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군 봉산면
-
충청남도 예산군 응봉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시대에 대흥군(大興郡) 내북면(內北面) 지역일 때 건지화(乾芝化)라 부른 데서 건지화리(乾芝化里) 지명이 유래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대흥군 내북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건지화리라 하여 예산군 봉산면(峰山面)에 편입되었다. 1917년 봉산면이 응봉면(鷹峰面)으로 개칭되어 응봉면 건지화리가 되었다....
-
충청남도 예산군 응봉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시대에 대흥군(大興郡) 외북면(外北面) 지역일 때 닭재 밑의 마을로 우물이 유명하여 ‘달기물’ 또는 ‘계정(鷄井)’이라 부른 데서 계정리(鷄井里) 지명이 유래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대흥군 외북면 지역이었는데, 1914년 군면 폐합에 따라 내계정리(內鷄井里), 외계정리(外鷄井里), 삼거리를 병합하고, 계정리라 하여 예산군 봉산면(...
-
충청남도 예산군에 있는 산이나 언덕을 넘어 주변의 다른 지역으로 연결하는 교통로가 되는 산등성이의 낮은 부분. 충청남도 예산군 지역은 지형의 특성상 동쪽의 차령산지(車嶺山地)와 서쪽의 가야산지(伽倻山地)에 높은 고개가 있을 뿐 남북으로는 고개다운 고개가 없다. 고개는 교통시설이 빈약했던 전근대 사회에서는 큰 제약이 되기도 했지만, 사람과 물자가 통과하는 중요한...
-
충청남도 예산군 봉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시대에 덕산군(德山郡) 외야면(外也面) 지역일 때 ‘높은 골짜기’에 있으므로 고도실 또는 고도촌(古道村)이라 부른 데서 고도리(古道里) 지명이 유래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덕산군 외야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고현내면(古縣內面)의 군대리(君垈里) 일부를 병합하고, 고도리라 하여 예산군 봉산면에 편입되었...
-
충청남도 예산군 봉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 구산(九山)과 식암(息巖)의 이름을 따서 구암리(九岩里)라 부른 데서 지명이 유래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덕산군(德山郡) 내야면(內也面)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식암리, 구산리와 고현내면(古縣內面)의 군대리(君垈里) 일부를 병합하고, 구암리라 하여 예산군 봉산면에 편입되었다....
-
충청남도 예산군 봉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 궁리(宮里)와 평리(坪里)의 이름을 따서 궁평리라 부른 데서 지명이 유래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덕산군(德山郡) 외야면(外也面)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궁리, 세영동(細永洞), 평리, 신동(新洞) 일부를 병합하고, 궁평리라 하여 예산군 봉산면에 편입되었다. 궁평리의 전 지...
-
충청남도 예산군 봉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시대에 덕산군(德山郡) 외야면(外也面) 지역일 때 ‘고개 밑’이어서 쇠재 또는 금티[금치(金峙)]라 부른 데서 금치리 지명이 유래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덕산군 외야면의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월조리(月照里), 중안리(中安里), 탄리(炭里), 신동(新洞)의 일부를 병합하고, 금치리라 하여 예산군 봉산면...
-
충청남도 예산군 응봉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시대에 대흥군(大興郡) 외북면(外北面) 지역일 때 갈대가 많으므로 갈울 또는 노동(蘆洞)이라 부른 데서 노화리(蘆花里) 지명이 유래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대흥군 외북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몽석리를 병합하고, 노화리라 하여 예산군 봉산면(峰山面)에 편입되었다. 1917년 봉산면이 응봉면(鷹峰面)으로...
-
충청남도 예산군 봉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시대에 덕산군(德山郡) 내야면(內也面) 지역일 때 신당(神堂)이 있으므로 당골, 당곡이라 부른 데서 당곡리(唐谷里) 지명이 유래되었다. 백제 때는 금물현에 속했고, 신라 때는 이산군에 속하였다. 조선 초기에는 덕산현에 속했으며 말기에는 덕산군 내야면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시동(侍洞) 일부와 화은리의 일...
