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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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한경춘(韓慶春)·한여현(韓汝賢) 부자가 편찬한 충청남도 서산의 사찬 읍지. 『호산록(湖山錄)』은 1619년 서산의 사족[문벌이 높은 집안]인 한경춘·한여현 부자(父子)가 편찬한 사찬 읍지로, 1600년대 이전 서산 지역의 사회·경제적 상황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조선 초기 사찬 읍지가 흔치 않은 가운데 특히 충청남도 지역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제작된 사찬 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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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산 출신의 의병. 본관은 진주. 자는 경휴(景休). 아버지는 강의(姜儀)이고, 아들은 영산현감으로 임진왜란 때 죽은 강효윤(姜孝胤)이다. 서산의 진주 강씨는 서산 지역에서 오래 산 성씨로 서산 강씨라 불리기도 한다. 기록이 많지 않아 추적이 어렵지만 서산의 유력 성씨인 청주 한씨 한효순(韓孝純)의 후취 부인이 강몽서(姜夢瑞)의 손녀인 것으로 미루어 영향력 있는 성씨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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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서산. 자는 선술(善述). 아버지는 진사 강몽서(姜夢瑞)이다. 아들은 집의(執義)를 지낸 강수이다. 강씨는 서산의 토성으로 등재되어 있지만 기록이 많지 않아 추적이 어렵다. 1619년 편찬된 서산의 사찬 읍지 『호산록(湖山錄)』에서는 강흡(姜洽)이 향임을 맡아 고을의 풍속을 바르게 하였다고 하니 그가 강효윤(姜孝胤)의 조상일 것으로 추측될 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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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산 출신의 향임(鄕任). 1619년에 편찬된 서산 지방의 사찬 읍지인 『호산록(湖山錄)』에 ‘강흡(姜洽)이라는 사람이 향임을 맡아 고을의 풍속을 바르게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강흡은 향임으로서 기품이 맑고 강하여 시비가 분명하였으며, 고을의 풍속을 바르게 하고 일을 올바르게 판단하고자 했다. 백성 가운데 범법자가 있으면 그 경중에 따라 죄목을 붙여 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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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남도 서산 출신의 노비. 걸포(乬布)는 귀천(貴千)과 형제로 노비였다. 둘은 무척 우애가 깊어 먹을 것이 있으면 꼭 나누고 서로 의지하며 살아갔다. 어느 해 형의 목화밭에 목화가 피지 않자 동생은 자기 밭에서 좋은 목화송이를 따서 나누어 주었다. 형제의 이런 돈독한 우애는 주변 사람들의 귀감이 되었다. 걸포와 귀천의 이야기는 서산의 사찬 읍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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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알지를 시조로 하고 김연(金堧)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서산시 세거 성씨. 경주 김씨는 조선 시대 서산 지역의 유력한 세거 사족으로 1500년대 중반에 입향 한 이후 서산 지역에서의 향촌 활동에 활발히 참여하였고, 단구자김적이나 학주김홍욱 등 다수의 인물이 중앙 관료로 진출하였다. 특히 이곳 출신인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貞純王后)[1745~1805]가 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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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서산 출신의 효자. 계복(戒福)은 아버지 순평(順平)이 죽자 어머니를 정성으로 모셨다. 상을 치르는 3년 동안 소금과 간장을 먹지 않아 몸이 나뭇가지처럼 야위니 보는 사람마다 감복하였다. 또한 부모의 심정으로 동생을 보살피고, 재산을 나눌 때는 척박한 토지는 자기가 갖고 기름진 논밭은 어머니와 동생에게 주었다. 집에서 쓰는 가재도구와 곡식도 사사로이 차지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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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산군수를 역임한 문신이자 의병장. 고경명(高敬命)은 1582년(선조 15) 서산군수로 부임하여 목민관으로서 명성을 얻었다. 서산에 왔던 수령 중 최고의 선정(善政) 수령으로, 서산 5현으로 추대되었다. 학문 발전과 후학 양성에 전력하고 『호산록(湖山錄)』 발행을 권유하는 등 서산의 사족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본관은 장흥(長興). 자는 이순(而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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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월도는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의 남쪽 끝자락에 위치한 포구 마을이다. 본래는 천수만 내에서 안면도에 딸린 황도와 더불어 가장 큰 섬이었다. 그러나 1982년 10월 26일 물막이 공사가 이루어지면서 대대로 갯가에 의지하여 살아온 간월도는 뭍으로 변했다. 가구 수는 80여 호에 250여 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자연 마을로는 큰말·벗말·달박골·갱말 등이 있다. 이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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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가뭄이 들었을 때 비가 내리기를 기원하며 올리는 의례. 기우제는 가뭄이 계속되어 농작물의 파종이나 성장에 해가 있을 때 비가 내리기를 기원하며 지내는 제의이다. 고대 이래로 조정과 지방 관청, 민간을 막론하고 가뭄이 들면 기우제가 성행하였다. 서산 지역에는 국가 차원에서 고을 단위로 기우제를 지내는 부춘산 옥녀봉과 팔봉산 기우제가 있었으며, 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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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 아버지는 안주목사 김연(金堧)이다. 부인은 재령 이씨이며, 사위 중 한 명이 광산 김씨인 용천(龍川) 김지남(金止男)이다. 경주 김씨가 서산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안주목사를 지낸 김연이 명종 조[1545~1567]에 만년의 은거지로 이곳을 택하면서부터이다. 