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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신제의 무대, 용당들 가야진사(伽倻津祠)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4A020104
지역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용당리 가야진사
시대 고대/삼국 시대/가야
집필자 이종봉

용신을 초대하는 향연이 이루어지는 곳이 바로 용당의 가야진이다. 가야진은 예로부터 가야와 신라의 전투가 자주 벌어졌던 곳으로, 가야진의 진은 군대가 주둔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에 용신을 모시는 가야진사낙동강을 건너는 장병의 무사귀환과 승리를 기원하던 사당이었다.

문헌에 보이는 가야진사는 다음과 같다. 『삼국사기』 제사지(祭祀志)에 따르면 신라는 강에 대하여 4곳에 국가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그 중 하나가 삽량주의 황산강(낙동강)변에 있었던 가야진사에서 벌어진 용신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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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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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진사(伽倻津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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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진사 가는 길

가야진사의 현 위치는 현재 양산시 원동면 용당리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김해시 상동면 여차리 용당나루와 마주보고 있으며, 용당나루 뒤편에 있는 산은 용산(龍山)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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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龍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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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龍山·해발 49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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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가 잘린 용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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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터널

『고려사』에는 이곳 용당에 가야진, 황산강 및 가야진연소(伽倻津衍所)가 있다고 전한다. 가야진연소는 용신을 제사지내는 사우(祠宇: 사당의 일종)를 가리킨다.(『고려사』 권57, 지리2, 양주) 『경상도지리지』에는 속칭 옥지연이라 부르는 가야진에 세종 3년(1421)에 적색의 용이 나타나서 이곳에서 수령이 제사를 올렸다고 하며, 이 기록은 『세종실록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보인다.(『경상도지리지』 양산군, 『세종실록』 권150, 지리지, 양산군, 『신증동국여지승람』 권22, 양산군) 이러한 기록에서 볼 때 위령제가 아닌 기우제로서의 제사 문화를 볼 수 있고, 이 변화는 백성들의 놀이문화와 함께 승화되어 발전한 것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첨부된 「팔도총도」는 우리나라 각 고을의 진산(鎭山, 그 마을에서 가장 중요한 산)과 주요 하천, 팔도지명, 주요 섬만을 간략하게 그린 지도이다. 이 작은 지도에 가야진 지명이 기재되어 있어 이 지역이 매우 중요한 지역임을 보여준다. 고지도 중 양산을 가장 자세하게 그린 〈1872지방군현지도〉에는 가야진과 용당진이 표시되어 있어 이곳이 낙동강 수로와 육로를 잇는 주요 교통로 상에 위치했음을 보여준다.

『경상도읍지』에는 가야진의 용당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바람이 없어도 물결이 이는데 이를 용유(龍遊)라 하고, 얼음이 얼면 밭이랑처럼 갈라지는데 이를 용경(龍耕)이라 한다. 사람들은 이를 보고 그 해의 풍흉을 점쳤다고 한다.(『경상도읍지』 양산군 산천조)

인조 13년(1635) 조임도(趙任道)의 『유관록』에 따르면 용당을 상하로 구분하여 상용당 하용당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렇게 양산시 원동면 용당리 가야진사에서는 1500여 년의 세월 속에서 백성들과 함께 여전히 용신이 숨 쉬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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