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라남도 여수 출신 교육자이면서 서예가. 여수 출신 교육자로 후학을 양성하고 여수 지역에 음악 단체를 창립하여 지도하고, 여수시교육장과 문교부 교육과정 심의위원 등 교육 관료로서 헌신하였으며, 말년에는 서예가로 활동하였다. 여수시 봉산동 출신으로 대구사범대학을 졸업 하고 한 때 여수서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일본 동경성악전문학교를 졸업한 후 경성상공학교 교사로 근무하다가, 광복을...
-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권문(金權文)[1912~1983]은 1930년대 전라남도 여수 지역의 항일운동을 주도한 인물이다....
-
한국 최초의 프로 권투 세계 챔피언. 함경북도 북청 출신으로 월남하여 여수에 정착하였다. 방호남 사범의 지도로 권투를 시작하여 전국을 석권하고, 국가대표를 거친 후 1966년 세계복싱협회(WBA) 주니어미들급 챔피언에 올라 우리나라 최초로 세계챔피언이 되었다. 1·4후퇴 때 가족과 함께 월남하였고, 여수여항중학교 교장선생님의 권유로 복싱에 입문하였다. 방호남 사범의 지도하에 ‘여수...
-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정치인 및 경제인. 은행 근무를 시작으로 경제인으로 활동하다가 국회의원과 여수군수를 지낸 정치인이다. 여수시 서교동에서 출생하여 일본 와세다대학 정경학부를 졸업했고, 해동은행, 한성은행, 동아일보 여수지국 등에서 근무했다. 1948년 대한독립촉성국민회로 제헌국회의원을 역임하였고 여수군수를 지냈다. 우리나라 초대 대법원장인 가인 김병로의 사위이다....
-
전라남도 여수에서 활동한 개화기 관리 출신의 신교육 선각자. 여수시 삼산면 서도리 출생으로 육군교관(1903), 경무관(1905) 등의 고관직을 역임했으며, 사재를 출연하여 1906년 11월 16일 사립낙영학교를 설립하였다. 스스로 교장 겸 교사가 되어 신교육을 실시했다. 호는 우탁(又濯). 삼산면 서도리 출생으로 개화기에 신교육의 선각자다. 1899년 일본명치대학 법학부를 졸업하...
-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경제인 및 정치인. 여수에서 출생하여 한국은행부총재를 역임하는 등 금융 분야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 하였고, 5.16 군사정변 때 국가재건최고회의 재정자문위원으로 초빙되어 경제개발5개년계획에 깊이 관여를 하였다. 제8대와 제9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고, 사단법인 한국산업정책연구소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1914년 여수에서 출생하여 여수공립보통학교 졸업, 부산제2공...
-
광복 공간에서 6.25 전쟁까지 활동한 정치인. 보성전문대학과 메이지대학을 졸업하고 건국준위윈회의 여수치안부장 그리고 6. 25전쟁 때 인민위원장 역임하였다. 김수평은 광복 공간에서 여수 지역의 중심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경력에서 볼 수 있듯이 광복 후 좌익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그에 관한 기록은 그리 많지 않다. 『여수·여천향토지』와 문정인의 기록을 통하여 김수평을 단면이나마...
-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에서 활동한 기업인. 경상남도 의령군에서 태어난 김영준은 15세에 일본인 상점의 점원으로 사회생활의 첫 발을 내디뎠다. 1917년 일본으로 건너갈 기회를 얻어 일본에서 고무 배합 기술을 익힌 뒤, 1926년 부산에 천일고무공장을 세워 천일표 고무신을 생산함으로써 기업가로 변신했다. 그러나 일본 회사 마루다이[丸大]로부터 유사상표 사용이란 트집에 몰려 전 재산...
-
일제강점기에는 언론인으로 광복 후에는 부흥부장관을 지낸 정치인. 일본과 미국 유학을 거쳐 일찍이 구미 각국을 순방하여 해박한 지식의 소유자로 일제하에 동아일보 기자와 만주국의 재무부 참사관을 지내고, 광복 후에는 미군정의 외자청의 구매처장을 거쳐 제5대 민의원에 당선되기도 했다. 호는 종산(種山)으로 김한승의 아들로 일본 유학을 거쳐 미국 콜롬비아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한 인물로 일찍...
-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정치인. 여수군청 근무를 시작으로 화양면장, 여수시장을 역임하였다. 광복 후 제3대 여수읍장으로 발탁된 뒤 정부 수립 후 지방자치법의 시행에 따라 여수시장이 되었다. 재임기간에 시내 간선도로를 확장 개설하는 업적을 남겼다. 1958년 여수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고, 1960년 세 번째 여수시장에 임용되었다. 여수보통학교와 여수수산학교를 졸업하고...