-
충청남도 예산군 봉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시대에 덕산군(德山郡) 고현내면(古縣內面) 지역일 때 대야골(大也골), 댓골, 대야동(大也洞), 대지동(大支洞)이라 부른 데서 대지리 지명이 유래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덕산군 고현내면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포두리(浦頭里), 송정리(松亭里), 화리(禾里), 군대리(君垈里) 일부와 내야면(內也面)의 사점리(...
-
충청남도 예산군 봉산면 대지리에 있는 강릉김씨 도정공파가 모여 사는 마을. 강릉김씨(江陵金氏) 모암공파(慕菴公派)의 파조는 시조 김주원(金周元)의 17대손인 김덕숭(金德崇)[1373~1448]이다. 김덕숭은 세종 때 한산군수를 지냈으나 부모 봉양을 위해 벼슬을 사임 하는 등 효행으로 이름 높아 명정을 받았고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에 기록되었다....
-
충청남도 예산군 응봉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시대에 대흥군(大興郡) 내북면(內北面) 지역일 때 등성이에 마을이 있으므로 등촌(登村)이라 부른 데서 등촌리 지명이 유래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대흥군 내북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등촌리라 하여 예산군 봉산면(峰山面)에 편입되었다. 등촌리는 1917년 봉산면이 응봉면(鷹峰面)으로 개칭되어 응봉면 등촌...
-
충청남도 예산군 봉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시대에 덕산군(德山郡) 외야면(外也面) 지역일 때 마산리(馬山里)와 석교리(石橋里)의 이름을 따서 마교리(馬橋里)라 부른 데서 지명이 유래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덕산군 외야면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석하리(石下里), 석교리, 항리(項里), 마산리와 면천군(沔川郡) 마산면(馬山面)의 대곡리(大谷里) 일부를...
-
충청남도 예산군 봉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 봉동(鳳洞)과 서림리(西林里)의 이름을 따서 봉림리(鳳林里)라 부른 데서 지명이 유래되었다. 백제 때는 금물현에 속하였고, 신라 때는 이산군에 속했으며, 고려 때는 덕풍현에 속하였다. 조선 초기에는 덕산현에 속하였고 조선 후기에 본래 덕산군(德山郡) 내야면(內也面)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
-
충청남도 예산군 봉산면 고도리에 있는 봉산면의 행정 사무를 맡아 보는 기관. 봉산면행정복지센터는 예산군청에 속하여 있으며, 봉산면민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하여 가족관계 등록·주민등록 업무, 민원서류 발급, 리·반 조직 운영 등 지방행정의 기초 업무를 관장하고 있다. 예산군 봉산면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하여 설치...
-
충청남도 예산군 봉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 사점(沙店)과 돌리(乭里)[석리(石里)]의 이름을 따서 사석리(沙石里)라 부른 데서 지명이 유래되었다. 조선시대에 덕산군(德山郡) 내야면(內也面)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돌리, 사점리(沙店里), 목리(沐里), 후종리(後宗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고, 사석리라 하여 예산군 봉산...
-
충청남도 예산 지역에서 활동한 정치인. 성만용(成萬鏞)[1907~1983]은 예산군 봉산면에서 활동한 정치인으로, 1956년 초대 민선 면장을 지냈다. 성만용의 본관은 창녕(昌寧)이며, 호는 금암(錦岩)이다. 아버지는 성기호이고, 어머니는 김해김씨(金海金氏)이다. 성만용은 1907년 2월 29일 충청남도 당진군 동면 하공리에서 태어나 19...
-
충청남도 예산군 응봉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시대에 대흥군(大興郡) 외북면(外北面) 지역일 때 송내리(松內里)와 석우리(石隅里)의 이름을 따서 송석리(松石里)라 부른 데서 지명이 유래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대흥군 외북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송내리와 석우리를 병합하고, 송석리라 하여 예산군 봉산면(峰山面)에 편입되었다가 1917년 봉산면이 응...
-
충청남도 예산군 봉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인조(仁祖) 때 야곡(冶谷) 조극선(趙克善)이 효성이 지극하여 12살에 어머니 상을 당하여 시묘살이를 하였으므로 시묫골이라 하였는데, 시묫골이 변하여 시묵골, 시묘동(侍墓洞), 시동(侍洞)이라 부른 데서 시동리 지명이 유래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덕산군(德山郡) 내야면(內也面)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
충청남도 예산군 응봉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시대에 대흥군(大興郡) 내북면(內北面) 지역일 때 ‘새로 터를 잡아 이룩’하였으므로 새터 또는 새말이라 부른 데서 신리(新里) 지명이 유래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대흥군 내북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신대리를 병합하고, 신리라 하여 예산군 봉산면(峰山面)에 편입되었다. 신리는 1917년 봉산면이 응봉면...
