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흥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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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굴미봉(掘尾峰) 아래 동쪽으로 바다와 인접하고 있어 구산포(邱山浦)라고 알려져 있으며, 마을 지형(地形)이 거북의 꼬리와 같다 하여 구미(龜尾)라고도 하였다. 본래 평해군(平海郡) 근북면의 지역으로서, 1916년 3월 1일 울진군 기성면 구산리로 개편되었다. 구산리는 굴미봉 아래 위치하며, 동쪽은 동해 바다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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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무신. 본관은 영양(英陽). 할아버지는 남광우(南光佑)이고, 할머니는 안동권씨이다. 아버지는 임천(臨川) 남세영(南世英)이며, 어머니는 순흥안씨로 안윤(安玧)의 딸이다. 부인은 증지평(贈持平) 경안(景顔)의 딸이다.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고성리 구만동으로 분가하여 살면서 아버지가 살고 있는 오른갈[노음] 옛집을 찾아가 문안을 올리는데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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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지역에서 세거해 온 성씨. 15세기 전반까지 각 읍 성씨의 존재 상태를 살필 수 있는 주요한 사료인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를 보면 울진의 토성(土姓)은 임(林)·장(張)·정(鄭)·방(房)·유(劉)가 있었고, 속성(屬性)으로는 영천(榮川)에서 이주한 민(閔)씨가 있었다. 평해의 토성으로는 황(黃)·방(房)·수(水)씨가 있고, 백성성(百姓姓)으로 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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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자미를 시조로 하고 안오상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울진군의 세거 성씨. 순흥안씨의 시조는 고려 신종 때 별장을 역임한 안자미로 아들 삼형제를 두었는데, 그 후손들이 순흥안씨를 대표하는 세 파를 구성하고 있다. 경상북도 울진 지역에는 삼파의 파조인 안축의 후손을 비롯하여 여러 지파의 후손들이 세거하고 있다. 순흥안씨는 황해도관찰사를 지낸 안오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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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에 속하는 법정리. 새로 된 마을이라 하여 새림·새름 또는 신림동이라 하였다. 1475년 경에 순흥안씨(順興安氏)가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본래 울진군 상군면(上郡面)에 속한 지역으로서, 1916년 3월 1일 용제동(龍堤洞)의 일부 지역이 통합되어 신림리로 개편되었다. 신림리의 서쪽에는 악구산(岳丘山)[652.9m]이 높이 솟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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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에 속하는 법정리. 북수동·대잠동·이을동을 병합하고 새로 번창하라는 뜻으로 신흥리라 하였다. 1520년 경에 순흥안씨(順興安氏)인 언문(彦文)이 마을을 개척하면서 사람이 들어와 살기 시작했고, 그 뒤 여러 성씨가 들어와 마을이 형성되었다. 본래 울진군 매화면에 속한 지역으로서, 1916년 4월 1일 북수동(北水洞)·대잠동(大岑洞)·이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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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울진 지역으로 이주한 순흥안씨 입향조. 안오상은 사초 문제에 연좌되어 평해군수(平海郡守)로 좌천되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관직에서 물러나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노동리에 정착하여 순흥안씨 평해파를 형성하였다. 1831년 대홍수로 인하여 30세손 안하원(安夏源)이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척산리 자산마을로 이주하여 순흥안씨 집성촌을 이루었다. 본관은 순흥(順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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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오곡리 날아실마을에 있는 조선 중기 안오상의 신도비. 오곡리 날아실마을 동편 김질골과 제사골 사이의 구릉지 남쪽 끝자락에 있다. 안오상은 순흥안씨(順興安氏) 안축(安軸)의 후손으로 을사사화(乙巳士禍)에 연루되었으나 치적을 인정받아 화(禍)를 면하였고, 1548년(명종 3) 평해군[현 평해읍]에 들어와 순흥안씨 울진 입향조가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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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정명리에 건립된 안용관의 독립운동을 기리는 비. 안용관의 독립운동이 국가로부터 인정을 받아 1983년 8월 30일 애국지사로 추서되어 포상이 있었고, 1984년 10월에는 국가의 지원으로 묘역이 정비되었다. 이러한 안용관의 애국심을 기리고, 후세 교육의 장을 마련하고자 지역 인사들이 안용관 추모비건립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성금을 모아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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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월송리에 있는 고려 후기의 문신 안축의 행적을 기리는 비. 