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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성남시 돌마 지역에 설치되었던 출장소. 1970년대 수도권의 인구 집중 억제와 수도권 주변의 무질서한 도시 확산 방지 및 서울 외곽 도시의 합리적인 육성을 위해 성남시가 성립되었고, 이후 인구가 급격히 늘자 1975년 돌마 지역을 관할하는 돌마출장소가 이매동에 설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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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씨 아줌마, 그녀는 강원도에서 태어났다. 어느 날 아버지가 성남이 개발될 것이라는 정보를 어디서 주워듣고 와서는 보따리를 싸게 했다. 성남과의 느닷없는 인연이 시작된 것이었다. 물론 노씨 아줌마는 아직도 아버지의 정보의 출처를 알지 못한다. 출처조차 확실치 않는 정보에 의지해서 그녀의 가족은 1968년 무렵 성남으로 이주해 왔다. 그녀 나이 9살 무렵이었다. 아버지 대신 엄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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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도촌동과 중원구 하대원동을 잇는 공원로 구간에 설치된 터널. 둔촌터널은 분당구 야탑동 매화마을과 중원구 도촌동부터 수정·중원 본시가지를 지나 위례신도시까지 연결하는 남북축 주요 간선도로인 공원로에 설치된 터널이다. 도촌동과 분당에서 하대원의 둔촌대로를 거쳐 공원로에 진입하는 도로를 개설할 때 고불산 북서쪽 산자락을 가로지르는 도로를 개설하기 위해 설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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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 중원구에 있는 법정동. 상대원동은 중원구 남단에 자리 잡은 법정동으로 행정동은 상대원1동, 상대원2동, 상대원3동이다. 검단산 줄기 남쪽 구릉지를 차지하여 지대가 높고 기복이 심하다. 1970년대 광주대단지 조성 당시 성남 이주 철거민 고용을 위해 조성된 성남산업단지 제2공단, 성남산업단지 제3공단이 상대원동에 준공되면서 초기 성남 지역의 산업을 이끌었고, 상대원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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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시내버스를 타고 성남의 구시가지와 신시가지의 모습을 살펴보는 2시간여의 짧은 여행. 성남 사기막골에서 출발하여 상대원과 성남시청, 모란역을 거쳐 분당신도시의 야탑동, 서현동, 수내동, 정자동을 지나 운중동 한국학중앙연구원(구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회차하는 성남시내버스를 타고 왕복 2시간 15분정도에 걸쳐 성남의 구시가지와 신시가지, 옛날과 오늘의 모습을 두루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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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에서 제작한 재래시장 이용 상품권. 성남사랑 상품권은 2006년 7월부터 성남시가 추진해 온 재래시장 특화사업의 일환으로 추진하는 제도이다. 유통시장의 개방화 이후 대형마트와 인터넷 쇼핑몰 등 새로운 업태가 확산함에 따라 소비자들의 구매 패턴의 변화로 어려움을 겪는 재래시장을 활성화하고 지역 상권 공동체를 형성하여 경쟁력을 높이며 시민들의 재래시장 이용을 늘려 재래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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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시에서 대대로 내려오면서 살아온 사람. 그러나 이동이 심한 오늘날은 단순히 한 세대 이상을 살게 된 사람들을 통칭하여 부르기도 한다. 토박이는 ‘본토박이’의 준말로, 『국어대사전』에는 ‘여러 세대를 내려오면서 한 곳에 살아온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하지만 넓은 의미로 토박이는 유사 이래로 성남지역에서 태어나서 몇 대를 살아오거나 한 평생 또는 한 세대 정도를 성남지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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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여산(礪山). 자는 기수(耆叟). 생원(生員) 송윤은(宋胤殷)의 장자. 부안현감(扶安縣監)을 역임한 송관(宋觀)의 손자. 좌리공신(佐理功臣)에 올랐던 대표적 훈구세력 광원군(廣原君) 이극돈(李克墩)의 사위이다. 따라서 당시 성남 지역에 세거하던 두 벌열(閥閱) 가문이 혼맥으로 서로 맺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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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성남 지역 출신의 문신. 조선 중기의 문신인 송언신은 성남 지역의 지명과 관계가 있는데, 일설에 조선 후기의 문신 이집의 서원이 있는 곳을 하대원이라고 한데 대하여, 송언신의 서원이 있었던 지역을 상대원이라 하였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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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 수정구와 중원구에 위치한 시도(市道). 