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렉토리분류

원조 손두부집의 손맛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4B030201
지역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통도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엄원대

지산리는 통도관광민박마을이다. 통도환타지아를 지나 왼쪽으로 돌아 마을길을 따라가면 갈래길이 나온다. 왼쪽으로 가면 평산마을, 오른쪽으로 가면 지산마을이다.

평산마을로 가는 길로 들어가면 길 왼쪽에 약수터가 나온다. 거기에 서서 오른쪽 영축산 쪽을 바라보면 ‘원조 손두부집’ 간판이 보인다. 그곳이 시어머니에게서 두부 만드는 법을 배워 17년째 전통방식으로 손두부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이정남(55) 아주머니가 운영하는 원조 손두부집이다.

 

웹사이트 플러그인 제거 작업으로 인하여 플래시 플러그인 기반의 도표, 도면 등의
멀티미디어 콘텐츠 서비스를 잠정 중단합니다.
표준형식으로 변환 및 서비스가 가능한 멀티미디어 데이터는 순차적으로 변환 및 제공 예정입니다.

‘원조 손두부집’ 간판

이정남 아주머니는 23살 되던 해에 한 살 위의 남편을 만나 결혼하여 이곳으로 시집왔다. 친정은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이다. 남편 고(故) 박효재 씨는 초등학교 졸업 후 절에서 생활하면서 목수일과 조각하는 일을 함께 하고 있었다. 그러나 32살 때, 일을 하다 떨어지는 사고를 당하면서 허리를 다쳤다. 입원하여 치료를 하고 퇴원 후 다시 일을 이어갔지만 몸이 약해져 다른 병을 얻으면서 다시 입원하는 악순환을 겪게 되었다.

그때 그의 시어머니인 김말수(92) 할머니에게서 손두부 만드는 일을 배웠다.

▶ 시어머니에게서 두부 만드는 법을 배우다

“그때는 제가 할 게 없더라고요. 남편과 함께 노동을 했는데 남편이 몸이 안 좋아 일을 못하게 되니 할 게 있어야지. 그래서 두부를 배우게 되었지요. 어머니가 ‘그거는 평생 고생이다.’며 못하게 하시더라고요. 두부 만드는 게 일이 많잖아요. 기계로 하지 않고 일일이 사람 손으로 해야 하고, 남들 다 자는 밤에 일을 해야 되니…… 그 옛날에는 물도 없고 불도 어둡고 고생이었지만 당시만 해도 내 생각으로 불도 밝고 물도 옆에 있어서 할 수 있겠다 싶어 말했는데…… 하긴 우리가 이 일도 안했으면 빚더미에 앉았지. 그래도 벌어서 병원에 몇 천 만원씩 갔다 넣고 해도 그때는 사는 게 편하더라고요.”

김말수 할머니 또한 윗대부터 두부를 만들어 통도사와 각 암자에 공급해오고 있어서 자연스럽게 그 일을 배운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손두부의 역사는 꽤 길며 통도사와의 인연 또한 깊다고 할 수 있다. 이정남 아주머니가 손두부를 만들면서 본격적으로 외부 손님을 받게 되었다.

 

웹사이트 플러그인 제거 작업으로 인하여 플래시 플러그인 기반의 도표, 도면 등의
멀티미디어 콘텐츠 서비스를 잠정 중단합니다.
표준형식으로 변환 및 서비스가 가능한 멀티미디어 데이터는 순차적으로 변환 및 제공 예정입니다.

김말수 할머니

남편은 일 년에 몇 달만 집에 있게 되었고 병원과 집을 오가는 생활이 계속되었다. 그러기를 25년. 남편은 작년 5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어느 절, 어느 암자엘 가나 자기 손 안 간 데가 없는데…… 지금 통도사 큰 스님들은 남편 이름 대면 다 알 정도예요. 배운 걸 옳게 써 먹지도 못하고……” 못내 아쉬운 표정이다.

눈가가 발그스레 상기되면서 눈물을 글썽인다. 목소리가 촉촉이 젖어 있다. 마당에서 바라다 보이는 우람한 소나무가 참 좋다고 하자, “바람이 불면 소나무 소리가 억수로 희한하게 들려요. 바람소리가 휘~ 하면서 나무가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나요. 몇 년 전에는 병이 들어 하나씩 죽더니만 이제는 괜찮네.”라며 맞장구를 친다.

오늘도 가마솥엔 대를 이은 손두부가 익어가고 있다. 늘 푸르른 저 소나무처럼 원조 손두부집의 무쇠 솥에 맛있는 두부가 항상 가득하기를 빌어본다.

▶ 생활력이 강해 남자 못지않은 김말수 할머니

이정남 아주머니가 시집 왔을 때 남편이 막내아들이었지만 분가를 하지 않았다. 부부가 함께 일을 나갈 때는 시어머니가 가사를 하고 두 아이를 돌봐 주기도 했다.