-
조선총독부 중추원참의를 지낸 일제강점기의 기업인. 김한승은 여수군 출신으로 대한제국 말기에 여수군 주사 등 하급 관리직을 지냈으나, 이후 지역 유지로서의 이력이 더 두드러진다. 1910년부터 주요 공직을 거쳤으며 1920년에는 전라남도 도평의원에 선출되어 세 차례 연임했다. 조선수산회 이사로 여수자동차 중역, 중추원 참의에 임명되었다. 여수군 주사 재직 때 사재를 기부하여 여수 지...
-
전라남도 여수 출신 영화배우. 1930년 2월 4일 전남 여수 봉강동 출생으로 서초등학교, 여항중학교를 거쳐 순천사범대 체육과를 졸업했다. 순천중학교에서 교편을 잡던 24세 때 배우가 되기 위해 악극단에 들어갔다, 1955년 이강천 감독의 「격퇴」로 데뷔한 뒤 이듬해 「5인의 해병」을 통해 액션배우로 한국영화계의 주목을 받았다. 초기에는 주로 멜로드라마 주인공으로 출현했지만 60년...
-
전라남도 동부지역에서 활동한 정치인. 경찰공무원으로 출발하여 국회의원을 지낸 정치인이다. 호는 양촌(陽村)으로 광양 출신으로 여수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중앙대학교 법대를 졸업하여. 제10회 고등고시 행정과에 합격하였다. 그 후 서울대학교 대학원졸업을 졸업하고. 26세의 젊은 나이로 총경으로 전주경찰서장을 지냈다. 1972년 신민당 공천으로 전남 제4선거구(여수, 여천, 광양)에서 제9...
-
제2대 대한민국 해군참모총장. 여수 출신으로 일본 유학 후 선장면허를 얻어 선장으로 활동하다가 광복되던 해 조선 선박운항통제 주식회사의 선박감독관이 되었다. 1953년 6월 중장으로 제2대 해군참모총장이 되었다. 삼산면 거문도 덕촌리 출신으로 일본 간사이대학[關西大學] 전문부를 졸업한 후 관립진해고등해원양성소를 졸업하고 1932년 갑종 선장면허를 얻어 선장으로 있다가 광복되던 해...
-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박우종백(朴又宗伯)[1905~1960]은 1930년대 전라남도 여수 지역의 항일 운동을 주도한 인물이다....
-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정치인. 경남 사천시 출신으로 여수에 이주하여 일본에 유학, 정부수립 후에는 대통령의 주치의를 거쳐 보사부장관을 지냈다. 대한적십자 총재직 시절 여수에 적십자병원을 유치하는데 큰 공헌을 하였고, 여수 야구의 저변확대에 공헌을 하였다. 손창환의 출생지는 『여수·여천향토지』에는 사천시 삼천포 출신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손창환 묘비에는 전라남도 함평으로...
-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일본인 경제인. 오오츠카 지사브로[大塚治三郞, 1882~?]는 일제강점기 후쿠나가 마사지로[福永政治郞, 1864~1935]가 설립한 고뢰농장(高瀨農場)[다카세농장]의 창설 지배인으로 고뢰농장의 상무취체역, 여수전기주식회사 사장, 전남도회 의원, 여수읍회 의원, 여수실업협회 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
전라남도 여수시 출신의 의사. 일본에 유학 후 군의관으로 전역하고 병원을 개원하여 인술을 베풀고, 여수로타리클럽 회장, 여수시 체육회장, 진남제전위원회 위원장, (사)진남제전보존회 이사장을 역임하면서 지역사회발전에 노력하였다. 호는 청송(靑松)으로 일본 규슈[九州]제국대학을 졸업하고 일제강점기 때 군의관 소령으로 전역하여, 중앙동에서 제중의원을 개원하여 시민들에게 인술을 베풀었다....
-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유병옥(兪丙玉)[1903~?]은 1920년대 전라남도 여수 지역의 항일운동을 주도한 인물이다....
-
전라남도 여수시에서 활동한 경제인이자 정치가. 여수 지역에서 정미소사업을 시작으로 경제계에서 활동을 하다가 정계로 진출하여 국회의원으로 활동하였다. 호는 석정(石亭)으로 여수보통학교와 여수간이수산학교를 졸업한 후 22세 때 자영 공성정미소를 설립했다. 광복 후에는 초대읍장을 역임했으며, 읍장 퇴임 후에는 여수국민회장, 금련(金聯)여수회장, 제2대 상공회의소 회장(1948~1951)...