-
충청남도 예산군에서 생산되는 고추. 예산 꽈리고추는 예산군 봉산면, 고덕면, 광시면에서 재배되는 농산물이다. 예산에서 꽈리고추를 재배한 것이 언제부터였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1980년대 시설채소화가 이루어지는 시기에 재배가 이루어진 것으로 판단된다. 예산 지역에서 꽈리고추가 특산물로 생산되는 것은 유기질비료 다량 사용으로 토양이 비옥해져 재배에 알...
-
충청남도 예산군 봉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시대에 덕산군(德山郡) 내야면(內也面) 지역일 때 ‘옻나무 밭’이 있으므로 옻밭골, 옥밭골 또는 옥전(玉田)이라 부른 데서 옥전리 지명이 유래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덕산군 내야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상안리(上安里), 중안리(中安里), 화은리 일부를 병합하고, 옥전리라 하여 예산군 봉산면에 편입되었...
-
충청남도 예산군 봉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시대에 덕산군(德山郡) 외야면(外也面) 지역일 때 옹안(雍安)이라 부른 데서 옹안리 지명이 유래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덕산군 외야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대덕리(大德里)를 병합하고, 옹안리라 하여 예산군 봉산면에 편입되었다. 북부에 해발고도 100m 내외의 구릉지가 발달되어 있고, 남부 100m 이...
-
충청남도 예산군 응봉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시대에 대흥군(大興郡) 외북면(外北面) 지역일 때 ‘팔봉산 밑 골짜기가 되어 구름과 안개가 늘 끼므로’ 구름실 또는 운곡(雲谷)이라 부른 데서 또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골짜기이므로’ 안골 또는 남안골이라 부른 데서 운곡리 지명이 유래되었다. 조선시대에 대흥군 외북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사당...
-
충청남도 예산군 봉산면 봉림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이계전의 부조묘. 이계전 부조묘는 조선 전기의 문신 이계전(李季甸)[1404~1459]을 모신 부조묘[큰 공이 있어 영원히 사당에 모시도록 나라에서 허락한 신주를 모신 사당]이다. 이계전의 본관은 한산, 자는 병보(屛甫), 호는 존양재(存養齋), 시호는 문열(文烈)이다. 목은 이색(李穡)의 손자...
-
충청남도 예산군 봉산면 봉림리에 세워진 효자 이후직의 정려. 이후직 정려는 효자 이후직(李厚稙)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1905년 세워졌다. 이후직의 본관은 한산, 자는 성사(聖仕), 또는 휴은(休隱)이다. 취암 이흡의 9세손이다. 이후직은 어려서부터 효심이 지극하였는데 어머니가 병으로 앓아눕자 크게 걱정하여 용한 의원을 찾아가 진료를 부탁하였다. 어...
-
충청남도 예산군 응봉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시대에 대흥군(大興郡) 외북면(外北面) 지역일 때 ‘대흥 고을에서 북쪽 맨 갓마을’이 되므로 갓담[갓뜸], 갓다머니 또는 입침(笠沈)이라 부른 데서 입침리 지명이 유래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대흥군 외북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이목동(梨木洞)을 병합하고, 입침리라 하여 예산군 봉산면(峰山面)에 편입되...
-
충청남도 예산군 봉산면 봉림리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지은 전통가옥. 정대영 가옥은 정대영의 할아버지 정홍모(鄭弘謨)가 조선 중기 무신 정현룡(鄭見龍)[1547~1600]이 터를 잡고 살던 곳에 1926년 건립한 가옥이다. 정대영 가옥은 일제강점기에 건축한 것으로 건축물이 잘 남아 있어 1987년 12월 30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85호로 지정되었다....