“우리는 어머니 덕도 많이 봤어. 어머니가 하도 생활력 강한 사람이어서 남자 같았어요. 일도 잘하시고, 배내 골짜기까지 큰 산도 넘어 다녔는데 나이가 많으시니 지금은 다리를 못 쓰셔서 못 다니신 지 10년 됐어요.” 김말수 할머니는 지금 병원에 있다.

“여기에 있어야 되는데 아들이 없으니까 안 계시려 해서…… 우리 어머니는 아들 3명을 다 먼저 보냈어요. 나는 어머니 덕을 많이 봤어. 다른 아들보다 막내아들을 끼고 돌다보니……”라며 말끝을 흐린다. 그는 몇 번이고 시어머니 덕을 많이 봤다고 했다.

김말수 할머니는 손두부를 잘 만들고 생활력이 강할 뿐 아니라 글 솜씨와 수(繡)놓는 솜씨 또한 매우 뛰어난 것 같다. 수를 놓아 통도사 스님들에게 선물을 하기도 했는데 다락방엔 반야심경(般若心經)을 수놓은 작품이 남아 있다.

원조 손두부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마주 보이는 거실벽엔 액자 하나가 걸려 있다. 비단에 수를 놓아 표구를 해 놓은 것인데 할머니가 직접 짓고 수를 놓은 작품이다.

 

웹사이트 플러그인 제거 작업으로 인하여 플래시 플러그인 기반의 도표, 도면 등의
멀티미디어 콘텐츠 서비스를 잠정 중단합니다.
표준형식으로 변환 및 서비스가 가능한 멀티미디어 데이터는 순차적으로 변환 및 제공 예정입니다.

거실벽에 걸린 액자

원문을 옮기면 아래와 같다. 〈주(註)-이해를 돕기 위해 띄어쓰기를 했음〉

통도산 팔경 무풍한송 단성낙조 웅장한 산이구나 녀산 경치가 녀기로구나 영치산 단조성은 백발등을 둘너사고 전서리 나머잇꼬 평풍갓치 둘넌 칭은 하널갓치 솟사익꼬 멀구 다래 얼킨 나무 향기 조은 잣나무넌 구룸 박게 솟사익꼬 동산네 도든 해가 수마는 봉우리에 구룸갓치 퍼질 쩌게 찬 이서리 자저지고 상상몽은 꼿치 피여 춘홍을 자랑하고 향기로 풍기는대 범나비넌 추물 추고 비비하넌 종달새넌 방공중의 왕네하고 노금방초 우구진대 목동들 피리 소리 처량하기 들이오고 춘사멀 망강이라 입펀 피여 청산이고 꼿치 피여 화산이고 강남서 나온 연자 앳 주인늘 차저왓서 봄 솟식글 저나구나 때넌 좃타 번인네야 영축산 정기 바더 중방뜽 백석 소게 구금수넌 긍강수로 솟사나고 역사 깁푼 빈 절터넌 축때만 나머구나 절백개 비루폭포 청강수 내리칠 때 산아기 디눕고 산천초목기 다 떠는구나 채운이 이르나고 사새기 분분한대 구룸 석꺼 앙게댄이 짓척기 난분인대 배우암 서걍소리 간간이 들이오고 통도사 종소리가 산중을 울일 찌게 무심한 백호드리 수림 소개서 추물 추고 야월삼경 적막칸대 공산내 두경 울고 매아리 치는 고대 신선노는 처수로다 백우암 웃쪽게 황금수넌 가을리면 황금이고 겨우리면 감노수라 신기한 이리로다 서곱푸다 죽바우넌 떠러질까 염이로다 통도사 자장암메 잔잔한 물소리와 세소리 우지지고 마낙천봉 백석 소게 금개구리 왕네한다 기인한 이리로다 낙낙장송 고목나무 광풍의 너머지고 푸른 청산네 오색단풍 절노로 몬 이기고 나겹비 분분 서리고 우눌공중의 백서리 날이고 설네한이 송백발리라 한심한 우리 인생 나이로 지는구나 장명화 좃타해도 필 찌게넌 곱끼 피고 질 찌개넌 날과 갓치 실피 진다 원치 안넌 백발리고 면치 몬할 주굼이라 잇수업넌 기리구나 한심한 이리로다 춘추넌 년년목기요 왕소는 기불가라 청춘나 늘지마라 히망은 절무매 잇따 천정새월리 인정수요 무정세월리 양유파라 가넌 청춘 오넌 백발 그 누구가 마그 냇꼬 섯산내 지는 해럴 어넌 누가 자바 맷꼬 삼신산 놋피 올나 불사약글 구의다가 늘근병을 곤치볼까 백자촌늘 차저갓서 백초약글 구의다가 늘근병을 곤처봇까 할 수 업넌 이리로다 가야할 기리라면 말 업시 가리로다 인생은 일장춘몽 꿈미로구나 내 나이 이른서이라 실모 업는 모미댄이 설품매 만든 작품 누무리 흘느내리 글자가 수목지고 비다내넌 어룽진다 낙짜 댈까 염이로다