그러나 실제로 서산에 이거하여 정착한 것은 김연의 큰아들인 김호윤(金好尹)에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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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산 출신의 유생. 본관은 경주. 아버지는 안주목사를 지낸 김연(金堧)이다. 아들은 안기도 찰방(安奇道 察訪)을 지낸 김적(金積)이다. 손자는 김홍욱(金弘郁)이다. 1500년대 중반 김연이 정계 은퇴 후 서산에 자리를 잡아 경주 김씨 입향조가 되었다. 이후 후손들이 대대로 서산시 음암면 유계리에 모여 살았다. 마을에 큰 다리가 있어 유계리의 경주 김씨를 ‘한다리 김씨[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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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열(洪殷悅)을 시조로 하고 임진왜란 후 입향한 충청남도 서산시 세거 성씨. 서산 지역 남양 홍씨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여지도서(輿地圖書)』 서산군 인물조에 홍운해(洪雲海) 아들 홍성원(洪性源), 홍지원(洪智源) 등이 기록되어 있다. 이들 형제는 율곡(栗谷) 이이(李珥)[1536~1584]의 문하에서 공부하다 광해군 대에 사마 급제한 이들로 사마방목에는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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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을 흐르는 금강 서해권 수계 하천. 대교천(大橋川)은 도당천(島堂川) 또는 용두천(龍頭川)이라고도 부른다. 대교천과 교량의 이름은 대교리[지금의 유계리]에서 유래하였으며, 『조선지도(朝鮮地圖)』, 『해동지도(海東地圖)』, 『동여도(東輿圖)』,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 대교(大橋)가 묘사되어 있다. 특히, 조선 후기 한경춘(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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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서산 출신의 노비. 노비 대언(大言)은 삼대에 걸쳐 개심동(開心洞)[현 서산시 운산면 신창리로 추정]에 살았다. 대언은 미천한 신분이었으나 15세 무렵부터 마늘, 파와 같은 음식을 가리고 20세에 선법(禪法)을 배워 입산수도하니 사람들이 그를 존경하였다. 대언은 성격이 강직하고 불의를 참지 않았다. 『호산록(湖山錄)』은 대언의 강직한 성품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일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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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취평리에 있는 산. 도비산(島飛山)이라는 이름은 바다 가운데 ‘날아가는(飛) 섬[島]’ 같다 해서 붙여졌다는 설이 있다. 매년 봄이면 산 전체에 복숭아꽃이 만발해 복숭아 ‘도(桃)’, 살찔 ‘비(肥)’를 써서 ‘도비산(桃肥山)’이라고 한다는 설도 있다. 도비산은 금강 북쪽의 산줄기로 금북정맥에 속한다. 도비산 일대를 구성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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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지산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7교구 수덕사의 말사. 도비산의 동록에 위치한 동사(東寺)는 기이한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져 있으며 동쪽으로 간월호를 바라보고 있다. 절을 둘러싼 봄의 벚나무와 간월호의 바람에 흩날리는 벚꽃이 아름답다. 창건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모두가 서쪽을 바라보는 서해안의 도비산에서 동쪽을 바라보고 있어 동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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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수석동에 있는 작은 망루. 서산 정씨 시조 정신보(鄭臣保)[?~1261]와 정인경(鄭仁卿)[1237~1305]과 관련된 사적이다. 양렬공 정인경은 14세기 고려의 정치인으로서 서산의 중흥조에 해당하는 역사적 인물이다. 정신보, 정인경 부자는 남송에서 망명하여 처음 간월도에 살다가 서산 시내 대사동으로 주거를 옮겼다. 서산에서 생활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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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대산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7교구 수덕사의 말사. 망일산 170m 정도의 위치에 있는 망일사(望日寺)는 정충신(鄭忠信) 장군이 신병 치료 차 들렸던 절로 알려져 있다. 옛날 망일사에는 철마가 있었는데 한 청년과 더불어 외적을 물리쳤다고 한다. 청년이 휘두른 철도리깨와 철마는 현존하지 않지만 외적에 시달렸던 백성들의 바람이 잘 드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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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에 있는 산. 『호산록(湖山錄)』에서는 망일산을 대산(大山)이라고 적고 있다. 기록에 따르면, “군의 북쪽 35리에 있으며 목장(牧場)이 있다. 이 산은 바다 가운데 웅크리고 있는 듯해서 그 형체가 구릉보다 더 높고 크지 않지만, 바다 가운데 가리는 것이 없어서 대산이라고 칭하는 것 같다.“고 언급하고 있다. 망일산 일대를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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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산 출신의 충신. 본관은 홍주(洪州). 자는 달원(達源). 아버지는 성균생원(成均生員) 문응벽(文應璧)이다. 문성해(文成海)[1540~?]는 1575년(선조 8) 서산의 유생들과 함께 서산향교 이건을 청하는 상소를 올렸다. 1588년(선조 21) 49세의 늦은 나이에 식년시(式年試) 생원 3등 57위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입학, 공부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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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태봉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7교구 수덕사의 말사. 문수사가 언제 창건되었는지는 기록이 전하지 않는다. 다만 1973년 발견된 서산 문수사 금동여래좌상 복장유물에 따르면 적어도 1346년(충목왕 2) 이전에 문수사가 세워졌음을 알 수 있다. 1530년(중종 25) 찬술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기록이 보이지만 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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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언어와 문자를 매체로 표현하는 창작 활동. 