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서산시에 있는 교육 기관, 시설 및 관련 시책. 백제가 관할했던 삼국 시대의 서산 지역 교육에 대해서는 관련 기록이 현존하지 않아 상세한 모습을 알 수 없다. 통일신라 시대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당시 부성군(富城郡)의 태수로 최치원(崔致遠)[857~?]이 부임했던 기록을 통하여 최치원이 당시 서산 지역의 교육에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고려 시...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관룡(金寬龍)[1900~1975]은 1919년 당시 해미면에 있던 해미공립보통학교의 졸업반 학생으로 평소에 일제 식민 통치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1919년 3월 24일 해미공립보통학교 졸업식 직전에 면사무소 서기인 이계성(李啓聖)으로부터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할 것을 권유를 받았다. 김관룡은 졸업생을 위한 고별회에 참석하...
1919년 3월 1일부터 약 2개월 동안 충청남도 서산시를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운동. 3·1 운동 당시 서산에서는 12개 면에서 독립 만세 시위운동이 발생하였다. 특히 4월 4일 서산 지역 천도교인들이 주도한 대호지면 만세 사건은 상당수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등 큰 파장을 일으킨 사건이었다. 제1차 세계 대전 직후 미국 대통령 윌슨이 “각 민족의 운명은 그 민족이...
충청남도 서산시에 있는 초등 보통 교육 기관. 서산시의 초등학교 가운데 가장 역사가 오래된 곳은 서산초등학교이다. 서산초등학교의 전신은 1908년에 설립된 서령학교이다. 서령학교는 풍전신숙과 함께 구한말 애국 계몽 운동의 일환으로 설립된 근대적 사설 교육 기관이었다. 그러나 1911년 일제가 ‘사립학교 규칙’을 통해 그 시설 및 재산을 강탈하여 보통학교를 설립...
개항기에서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에 있던 사립 학교. 개항기 애국 계몽 운동 시기에 전국 각지에는 지역 유지들의 주도로 사립 학교가 설립되어, 이른바 ‘교육 구국 운동’을 주도하였다. 1908년(순종 2) 충청남도 지역의 공·사립 학교 수는 88개였으며, 전체 교사 수는 255명, 학생 수는 3,820명이었는데, 같은 시기 서산, 태안, 해미 지역에는 6개의 교육 기관...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반양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슬기롭게 꿈을 키우는 예절 바른 학생’이라는 교육 지표 아래 자기 주도적으로 공부하며 꿈을 키우는 학생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열심히 배우고 바르게 행하자’이다. 1912년 3월 8일 해미공립보통학교로 인가받아 그해 5월 10일 개교하였다. 1939년 4월 1일 해미면 심상소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