-
충청남도 예산군 응봉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시대에 대흥군(大興郡) 외북면(外北面) 지역일 때 ‘붉은 고개’인 주령(朱嶺)이 있으므로 주령, 주령이 또는 주랭이라 부른 데서 주령리(朱嶺里) 지명이 유래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대흥군 외북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내주령리와 외주령리를 병합하고, 주령리라 하여 예산군 봉산면(峰山面)에 편입되었다가...
-
충청남도 예산군 응봉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시대에 대흥군(大興郡) 외북면(外北面) 지역일 때 ‘그릇점’이 있으므로 점실, 즘실 또는 증곡(曾谷)이라 부른 데서 증곡리 지명이 유래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대흥군 외북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평촌(坪村), 산직리(山直里)를 병합하고, 증곡리라 하여 예산군 봉산면(峰山面)에 편입되었다. 1917년...
-
충청남도 예산군 응봉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시대에 대흥군(大興郡) 외북면(外北面) 지역일 때 고인돌이 있어서 고인돌 또는 지석(支石)이라 부른 데서 지석리 지명이 유래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대흥군 외북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상동(上洞)을 병합하고, 지석리라 하여 예산군 봉산면(峰山面)에 편입되었다. 지석리는 1917년 봉산면이 응봉면으로...
-
충청남도 예산군 응봉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시대에 대흥군(大興郡) 군내면(郡內面) 지역일 때 벌판이 있으므로 들말 또는 평촌(坪村)이라 부른 데서 평촌리 지명이 유래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대흥군 군내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세곡리(細谷里), 둔대리(屯垈里)를 병합하고, 평촌리라 하여 예산군 봉산면(峰山面)에 편입되었다. 평촌리는 1917년...
-
충청남도 예산군 봉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 하안(下安)과 평리(坪里)의 이름을 따서 하평리(下坪里)라는 지명으로 부르게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덕산군(德山郡) 내야면(內也面)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평리, 목리(沐里), 후종리(後宗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고, 하평리라 하여 예산군 봉산면에 편입되었다. 대부분의 지역에...
-
조지수를 시조로 하고 조전오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예산의 이거 성씨. 중국 송나라가 멸망하자 송태조의 후손 4형제가 고려로 망명하여 백천, 한양, 풍양, 양주 등에서 각각 시조가 되었다. 480여 년 전에 최초의 족보를 만들 때 4형제 중 둘째인 조지수(趙之壽)가 한양조씨(漢陽趙氏)의 시조가 되었다. 한양조씨는 예산 입향 후 학자요 청백리인 야곡...
-
충청남도 예산군 봉산면 궁평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열부 단양우씨의 정려. 한홍조 처 단양우씨 정려는 봉계 한홍조(韓弘祚)[1682~1712] 처 단양우씨의 행적을 기려 1743년(영조 19) 명정을 받아 건립한 것이다. 단양우씨(丹陽禹氏)는 우석규(禹錫圭)의 딸로 한홍조와 혼인하였다. 한홍조는 자가 영숙(永叔)이고, 호는 연재(捐齋)이다. 단양우씨는 남편 한홍...
-
충청남도 예산군 봉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시대에 덕산군(德山郡) 외야면(外也面) 지역일 때 꽃밭이 있으므로 꽃밭들, 화전(花田)이라 부른 데서 화전리(花田里) 지명이 유래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덕산군 외야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군면 폐합에 따라 고상리(高翔里)와 고현내면(古縣內面)의 군대리(君垈里) 일부를 병합하고, 화전리라 하여 예산군 봉산면에 편입되었다....
-
충청남도 예산군 봉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시대에 덕산군(德山郡) 내야면(內也面) 지역으로 인조 때 야곡(冶谷) 조극선(趙克善)이 시묘를 살면서 늘 건너다녔다는 ‘효다리’가 있으므로 효다리, 효교(孝橋)라 부른 데서 효교리 지명이 유래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덕산군 내야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두암리(斗巖里)와 시동(侍洞), 평리(坪里)의 각...
-
충청남도 예산군 응봉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시대에 대흥군(大興郡) 내북면(內北面) 지역일 때 ‘절이 팔봉산(八峯山) 밑에’ 있으므로 뒷절 또는 후사(後寺)라 부른 데서 후사리 지명이 유래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대흥군 내북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북사동(北寺洞), 내사동(內寺洞)을 병합하고, 후사리라 하여 예산군 봉산면(峰山面)에 편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