문학이란 상상의 힘을 빌려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언어와 문자로 표현한 예술, 또는 작품을 일컫는다. 충청남도 서북부에 위치한 서산은 지리적 특성상 사람들의 왕래가 활발한 곳이 아니었지만, 여유와 한가로움을 즐겼던 문인의 문학적 자취가 서려 있으며 다채로운 문학 작품이 남아 있다. 서산의 문학은 서산의 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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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성대군(密城大君) 박언침(朴彦忱)을 시조로 하고, 밀양을 본관으로 하는 충청남도 서산시의 세거 성씨. 밀양 박씨(密陽朴氏)는 조선 전기의 각종 기록 중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그리고 『호산록(湖山錄)』의 서산 성씨조에 ‘서산의 속성’, ‘지곡의 촌성’으로 등재되어 있다. 그런데 조선 후기의 『여지도서(輿地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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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취평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7교구 본사인 수덕사의 말사. 부석사(浮石寺)는 부석사 극락전(浮石寺極樂殿)에 조선 후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부석사 극락전 목조아미타여래좌상(浮石寺極樂殿木造阿彌陀如來坐像)이 있었던 고려 시대의 사찰이다. 돌이 떠 있다는 ‘부석(浮石)’이라는 절 이름은 마치 서해 바다에 떠 있는 절이라는 신비감을 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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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취평리 부석사에 있는 고려 후기 불전. 현재 일본에 있는 1330년(충숙왕 17) 제작의 금동관음보살상으로 볼 때 부석사 극락전(浮石寺極樂殿)은 처음 고려 후기에 조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후 부석사 극락전은 1619년(광해군 11) 『호산록(湖山錄)』에도 등장한다. 수덕사 성보박물관에 보관된 1669년(현종 10) 제작의 범종과 극락전에 안치된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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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산성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누정. 오현정(富城山五賢亭)은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857~?]과 연고가 깊은 부성산의 부성산성(富城山城) 내에 위치해 있다. 서산시 지곡면 산성리에 자리하는데, 부성사(富城祠) 방향으로 도로를 타고 올라가다 보면 언덕을 넘어가기 전 좌측에 부성사로 들어가는 표지판이 있다. 이 표지판을 따라 가파른 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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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읍내동에 있는 산. 옛 서산 읍지인 『호산록(湖山錄)』에 보면 부춘산이란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 북산이나 북주산으로 기록되어 있다. 부춘산이란 이름은 1927년에 간행된 『서산군지』에서 처음으로 보인다. 『호산록』이 조선 1619년(광해군 11)에 편찬된 사실을 감안하면, 부춘산이란 이름은 아마도 그 이후에 생겨난 것으로 여겨진다. 부춘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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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활동하는 석가모니를 교조로 하는 종교. 충청남도 서산 지역의 불교문화는 백제 시대부터 근현대 불교의 중흥에 이르기 까지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불교는 인도에서 발생하여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고구려는 북조 전진의 아도로부터 372년(소수림왕 원년)에 받아들였고, 백제는 남조 동진의 마라난타로부터 384년(침류왕 원년)에 받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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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서산 지역 향촌 사회의 지배 계층. 사족(士族)은 대체로 고려의 향리 가문의 후예로 고려 후기 및 조선 전기에 첨설직(添設職)·동정직(同正職)·군공(軍功)·과거(科擧) 등을 통하여 사족으로 신분이 상승하였거나, 고려 후기 이래 서울로 가서 벼슬을 하다가 정치적 격변기에 본향(本鄕)·처향(妻鄕)·외향(外鄕)을 따라 낙향하여 재지 기반을 확보하고 있던 계층이었다. 사족은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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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신창리에 있는 산. 17세기 초의 서산 읍지인 『호산록(湖山錄)』에는 상왕산을 가야산으로 불렀다고 기록되어 있다. 현재의 서산에는 가야산이 따로 있어 과거에 가야산이 상왕산으로 불렸고 현재의 상왕산은 다른 이름으로 불렸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 기록에 따르면 여러 짐승들 가운데 코끼리가 가장 힘이 세고 으뜸이니 코끼리에 빗대어 당시에 힘이 있는 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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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원평리에 있는 석성. 상왕산 대성(象王山大城)과 관련된 직접적인 기록이 없기 때문에 정확한 건립 경위는 알 수 없다. 다만 1619년(광해군 11)에 편찬된 서산 지역 읍지(邑誌)인 『호산록(湖山錄)』에 “상왕(象王)이 쌓았다는 전언과 함께 1597년(선조 30) 정유년에 이시언(李時彦)이 증축하려다 그만두었다”는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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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간(柳成澗)을 시조와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서산시 세거 성씨. 서령 유씨는 서산 지방의 토성 집단 가운데 유력했던 성씨 중 하나로 여말 선초(麗末鮮初) 절의계 인물들을 배출하여 명성을 날렸다. 