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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400329
한자 申錫愚不忘碑
영어의미역 Memorial Stone for Sin Seoku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지도보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정은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불망비
건립시기/일시 1857년연표보기
관련인물 신석우
재질 석비
높이 175.5㎝
너비 64.5㎝
소재지 주소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정의]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신석우의 영세불망비.

[개설]

신석우[1805~1865]의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성여(聖如), 호는 해장(海藏),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1828년(순조 28) 진사가 되었고, 1834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855년(철종 6) 경상도관찰사를 지내면서 양산 지역과 관련을 맺었으나 1857년 파직되었다.

1860년 다시 등용되어 동지사로 청(淸)나라에 가서 서양인에 대한 중국의 정책을 살펴보고 이듬해 귀국하여 정부의 정책 결정에 기여하였다. 문장과 글씨에 뛰어나 1863년(철종 11)에는 해주기적비(海州紀蹟碑)의 서사관(書寫官)으로 특별 가자(加資)되기도 하였다.

[건립경위]

신석우는 경상도관찰사로 재직하면서 양산 통도사에 부과되던 제지역(製紙役: 종이 만드는 공역)을 면제해 주는 등 선정을 베풀었는데, 이를 기념하기 위해 불망비가 세워졌다.

[형태]

석비로서 비신의 크기는 높이 175.5㎝, 폭 64.5㎝, 두께 23㎝이다. 비문은 해서체다.

[금석문]

비의 앞면에는 제목으로 “자헌대부 도순찰사 신공 석우 영세불망비(資憲大夫都巡察使申公錫遇 永世不忘碑)”라고 쓰여 있으며 “무신년에 아직 민란이 회복되지 아니하였는데 남방의 관찰사가 되어 어진 정사로 교화를 폈다. 인의를 함께 베풀어 한결같이 태형이 모조리 없애니 산과 들이 모두 즐거워하는 은택이 흘러 그치지 않는다네(歲在戌申 事非復亂 觀察南方 化是慈棠 仁義幷施 盡員一荅 山野咸樂 恩流不息)”라 쓰여 있고, 측면에는 ‘함풍칠년이월일립(咸豊七年二月日立)’이라 되어 있다.

뒷면에는 “일국도원장 응허당사 수흡 영세불망비(一國都院長 應虛堂事壽洽 永世不忘碑)”라 새겨져 있고, “일곱 차례나 감영에 찾아가서 논 3백마지기를 돌려 받았다네. 급한 일을 아뢰어 성공시켰으니 유탁(劉琸)이 서주를 삼킨 것과도 같다네. 중들이 마음을 놓으니 사람들이 세사에 자랑한다네. 부탁하러 온 이들 만족은 있을지언정 부끄럼은 없다네(七返營門 還沓三百 告急成功 琸呑西州 居僧安堵 誇人行世 來客請事 有足無愧)”라고 쓰여져 있다.

[현황]

통도사 부도원은 1993년 월하(月下) 방장의 교시로 주변에 흩어져 있던 통도사 역대 고승의 사리를 모신 탑과 비를 새롭게 봉안한 곳이다. 부도원은 통도사 입구를 지나 ‘영취총림(靈鷲叢林)’이란 현판이 보이는 일주문 바로 앞에 있는데, 크게 상단과 하단으로 나뉘어 있다.

하단의 앞면엔 ‘통도사(通度寺) 부도원(浮屠園)’이라는 안내판이 석벽에 붙어 있다. 특히 하단의 둘째 줄에는 승려는 아니지만 통도사와 관련된 공적이 있는 인물들을 기리는 공덕비도 함께 안치되어 있는데, 신석우·응허당 영세불망비는 둘째 줄 왼쪽으로부터 6번째에 놓여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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