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효자. 김득인은 부모에게 효성이 지극하기로 칭송이 자자하였는데, 부친 시묘(侍墓)시에 임진왜란이 일어났으나 적병이 그 행의를 보고 효성에 감복하여 해채(海菜)와 미곡을 보내준 일이 있었다. 이런 일들이 문달(聞達)되어 복호(復戶)를 받고 정려문(旌閭門)이 세워졌다. 정려문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현재는 남아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