현재 서산 지역의 서령 유씨는 대부분 유방택(柳方澤)의 아들 유백순(柳伯淳)의 후손으로 오래도록 재지 사족의 지위를 유지하여 향촌에서도 주도적인 위치를 지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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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서산군수 이민영이 간행한 충청남도 서산군의 사찬 읍지. 서산군수였던 이민영(李敏寧)[1877~?]은 서산에 있는 각종 군지들의 저작의 고증이 어렵고, 흥폐연혁(興廢沿革)을 참고할 만한 문헌이 없음을 아쉬워하였다. 이에 구지(舊誌)를 중심으로 기록을 모으고 자료들을 덧붙여 1925년 4월부터 『서산군지』를 기고(起稿)하기 시작하였고, 1927년 12월 20일 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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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문익(宋文翊)을 시조와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서산시 세거 성씨. 서산 송씨는 고려 충렬왕 때 봉익대부판도판서(奉翊大夫版圖判書)를 지냈으며 서산군(瑞山君)에 봉해진 송문익을 시조로 하며, 봉해진 지역을 관향으로 삼고 후손이 거주하였다고 전해진다. 조선 시대 편찬된 각종 읍지류의 서산군 성씨조에 송씨가 기록되어 있는데, 1619년에 편찬된 서산의 사찬읍지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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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보(鄭臣保)를 시조로 하고 정인경(鄭仁卿)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서산시 세거 성씨. 서산 정씨는 서산의 토착 성씨이며 서산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이다. 시조인 정신보[?~1261]는 원래 중국 송나라 사람이었지만 나라가 망하자 바다를 건너 고려로 들어와 망명하였다. 그 후 아들 대호군(大護軍) 정인경의 공으로 인하여 1182년(고려 명종 12)에 부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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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을 대표하는 주요 명승 8개소. 조선 시대의 인문 지리서인 『택리지(擇里志)』에서는 서산을 비롯한 내포(內浦) 지역의 풍요로운 물산과 아름다운 인심에 대해 극찬하고 있다. “가야산 둘레 열 개 고을을 총칭하여 내포라 한다. 토지는 기름지고 평탄하며 넓다. 물고기와 소금이 넉넉하여 부자가 많고, 대를 이어 사는 사대부도 많다. 서울 남쪽에 있어서 서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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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동문동에 있는 조선 시대 지방 교육 기관. 서산시청에서 서산시 온석동 방향으로 난 지방도 649호선을 따라 700m 정도 들어가다 보면 향교골이 보인다. 향교골로 난 골목길을 따라 250m 정도 더 들어가면 옥녀봉과 성왕산 자락이 만나 배산을 형성하는 곳이 있는데, 서산향교(瑞山鄕校)는 이곳에 동남향으로 자리하고 있다. 서산향교는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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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동문동에 있는 조선 시대 지방 교육 기관. 서산시청에서 서산시 온석동 방향으로 난 지방도 649호선을 따라 700m 정도 들어가다 보면 향교골이 보인다. 향교골로 난 골목길을 따라 250m 정도 더 들어가면 옥녀봉과 성왕산 자락이 만나 배산을 형성하는 곳이 있는데, 서산향교(瑞山鄕校)는 이곳에 동남향으로 자리하고 있다. 서산향교는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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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서 생산되는 특산물을 이용한 지역 고유의 음식. 충청남도 서산은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춰 다양한 특산물이 있는 만큼, 이들 산물을 이용한 서산만의 고유한 토속 음식들이 많이 있다. 또한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서산 고유의 토속 음식들은 조리법을 비롯해 음식의 맛 또한 다른 지역과는 차별화되어 있어 미식가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서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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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의 해양 민속과 어민들의 생활사를 기록한 역사 민속지. ‘서산 갯마을’이라는 말처럼 지난날 서산은 갯마을의 대명사로 전국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서산과 태안이 하나의 군으로 통합되었던 시절, 서산은 넓은 갯벌과 수많은 항포구, 드넓은 백사장을 자랑하던 바다의 고장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서해안은 각종 간척 사업과 공단 건설로 바다가 메워지고 갯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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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동문동에 있는 수령 460년의 은행나무. 은행나무는 중국이 원산인 낙엽 교목으로, 우리나라에는 중국에서 유교와 불교가 전해질 때 들어온 것으로 전해진다. 문헌에 따르면 방화·방풍 기능을 하여 방화목이라고 하며, 공손수(公孫樹)라고 하여 조상들은 은행나무를 귀하게 여겨 불교 용품의 재료로 많이 사용하였다. 잎의 모양이 오리발을 닮았다 하여 압각수(鴨脚樹)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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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남아 있는 흙이나 돌로 구축된 방어 시설. 성곽이란 성(城)과 곽(郭)의 합성어이다. 성은 내성을 말하고 곽은 성의 주위를 에워싼 나성의 형태로, 우리나라는 내성의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공간을 성곽으로 지칭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오늘날의 서산 지역은 백제 시대 때의 기군(基郡)이 모태가 되었다. 기군은 통일 신라와 고려 시대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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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부산리에 있는 사찰. 전하는 말에 의하면 934년(태조 17) 혜량국사가 창건하고 이름을 태조사라고 하였다고 한다. 조선 중기 거사 시손(市孫)이 성왕사로 고쳤고, 1631년(인조 9) 송근춘이 성왕사로 출가하여 교화 활동을 하였다. 1644년(인조 22) 유대춘(柳帶春)이 요사채를 지었고 이후 개운암으로 개칭되었으며 1933년 예산 수덕사의 승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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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부산리에 있는 산. 