시민로는 수정로 옛 인하병원사거리에서 남남동(南南東) 방향으로 나뉘어져 공단로 하대원 아튼빌아파트 앞 삼거리까지 이르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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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씨 아줌마는 하대원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마쳤다. 지금의 대일초등학교 자리가 성남여중이었다. 그 전에는 강원도 횡성군 청일면에서 살았다. 친정은 워낙 못 살았다. 거기다 아버지는 팔방 난봉꾼으로 전국을 안 다닌 데 없이 떠돌아 다녔다. 당연히 칠남매는 어머니 혼자 책임을 지셨다. 어머니가 아무런 믿는 구석도 없이 성남으로 이주를 결정하신 것도, 시골에 땅 좀 있는 거 난봉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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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에 올라가면서는 집이 같은 방향인 친구들끼리 뭉쳐서 놀았다. 같이 집에 가는 도중에 누구네 집에 놀러간다든지 노래방을 간다든지 하는 일도 있었다. 중학교 1학년 때 노래방이 생겨서 처음 가 봤는데 그 때는 한 곡당 500원, 만 원이면 스무 곡을 부를 수 있었다. 그렇게 노래방을 가든지 친구 집에 가서 만화책을 보든지 하면서 초등학생 때와는 놀이의 종류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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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 붙여진 이름. 즉, 땅을 인식하고 그 땅과 다른 땅을 구별하기 위하여 사람들이 붙인 이름. 사람이 땅에 정착하여 생활하기 시작하면서 생활의 편리함을 얻기 위해 자연적 환경이나 지형의 특색, 또는 당시의 산업이나 사회제도 등의 인문적 특성을 반영하여 땅에 각각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 그리하여 지명에는 사람들의 사상, 의지, 생활모습, 언어, 풍속, 도덕, 종교 등이 표현되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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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을에 같은 본관을 가진 성씨끼리 함께 모여 사는 곳. 집성촌이란 동족마을이라고도 부르며 성씨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원시사회에서 씨족생활이 이루어지듯이 근대 도시사회로 발전하기까지 농업국가에서는 같은 씨족끼리 모여 살게 되어 있다. 우리 민족이 성(姓)을 가진 것은 아득히 먼 옛날이다. 그러나 왕족이나 귀족은 일찍부터 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천민이나 노예는 근대사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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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 옆에 돌고래다방이 있었다. 노씨 아줌마는 주로 그곳에 가서 음악을 들었다. MP3 기기가 발에 채이는 요즘에는 다방에 가서 음악 감상을 한다는 것이 무슨 말인가 하는 젊은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튼 그때는 음악 감상을 위해서 다방에 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걔는 박천마을에 나는 이천마을에 살았거든요. 그러면 우리집을 지나서 가야 하는데, 그 친구가 맨날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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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 토착하고 있던 씨족집단의 성씨. 토성은 지연적 촌락공동체로서의 ‘토(土)’와 혈연적 씨족집단으로서의 ‘성(姓)’으로 구성된다. 조선 초 광주목의 일부였던 성남시 지역의 토성은 정확하게 어떤 성이었는지도 알 수 없다. 광주목의 영역은 현재의 성남시 일원과 광주시, 하남시, 그리고 서울의 강동구, 송파구, 강남구, 서초구의 일부까지도 포함한다. 비교적 넓고 큰 행정구역이었던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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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 중원구에 있는 행정동이자 법정동. 행정동이자 법정동인 하대원동은 둔총대로를 중심으로 상가와 주택이 밀집해 있고, 주택 뒤로는 대원공원과 임야로 이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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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하대원동에 있는 회화나무. 대하초등학교 인근 자이 아파트 옆의 호야 경로당 마당에 있는 수령 250년의 노거수(老巨樹)로 높이 17m, 가슴높이 둘레 94cm, 수관(樹冠) 폭 13m로, 콩과의 활엽수 교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