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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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당시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일대에 조성된 일단의 주택단지. 서울시의 빈민가 정비 및 철거민 이주사업의 일환으로 계획된 위성도시로 현 성남시의 모체가 되었다. 당시 서울시는 곳곳의 무허가 건물에 대한 억제책을 수립하면서 서울로 집중되는 인구와 도시빈민들에 대한 분산책으로 1968년 5월 7일 건설부로부터 개발인가를 받아 1969년 4월 1일 광주군 중부면 성남출장소 관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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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후반 서울시의 인구문제와 주택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시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지금의 성남시]에 조성되었던 대규모 천막집. 1960년대에 들어 서울은 전입인구가 늘어나면서 급격한 인구증가현상을 보였다. 그러나 기존 도시기반시설은 늘어나는 수요를 따르지 못해 심각한 문제를 초래하였으며, 가장 큰 문제는 주택 부족이었다. 서울시의 국공유지에는 무허가건물이 마구 들어서게 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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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에서 활동하는 예수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한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 종교. 한국에는 기독교의 3대 종파에 해당하는 가톨릭, 동방정교회, 그리고 개신교가 모두 있지만, 기독교의 대부분은 가톨릭과 개신교이다. 천주교라고도 불리는 가톨릭은 230여 년 전에 우리나라에 전래되어 많은 박해를 받으면서 성장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전국에 16개 교구에 약 1400여개 가까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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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에 있던 현종의 장녀 명선공주의 묘. 명선공주(明善公主)[1660~1673]는 조선 제18대 왕 현종(顯宗)[1641~1674]과 명성왕후(明聖王后) 사이에 태어난 1남 3녀 중 장녀이다. 명선공주의 동생이 숙종(肅宗)이고, 그 뒤로 명혜(明惠)공주, 명안(明安)공주가 있다. 현종은 딸들을 끔찍이 여겼다. 사신이 북경에서 돌아올 때 청나라에서 보내온 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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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에 있던 현종의 차녀 명혜공주의 묘. 명혜공주(明惠公主)[1663~1673]는 조선 제18대 현종과 명성왕후 김씨 사이에 태어난 1남 3녀 중 둘째 딸이다. 언니가 명선공주이고 오빠가 숙종이다. 가축 전염병인 구제역과 사람에게 치명적인 천연두(天然痘)가 크게 번지던 현종 14년[1673]에 명혜공주가 9세에 죽고, 3개월 후 14세인 명선공주도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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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라의 언어 중에서 특정 지역에서만 사용되는 언어. 방언이란 원래 한 가지 모습만을 가졌던 언어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지리적, 사회적으로 각각 다른 모습으로 변화를 일으킨 결과로서 특정지역 또는 사회계층에서만 사용하는 음성, 음운, 문법, 어휘의 체계를 가리킨다. 즉, 방언이란 특정 언어 집단에서 쓰이면서 다른 언어 집단의 언어체계와는 구별되는 특징을 가진 한 언어의 분화체(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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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수진동에 있었던 마을. 벌말은 벌터로도 불려졌는데 자연취락지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조선 세종의 아들 평원대군(平原大君)의 묘소 관리를 위해 수진궁(壽進宮)을 지은 데서 유래한 수진리는 궁말[宮村]로도 불려졌는데, 이 궁말의 서쪽 벌판에 자리 잡은 취락지역이 벌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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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과 신흥동에 있었던 지명. 지금의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과 신흥동에는 과거에 숯골, 독정이[신흥동 30번지[수정로 283] 수정구청 일대], 남씨편[태평2동 3309번지[수정로171번길 10], 구 성남시청 일대], 음촌[음촌로 일대의 신흥동과 산성동 일부], 건너말[태평2동 태평지구대 뒤편], 세터말[태평1동 수정경찰서 뒤편] 등의 자연마을이 형성되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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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에서 정치적 목적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모여 정치권력을 얻기 위해 공동의 정책을 펼치며 정치적 이익을 도모하는 단체. 일반적으로 정당의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정당은 다수인으로 구성된 집단적 조직이다. 세계 모든 국가에서 정당의 설립 요건으로 최소 당원 수를 규정하고 있듯이 정당은 규정하는 당원 수를 충족해야 한다. ② 정당의 목적은 정치권력의 획득이다. 이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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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 개발 초기에 지어진 수정구 태평동 광주대단지 주택. 광주대단지는 서울의 철거민 이주단지 조성을 위해 1960~70년대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현재 성남시 수정구]에 조성한 주택단지이다. 서울에서 이주한 철거민들에게 가구당 20평씩 땅을 분양해 주고 집은 자력으로 짓도록 했다. 1969년부터 서울시 철거민 이주가 시작되었지만, 철거민 상당수는 생활 기반이 서울에 있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