성왕산은 음암면과 성연면의 경계가 된다. 옛 서산 읍지인 『호산록(湖山錄)』에는 성왕산의 돌이 모두 청색이라 기록되어 있다. 또한 산의 돌은 크거나 넓적해 큰 것은 온돌로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성왕산 일대를 구성하고 있는 암석은 중생대 쥐라기 대보 화강암이다. 가야산맥의 줄기인 성왕산은 서쪽·남쪽·북쪽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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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계속하여 살아오고 있는 성씨. 세거 성씨는 15세기 전반까지 각 읍 성씨의 존재 상태를 살필 수 있는 주요한 사료인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나오는 토성(土姓), 조선 시기의 재지 세력으로 동성(同姓) 마을[집성촌]의 성씨들이 대표적이다. 세거 성씨는 전근대 사회에서 지역 사회의 토착 세력으로 향촌 사회를 좌우하며 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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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수석동과 음암면 신장리에 걸쳐 있는 산. 『호산록(湖山錄)』에는 ‘소담봉’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명칭에 대한 유래는 나와 있지 않다. 정상에서 조망하는 경관이 뛰어나 하루 정도 세상일을 잊고 쉬기 좋은 곳이라는 의미에서 ‘소탐산(蘇耽山)’이라고도 불렀다. 음암면 북쪽 간대산의 산줄기가 남쪽으로 내려와 소탐산을 이루고 있으며, 숲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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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산 출신의 화원. 본관은 지곡. 자는 가도(可度), 또는 득수(得守). 호는 현동자(玄洞子), 혹은 주경(朱耕). 1619년(광해군 11) 편찬된 『호산록(湖山錄)』에 ‘본읍지곡인(本邑池谷人)’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안견(安堅)은 세종~세조 대에 도화서(圖畵署)에 소속되어 그림을 그렸던 화원이다. 특히 세종 때 활동이 활발하였다. 시와 그림, 글씨에 빼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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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출신의 조선 전기 화원인 안견(安堅)을 기리는 기념관. 현동자 안견은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가 유일한 진작으로서 전해졌을 뿐 생몰 연대나 활동 시기 등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인물이었으나 1986년 『호산록(湖山錄)』[1619]이 발견되면서 출신지가 서산임이 밝혀지게 되었다. 안견기념관은 「몽유도원도」를 비롯하여 안견의 전칭 작품이라 일컫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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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서 매년 10~12월 개최하는 현동자(玄洞子) 안견(安堅)을 기리기 위한 예술 문화제. 『호산록(湖山錄)』에서 산수화의 대가인 안견의 출생지가 현 서산시 지곡면으로 밝혀지면서 뜻있는 지역 주민이 모여 안견을 기리고자 현창(顯彰) 사업을 실시하게 되었다. 1991년에 안견기념관을 건립하였고, 2000년부터 각 예술 단체가 연합하여 안견 예술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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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석림동에 있는 민간 기념사업 단체. 서산의 명현인 양렬공 정인경(鄭仁卿)의 생애 업적 및 학문과 사상에 관한 연구, 학술 발표에 관한 사업, 문헌 보존과 발간에 관한 사업, 기타 목적 달성을 위한 필요한 사업 등을 추진하는 민간단체이다. 양렬공 정인경 선생 기념사업회는 정인경의 생애 업적 및 학문과 사상을 연구하여 추숭 현양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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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서 이루어지는 언론 활동과 출판 활동의 총칭. 서산 지역에서 2011년 현재 발행되는 지역 신문으로는 『서산신문』, 『서산타임즈』, 『내포시대』, 『서산뉴스』, 『서산인터넷뉴스』, 『서산교차로』, 『서산벼룩시장』 등이 있다. 이 외에 서산시청에서 매월 1회 발간하는 『서산시보』와 서산문화원에서 월간으로 발행하는 『스산의 숨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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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성연면에 있는 산. 연화산은 성연면, 지곡면, 팔봉면 세 마을의 경계를 이루는 산이다. 연화산 북동쪽과 동쪽에는 큰 골짜기가 있다. 북동쪽 골짜기는 지곡면 화천리이고 동쪽 골짜기는 성연면 오사리이다. 골짜기 사이의 능선이 면의 경계가 되는데 연화산은 서산 지방의 문화권을 나누는 경계가 되었다. 이 경계에 있는 봉우리가 대치봉이며, 대치봉에는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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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의 열녀(烈女)와 열부(烈婦). 전통적으로 열녀란 남편이 죽어서 개가할 수 있는데도 개가하지 않는 여인을 뜻하였으나 조선 후기에 들어와 주로 상층 지식인들이 엮은 한문본 『열녀전(烈女傳)』에는 대체로 남편을 따라 죽은 소위 종사(從死) 여인들에 관한 내용이 실려 있어, 결과적으로 열(烈)과 죽음을 밀접하게 연계시키는 관습을 만들었다. 열녀 개념의 변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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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석남동에 있었던 조선 시대 관청의 전답으로 왕자에게 소속된 토지. 왕자제(王子堤)의 둔전(屯田)은 서산시 석남동 망운대 아래에 위치한 둔전으로, 왕가(王家)의 대군(大君)에 소속된 궁의 전답이다. 그런데 어느 시기에 어떤 대군에게 소속되었는지는 불명확하다. 둔전은 고려 때부터 국가 재정을 확보하기 위해 설치한 토지로, 왕자제의 둔전 역시 같은 목적으로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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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행해지는 공자(孔子)의 사상과 관련한 학문과 의례 및 활동 일반. 유교(儒敎)는 공자 및 맹자(孟子), 주자(朱子) 등 유가(儒家)의 정치사상과 학문 수양, 그리고 의례 등의 가르침을 실천하려는 현세적 사상이자 종교이다. 