-
전라남도 여수 출신 교육자이자 사회운동가. 경성여자 사범학교 졸업 후 여수서초등학교를 비롯하여 여수여자고등학교 등에서 15년간 교사로 봉직하고 제1대 전라남도 교육위원을 지낸 교육자이며, 한국부인회 여수지회장과 사단법인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여수에서 민족 교육과 항일 운동을 전개한 이상호의 딸로 1942년 경성여자사범학교 졸업하였다. 여수서초등학교를 비롯하여 여수...
-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정치인. 서울 중앙고보 재학 시절 3.1운동 주동자로 활약하였으며, 일본 유학 후 고향으로 돌아와서는 청년운동에 헌신했다. 일제가 철도시설을 위하여 철도연변(鐵道沿邊) 부지를 헐값에 강제 매입하려는 일제의 횡포와 부당성을 지적하여, 정상적인 보상을 받는 등 주민의 권익옹호에 앞장섰으며, 여수군수, 전남도 사회교육과장, 여수일보사장, 제2대 때부터 5대...
-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조병섭(曺秉涉)[1908~1950]은 1930년대 전라남도 여수 지역의 항일 운동을 주도한 인물이다....
-
전라남도 여수에서 활동한 교육자이자 음악가. 충청남도 천안 출생으로 온후한 인품에 천성이 청민(淸敏)한 교육자다. 22세에 한성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청주공립보통학교를 시작으로 공주, 나주, 광주 등지를 거쳐, 1925년에 여수수산학교에 부임하여 여수와 인연을 맺고 여수여고와 수산학교에서 교장을 역임했다. 1946년에는 여수 야간상업중학원[현 정보과학고]를 설립하였고, 1947년에는...
-
조선 중기 신안주씨 여수 입향조이자 효자. 본관은 신안. 자는 사집(士集). 할아버지는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무열공(武烈公) 주몽룡(朱夢龍)이고, 아버지는 인조반정 때 공을 세워 진무원종일등공신(振武原從一等功臣)에 책록된 주인달(朱仁達)이다. 아들은 주한동(朱漢東)이다. 진주에서 태어난 주법명은 어려서부터 효행으로 어버이를 섬기고 가족의 화목에 대하여 남달랐으며, 문학에도 뛰어났...
-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의료인이자 문예발전에 기여한 인물. 1931년 광주 출신으로 광주의대를 나와 안과의사가 된 그는 1964년 여천보건소장으로 부임한 것이 여수와의 인연의 시작이었다. 부임하자 자신의 전공을 살려 무료 개안수술 5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개안센터를 개설 운영, 장님이라 치부하던 많은 사람들의 눈을 고쳐주는 등의 인술을 베풀었다. 1965년 여수 지정익안과 개...
-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최용식(崔鎔植)[1908~1952]은 1930년대 전라남도 여수 지역의 항일 운동을 주도한 인물이다....
-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최풍룡(崔豊龍)[1905~1937]은 1920년대 전라남도 여수 지역의 항일 운동을 주도한 인물이다....
-
전라남도 여수 출신으로 일제강점기와 광복 공간에서 활동한 정치인. 한학을 닦아 일제강점기에 도평의원을 지냈고, 동도보통학교를 설립하였다. 건국 후에는 줄곧 어협조합장, 면의회의장, 도교육위원 등 공직에서 활동하였다. 삼산면 동도리 출생으로 호는 귤산(橘山)이다. 한학을 닦아 일제강점기에 도 평의원을 지냈고, 1925년 거문도 동도리에 동도보통학교를 설립하였다. 건국 후에는 줄곧 어...
-
조선 중기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하다 귀국하여 조선을 서양에 소개한 네덜란드 선원. 헨드릭 하멜(Hendrick Hamel)[1630~1692]은 우리나라를 최초로 서방에 소개한 인물로 네덜란드 호르큼 사람이다. 17세기 전반에 네덜란드는 열대 농작물과 동남아산 향료, 차, 칠기, 비단, 도자기, 면직물을 거래하려고, 인도나 일본, 대만 등지에 거래처를 둔 동인도회사(VOC)...
-
전라남도 여수 출신으로 제헌국회의원을 지낸 정치인. 5.10 총선거로 여천 지역에서 제헌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으며 제2대 국회의원과 여수어업조합장, 한국 어민회 초대회장을 지냈으며, 여수시장을 역임하면서 지역개발에 기여하였다. 여수수산학교를 졸업하고, 1948년 5월 10일 여천 지역에서 제헌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으며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무소속으로 당선되었다. 여수어업조합장,...
-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일본인 경제인. 후쿠나가 마사지로[福永政治郞, 1864~1935]는 여수 지역에 일제의 산미 증식 계획의 일환으로 고뢰농장[다카세농장]을 설립한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