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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인민위원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400067
한자 梁山人民委員會
영어의미역 Yangsan Council of People´s Commissars
분야 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경상남도 양산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승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주민자치단체
설립연도/일시 1945년 10월 11일연표보기
설립자 전혁|하문호

[정의]

해방 직후 경상남도 양산 지역에 있었던 좌파 계열 주민 자치 단체.

[설립목적]

양산인민위원회는 우익 인사 중심의 양산군 자치추진회에 맞서 좌익 인사들 중심으로 일제강점기의 잔재를 청산하고 노동자, 농민 중심의 인민 민주주의 정권을 수립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변천]

1945년 8월 18일 치안 유지와 지역의 정치적 방안 등을 해결하기 위해 좌우 연합적 성격의 자생적 조직인 양산건국준비위원회가 결성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양산건국준비위원회가 좌파 인물들로 운영되는 성향을 보이자, 우파의 중심 인물인 김철수안종석양산건국준비위원회와는 별도로 양산군 자치추진회를 조직하였다. 그러자 좌파 역시 동년 10월 11일 양산청년동맹양산농민조합 등에서 활동하던 전혁(全赫), 하문호 등을 중심으로 양산인민위원회를 결성하였다.

[활동사항]

1945년 10월 15일 양산인민위원회가 경찰서 사무를 접수하고 행정권을 장악하자 10월 21일 양산에 진출한 미군은 양산인민위원회 지도자 전혁을 체포하고 양산군 행정을 이전의 군수에게 일임했다. 이 사건으로 양산인민위원회의 세력은 약화된 듯 보였다. 그러나 옥중에 있던 전혁이 1945년 12월 22일 전국부녀총동맹 결성대회 때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는 점을 감안하면, 1945년 말까지 미군정의 제약에도 불구하고 양산인민위원회는 양산 지역에서 상당 부분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의의와 평가]

양산인민위원회양산농민조합과 함께 미군정이 시작되기 전까지 양산의 실질적 자치 권력으로 일제의 잔재 청산과 농민들의 권익 보호에 앞장선 정치 조직체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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