유교에도 중심 경전이 있지만 일정한 계통을 갖춘 사원이나 교회를 만드는 것과 같은 교조화된 신앙의 방식을 택하지 않았다. 즉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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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서령[서산]. 증조할아버지는 조선 초 천문학자였던 유방택[류방택, 柳方澤]이고, 할아버지는 성균관대사성을 지낸 유백순[류백순, 柳伯淳]이다. 서산의 토착 성씨인 서령 유씨 중에는 고려 말 조선 초의 정치적 혼란기에 관직을 버리고 은둔한 이들이 많았다. 특히 유백순-유사종(柳嗣宗)으로 이어지는 서산 지역의 서령 유씨들은 여말 선초의 절의계 인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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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 관아의 서리. 유윤당(柳潤塘)의 가계는 구체적으로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호산록(湖山錄)』에 ‘전춘(全春), 경준(景俊) 형제도 비록 서리라고 하나 천성이 양순하고 착하여 집에 살면서 모친을 봉양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관리들이 모두 피란을 가 버렸지만 구실아치인 유윤당은 서산 관아에 남아 예부터 전해져 오는 문서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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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충신. 본관은 서령[서산]. 자는 입부(立夫). 서산의 유력 성씨인 서령 유씨 유백순(柳伯淳)[?~1420]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성균진사 유방익(柳邦翼)이며, 형은 유경립(柳景立)이다. 유지립(柳之立)[1555~?]은 1575년에 사마시에 합격했고 1579년(선조 12) 25세에 생원 3등 54위로 입격하였다. 사마방목에 나타나는 서산 거주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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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전주 이씨 사족. 본관은 전주. 전주 이씨 덕천군파 후손으로, 아버지는 이유인(李惟仁)이다. 어머니는 경주 최씨이고 아들은 이호익과 이우익을 두었다. 장남 이호익은 사마시 생원에 급제하였고, 차남 이우익은 선조때 문과에 급제하여 병조좌랑에 올랐다. 이순(李淳)은 향촌에 살면서 사족을 단속하고 향촌의 질서 유지에 힘썼다. 『호산록(湖山錄)』에는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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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부터 1598년까지 일본이 조선을 침입하여 충청남도 서산시를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전국을 통일한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조선에 가도입명(假道入明)을 요구하면서 1592년(선조 25) 4월 13일 부산포 상륙을 시발로 조선을 침략하였다. 이에 조선은 관군과 각처에서 모집된 의병 등이 총력전을 펼쳤다. 전쟁이 계속되면서 명(明)이 개입하여 조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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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李翰)을 시조로 하고 창령군(昌寧君)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서산시의 세거 성씨. 전주 이씨는 서산의 유력 성씨로 회안대군(懷安大君) 이방간(李芳幹)[?~1421]의 둘째 아들 창령군[1389~?]의 후손과, 덕천군(德泉君)[정종의 10남]의 증손 변성군(邊城君) 이계연의 후손 등이 확인된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와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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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7년 정유재란 당시 충청남도 서산 출신의 사족들이 일으킨 의병 운동. 정유재란(丁酉再亂)이 일어났을 때 서산 지역에서 직접 전투가 벌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다른 여러 군현과 마찬가지로 서산의 사족들은 의병을 일으키거나 관리로서 전투에 참여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호산록(湖山錄)』에는 정유의병을 일으킨 사람들로 유흡(柳洽)·곽설(郭說)·한효순(韓孝純)[1543~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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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의 각종 지리지에서 지곡이 본관인 충청남도 서산시 세거 성씨.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호산록(湖山錄)』, 『여지도서(輿地圖書)』 등에서 서산과 관련된 지리지 성씨 조에는 서산과 지곡의 토성으로 문씨가 기록되어 있다. 이들의 본관은 분명치 않지만, 서산이나 지곡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호산록』에 등장하는 문성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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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이식(姜以式)을 시조로 하고 진주를 본관으로 하는 충청남도 서산시의 세거 성씨. 진주 강씨는 지리지 및 읍지의 성씨조에 등재되지 않은 데다, 관련 기록도 부족하여 서산에 입향한 시기를 추적하기가 어렵다. 다만 1619년에 편찬된 서산의 사찬읍지 『호산록(湖山錄)』의 인물 기록 중 강몽서(姜夢瑞)의 본관이 ‘진주’로 확인된 점을 고려하면 이 시기부터 서산의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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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동성동본의 사람들로 형성된 마을. 집성촌은 혈연관계가 있는 동성(同姓)의 여러 집이 모여서 사는 곳이다. 이를 동족마을이라고도 한다. 조선 후기, 특히 17세기 중엽 이후의 향촌 사회는 조선 전기와는 다른 친족 의식이 일반화되었다. 이전까지는 남귀여가혼(男歸女家婚)과 공평한 재산 분배 등의 풍습에 따라 사위, 외손자 등 성(姓)이 다른 친족이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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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란(韓蘭)을 시조로 하고 한정덕(韓正德)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서산시 세거 성씨. 