안축 유적비는 고려 후기의 문신인 안축이 경상북도 울진군을 배경으로 많은 문학작품을 남긴 것을 기념하여 1991년 10월 울진군 평해읍 월송리에 건립한 유적비이다. 안축은 순흥(順興)을 본관으로 하며, 자는 당지(當之), 호는 근재(謹齋)이다. 충혜왕(忠惠王) 때 강원도존무사(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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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이름은 두가지 설이 있다. 첫째로 935년 경에 신라 경순왕(敬順王)의 왕자인 마의태자(麻衣太子)가 손씨(孫氏) 모후(母后)와 함께 이곳으로 피신왔다가 모후가 이곳에서 별세하고 왕자는 금강산으로 갔다는 설이 있고, 둘째로 1361년 원(元)나라 말엽에 한산동(韓山童) 두목 이이조는 홍건적이 결빙기를 이용하여 남침하므로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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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돌배나무가 많았다 하여 배나뭇들 또는 이평·이목평이라 하였다. 1592년(선조 25) 경 임진왜란을 피해 들어와 사람이 살기 시작하여 마을이 형성되었다. 본래 평해군 근북면(近北面)의 지역으로서, 1916년 3월 1일 심수리(深水里)·비지리(飛只里)가 통합되어 이평리로 개편, 울진군 기성면에 편입되었다. 이평리 북쪽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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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정명사(正明寺)가 있었으므로 정명이라 하였다. 혹은 1379년에 태사당(太師堂) 황서(黃瑞)가 마을을 개척할 때 산세(山勢)가 바르고, 앞 내[川]가 맑게 흐르므로 정명(正明)이라 하였다고 한다. 1379년 경에 태사당 황서가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본래 평해군 근북면(近北面)에 속한 지역으로서, 19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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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에서 동일한 조상의 후손들이 사회적·정치적·경제적 우위를 점하는 촌락. 울진군에서 동일한 조상의 후손들로 구성된 부계혈연집단의 성원들이 특정 마을에서 다수를 이루고, 이들이 지배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마을을 가리킨다. 이런 특성을 보이는 마을에 동족부락·씨족부락·동성촌락·동족촌 등의 용어를 적용하고 있다. 여러 성씨들로 구성된 마을이나 특정의 우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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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에 속하는 법행리. 마을 뒤의 산세(山勢)가 척(尺)자와 비슷하다 하여 자산 또는 척산(尺山)이라 하였다. 본래 평해군 원북면(遠北面)에 속한 지역으로서, 1916년 3월 1일 암곡리(庵谷里)가 통합되어 척산리로 개편, 울진군 기성면에 편입되었다. 척산리의 동쪽은 기성리와 동해(東海)가 있고, 서쪽은 정명천(正明川)의 상류(上流)가 흐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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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척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각석문. 마애각석(磨崖刻石)으로도 불리는 각석문(刻石文)은 바위나 절벽에 새겨진 글씨로 금석문의 일종이다. 각석문은 대부분 지명이나 건축물 등과 관련된 것이 많다. 주로 마을 입구의 큰 바위에 새겨져 지명을 알리거나 명승지에 그 경치와 어울리는 이름을 새기기도 하고, 불경과 관련된 구절을 적어 두기도 한다. 또한 어떤 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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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척산리 척산마을에 있는 일제강점기 10칸 겹집. 척산면사무소 남쪽에 정명천을 끼고 ⊂자형으로 생긴 야산 골 안에 척산마을이 있다. 순흥안씨가 오래전에 개척한 곳으로 그 후손들이 세거해 온 탓에 고가가 많이 남아 있는 전통 마을이다. 국도 7호선이 관통하는 남동쪽을 마을 입구로 삼았고, 집들은 골짜기 복판으로 난 골목 양편으로 들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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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척산1리 자산마을에서 음력 정월 대보름 마을의 풍년과 평화를 위하여 지내는 마을 제사. 우리나라는 마을마다 그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을 모신 당집이 있다. 당집 혹은 당산나무를 신이 깃드는 신성공간으로 여기고 그 곳에서 마을 주민들이 제를 올린다. 제를 지낼 때에는 온 마을 사람들이 준비에서부터 마무리까지 공동으로 해결하여 결속력을 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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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옛날 노씨(魯氏)가 많이 살고 있던 마을에 큰 화재가 발생하여 노씨는 떠나가고 황씨(黃氏)가 남게 되자 자기들의 성씨인 황(黃)에서 황자와 그 마을에 있었다는 큰 보(堡)에서 보자를 따 황보(黃堡)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본래 평해군 근북면(近北面)에 속한 지역으로서, 1916년 3월 1일 북하리면의 금강리(錦江里)가 통합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