경남 양산군 하북면 평산이 김말수 작품 서기일천구백팔심구년도 기사년

원문을 맞춤법에 맞게 아래와 같이 고쳐 보았다. 〈주(註)-괄호 속의 한자는 글쓴이의 생각임〉

통도사(通度寺) 팔경(八景: 통도팔경(通度八景)은 무풍한송(舞風寒松), 안양동대(安養東臺), 비로폭포(毘盧瀑布), 자장동천(慈藏洞天), 극락영지(極樂影池), 백운명고(白雲鳴鼓), 단성낙조(丹城落照), 취운모종(翠雲暮鐘)을 이름) 무풍한송(舞風寒松) 단성낙조(丹城落照) 웅장한 산이구나. 여산(廬山) 경치가 여기로구나. 영축산 단조성은 백팔등을 둘러싸고 전설이 남아 있고 병풍처럼 두른 성(원문의 칭은 칭하이성(靑海省)에서 따 온 것으로 보임)은 하늘같이 솟아 있고 머루 다래 얽힌 나무 향기 좋은 잣나무는 구름 밖에 솟아 있고 동산에 돋은 해가 수많은 봉우리에 구름같이 퍼질 적에 찬 이슬이 잦아지고 상상봉(上上峰)엔 꽃이 피어 춘흥(春興)을 자랑하고 향기로 풍기는데 범나비는 춤을 추고 비비하는 종달새는 반공중(半空中)을 왕래하고 녹음방초(綠陰芳草) 우거진 데 목동들 피리 소리 처량하게 들려오고 춘삼월 만강(滿腔)이라. 잎은 피어 청산이고 꽃이 피어 화산이고 강남서 나온 제비 옛 주인을 찾아와서 봄소식을 전하구나. 때는 좋다 벗님네야. 영축산 정기 받아 중방등 백석(白石) 속에 구금수는 금강수로 솟아나고 역사 깊은 빈 절터는 축대만 남았구나. 절벽의 비로폭포(毘盧瀑布) 청강수(淸降水) 내리칠 때 산악이 드러눕고 산천초목이 다 떠는구나. 채운(彩雲)이 일어나고 사색이 분분(紛紛)한데 구름 섞여 안개 되니 지척(咫尺) 이 난분(難揀) 인데 백운암 서강(西江: 송도팔경(松都八景)의 하나인 서강풍설(西江風雪)에서 따 온 것으로 보임) 소리 간간이 들려오고 통도사 종소리가 산중을 울릴 적에 무심한 백호들이 수림(樹林) 속에서 춤을 추고 야월 삼경 적막한데 공산에 두견 울고 메아리치는 곳에 신선 노는 처소(處所)로다. 백운암 위쪽에 황금수는 가을이면 황금이고 겨울이면 감로수라. 신기한 일이로다. 서글프다. 죽바위는 떨어질까 염려로다. 통도사 자장암에 잔잔한 물소리와 새소리 우지지고 만학천봉(萬壑千峰) 백석 속에 금개구리 왕래한다. 기이한 일이로다. 낙락장송(落落長松) 고목나무 광풍(狂風)에 넘어지고 푸른 청산에 오색단풍 절로 못 이기고 낙엽이 분분 서리고 운울(雲鬱) 공중에 백설이 날리고 설래(雪來)하니 송백발(松白髮)이라. 한심한 우리 인생 나이로 지는구나. 장명화 좋다 해도 필적에는 곱게 피고 질 적에는 나와 같이 슬피 진다. 원치 않는 백발이요 면치 못할 죽음이라. 이을 수 없는 길이구나. 한심한 일이로다. 춘추는 연년목이요. 왕소는 기불가라. 청춘아 늙지 마라. 희망은 젊음에 있다. 청정세월(淸淨歲月)이 인정수요. 무정세월(無情歲月)이 약유파(若流波)라. 가는 청춘 오는 백발 그 누가 막아낼꼬. 서산에 지는 해를 어느 누가 잡아맬꼬. 삼신산(三神山) 높이 올라 불사약(不死藥)을 구해다가 늙은 병을 고쳐볼까. 백자촌(百資村)을 찾아가서 백초약(百草藥)을 구해다가 늙은 병을 고쳐볼까. 할 수 없는 일이로다. 가야할 길이라면 말없이 가리로다. 인생은 일장춘몽(一場春夢) 꿈이로구나. 내 나이 일흔셋이라 쓸모없는 몸이 되니 슬픔에 만든 작품 눈물이 흘려내려 글자가 수묵(水墨)지고 비단에는 얼룩진다. 낙자(落字) 될까 염려로다.

경남 양산군 하북면 평산리 김말수 작품 서기 일천구백팔십구년도 기사년

가사(歌辭)로 보이는 이 작품은 전반부에는 통도팔경(通度八景)과 암자의 경치를 노래하고 있다. 무풍한송(舞風寒松), 단성낙조(丹城落照)의 봄, 비로폭포(毘盧瀑布)의 여름, 백운암의 가을, 자장암의 겨울 경치를 그리고 있다. 후반부에는 흘러간 세월의 정한과 인생의 무상함을 읊고 있는데 전체적으로 수려한 문장이다.

일흔셋의 할머니가 글을 지으며 한 땀 한 땀 비단에 수를 놓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