청주 한씨는 서산의 유력한 세거 성씨로 서산의 사찬읍지인 『호산록(湖山錄)』을 찬술한 한여현(韓汝賢)의 가문이다. 『호산록』을 비롯해 서산의 지리지와 읍지 인물조에 등장한다. 서산의 청주 한씨는 원래 본관이 면천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서산에서는 1500년대 이후 크게 번성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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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과 장동 사이를 흐르는 지방 2급 하천. 『서산군지』에 의하면, “청지천은 음암면 율목리 태미산(台微山)에서 발원하여 남서쪽으로 흘러 상홍교(上紅橋)로 들어가고, 비스듬히 흘러들어가 왕자제언(旺字堤堰)이 된다. 수석리와 석남리를 경유하여 남원보(南院洑)·고방보(高方洑)를 이루고 주교포(舟橋浦)로 유입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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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경주. 최치원(崔致遠)의 후손이다. 최달제(崔達悌)[1669~1731]는 서산의 지곡면 독주동(犢走洞)[현 서산시 지곡면 장현리 애현마을 동남쪽]에 살았다. 부모가 희귀한 병에 걸리자 백방으로 수소문하여 약을 구해다 썼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에 제단을 쌓아 하늘에 정성스럽게 기도를 올리니 하루는 꿈속에 노인이 나타나 약이 있는 곳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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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산 출신의 문신이자 공신. 본관은 삭녕(朔寧). 자는 복초(復初), 호는 송천(松泉). 증조부는 영의정을 지낸 최항(崔恒)이고, 할아버지는 최영호(崔永灝), 아버지는 전첨(典籤) 최수진(崔秀珍)이다. 어머니는 이세신(李世臣)의 딸이다. 최흥원(崔興源)[1529~1603]은 1555년(명종 10) 소과를 거친 후 1568년(선조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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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 속하는 행정면. 팔봉면(八峰面)은 면의 중앙부에 위치하고 있는 팔봉산(八峰山)에서 유래한 지명으로 보인다. 1619년(광해군 11)에 간행된 『호산록(湖山錄)』에 의하면 “팔봉산은 군의 서쪽 바닷가에 있는데 여덟 봉우리가 기이하게 산 위에 나열되어 있으므로 팔봉산이라 부른다”라고 하여 그 유래를 설명해 주고 있다. 조선 시대에는 서산군 영풍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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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에서 동성동본의 사람들로 형성된 마을. 팔봉면의 가장 오래된 집성촌은 금학리의 경주 최씨로 최치원(崔致遠)의 후손이다. 경주 최씨 서산 입향조는 최사(崔泗)인데 최사는 최몽량(崔夢亮)의 아들로 경기도 양주에서 살다가 서산으로 입향하였다고 한다. 경주 최씨가 서산에 처음 자리 잡은 곳은 지곡면 산성리이며, 최몽량의 정려가 남아 있다. 이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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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양길리에 있는 산. 해발 361.5m의 낮은 산이지만 울창한 소나무 숲과 가파른 암릉 코스, 서해안의 절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여 전국 각지에서 많은 등산객이 찾는 산이다. 등산로는 이웃한 장군산과 금강산으로도 이어진다. 팔봉산의 제일 높은 제3봉은 삼면이 석벽으로 되어 있다. 팔봉산에는 운암사지를 비롯하여 정수암지, 천제 터 등이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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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에서 비가 내리기를 기원하며 지내던 의례. 팔봉산 기우제는 조선 시대 때에 날이 가물면 지방관[서산군수]이 팔봉면의 주산인 팔봉산(八峯山)[해발 361m] 상봉에서 비가 내리기를 기원하며 행하였던 제사이다. 팔봉산은 서산시의 서쪽 바닷가에 위치한 산이다. 기암 기석으로 이루어진 여덟 개의 봉우리가 우뚝 솟아 팔봉이란 이름을 얻었다. 그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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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성연면에 속하는 법정리. 평평한 지형에 생긴 마을이라 평리(坪里) 또는 벌말이라고도 하며, 신라 시대에는 벌이라고 불리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 서산군 하성연면(下聖淵面)에 상평쵼[上坪村], 신당리(新塘里)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상평촌, 파평촌, 신당리가 한 마을로 통합되어 서산군 성연면 평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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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춘(趙椿)을 시조로 하고 조아(趙雅)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서산시 세거 성씨. 평양 조씨의 시조는 조춘으로 고려 시대 금자광록대부 추밀원부사(金紫光祿大夫樞密院副使)를 지냈다. 당시 남송(南宋)에 들어가 금(金)나라를 정벌한 공로로 상장군(上將軍)이 되었다고 한다. 조춘의 선조는 중국에서 귀화하였다고 전해지나 정확한 역사적 사실은 확인하기 어렵다.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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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양오행설을 기초로 충청남도 서산 지역의 땅과 자연 형세에 관한 이치를 설명하는 이론. 풍수지리(風水地理)는 인간의 삶이나 죽음과 관련된 장소, 가령 묘지, 가택, 관청, 사찰, 마을, 도시, 수도 등의 입지 선정 및 방위 배치, 공간 구성 등에 사용해 온 한국의 전통 지리학이자 공간 인식 체계이다. 풍수는 인간의 삶과 관련된 자연환경 그리고 인간과 환경 간의 관계 등에 관심을 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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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유계2리 한다리마을은 경주 김씨의 동족 마을이다. 한다리마을은 서산시의 동남쪽으로, 음암면 소재지에서 남쪽으로 약 7㎞ 거리에 있다. 마을의 동남쪽 전방으로 대교천(大橋川)이 흐르고, 그 주변에는 넓은 농경지인 매벌들이 펼쳐져 있다. 이러한 현재 모습은 남쪽에 서산 A지구 방조제가 건설된 이후의 지형이다. 이전까지 서해 바다는 내륙 깊숙이까지 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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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호산록(湖山錄)』을 집필한 서산 출신의 문인. 본관은 청주. 증조할아버지는 한윤련(韓允璉)이고, 할아버지는 한익(韓翼), 아버지는 한영희(韓暎憙)[1518~?]이다. 어머니는 담양 전씨이다. 아들은 『호산록』을 완성한 한여현(韓汝賢)[1571~?]이다. 한경춘(韓慶春)은 청주 한씨 평장사공파(平章事公派) 족보에 올라 있고, 아들 한여현의 과거 급제 방목에 청주 한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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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의 정서와 사상을 한자로 표현한 시 작품. 충청남도 서산 지역의 한시(漢詩)는 역사적 맥락으로 볼 때 뿌리 깊은 전통성을 내재하며 발전해 왔다. 예로부터 수려한 자연과 넉넉한 인심이 어우러진 서산에서 시심(詩心)을 토로하고 운치를 표현하는 것은 보편적인 일이었다. 유명한 시인 묵객들은 서산과 인연을 맺고, 한시를 통하여 자신의 심정을 읊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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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호산록(湖山錄)』을 집필한 서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청주. 자는 현재(賢哉). 증조할아버지는 한익(韓翼)이고, 할아버지는 한영희(韓永禧), 아버지는 한경춘(韓慶春)이다. 한영희의 진사 급제 사마방목에는 본관이 ‘면천’으로 되어 있다. 면천은 현재 당진의 남부 지역으로 각종 지리지의 면천 성씨 조에 한씨가 올라 있다. 청주 한씨의 서산 입향조는 고려 후기 서산 사지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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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서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청주. 아버지는 한서정(韓瑞貞)이다. 한서정은 1467년(세조 13)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토벌하는 토포사(討捕使)에 임명되었으나 가지 않아 귀양살이를 하였다. 후에 북방우후(北方虞侯)에 제수되었다. 어머니는 전주 이씨로 영의정을 지낸 이배(李裵)의 딸이다. 부인은 문화 유씨로 현감을 지낸 유석정(柳碩汀)의 딸이다. 서산의 청주 한씨는 입향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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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의 문신이자, 서산시 해미면 양림리 청주 한씨의 입향조. 한효순(韓孝純)[1543~1621]은 기축옥사(己丑獄死)에 연루되어 1590년(선조 23)에 파직되자, 같은 해 8월 지금의 서산시 해미면 양림리에 은거하였다. 이 일대에 선대에 하사 받은 땅이 있었는데 작은 농사(農舍)를 짓고 정착했다고 하며, 서산 강씨 강효윤(姜孝胤)의 딸을 후취 부인으로 맞았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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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화곡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7교구 수덕사의 말사. 백제 때 창건된 절이라고 하나 확인할 수 없다. 1619년 한여현(韓汝賢)이 편찬한 『호산록(湖山錄)』에는 산길사(山吉寺)라고 하였다. 1726년 원통전에서 목조관음보살좌상이 제작되었으며, 원통전에 「삼길산 해월암 중수기」라는 현판이 걸려 있어 조선 후기까지는 해월암이라고 불렀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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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충청남도 서산에서 풍속 교정과 향리 규찰 등 수령을 보좌하던 자문 기구. 향서당(鄕序堂)은 조선 전기에 향리(鄕吏)를 규찰하고 향풍을 바로잡기 위하여 지방의 품관(品官)들이 조직한 자치 기구이다. 이를 유향소(留鄕所)·향사당(鄕射堂)·향청(鄕廳)·향소청(鄕所廳) 등이라고도 한다. 서산에서는 유향소를 향서당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그 이유가 『호산록(湖山錄)』에 기록되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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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서 편찬된 향토의 지리, 역사, 사회, 전승(傳承) 등에 관한 기록. 향토지는 향토에 관한 다방면의 정보를 기록한 자료로 조선 시대의 읍지와 지리지, 현대에 제작된 군지와 시지, 그리고 읍지·면지 등을 말한다. 조선 시대에 편찬된 지리지로는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여지도서(輿地圖書)』, 『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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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충청남도 서산의 별호(別號). 서산이 호산(湖山)으로 불리게 된 것이 언제부터였는지, 기원이 무엇인지는 확실하게 전해지지 않는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기록된 서산의 또 다른 이름은 기군(基郡)·부성(富城)·서령(瑞寧)·서주(瑞州)이며, 조선 후기의 지리지인 『여지도서(輿地圖書)』에도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호산에 대한 고증은 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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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한경춘(韓慶春), 한여현(韓汝賢) 부자가 편찬한 충청남도 서산의 사찬 읍지. 기본 체제는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따르고 있지만, 목차는 세분되어 있으며 내용이 훨씬 상세하고 여기에 지역과 지역민의 사정이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다. 조선 전기부터 1500년대까지의 상황이 반영되어 있는데 충청도에서 발간된 조선 전기의 지역 자료가 극히 드문 실정에 『호산록(湖山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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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효성으로 어버이를 잘 섬긴 자녀. 효자는 부모를 효성으로 극진하게 섬기는 자식을 일컫는다. 효(孝)는 부모가 살아 있을 때 정성껏 모시는 것뿐만 아니라 사망한 뒤에도 극진히 제사를 모시는 것 등을 포함한다. 조선 사회에서는 가정에서의 효도를 국왕의 지배 체제를 공고히 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지배 이념으로 보아서 적극 장려했다. 반대로 불효하거나 역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