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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400255
한자 景毅齋
영어음역 Gyeonguijae
영어의미역 Gyeonguijae Shrine
분야 종교/유교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화제리 290-1[독점길 36]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현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재실
양식 현대식 콘크리트 기와 건물
건립시기/일시 미상
정면칸수 3칸
측면칸수 1칸
소재지 주소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화제리 290-1[독점길 36]지도보기

[정의]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화제리에 있는 김녕김씨 재실.

[변천]

경의재는 김녕김씨 충의공 백촌 김문기(金文起)의 후손인 김재연(金在衍)·김재간(金在衎)·김재형(金在衡)·김우권(金禹權) 등의 재사이다. 경의재는 조선 세조 때 사육신 중 하나이다. 그의 후손인 김재연은 자는 영보, 호는 양심재이며, 성품이 순수하고 인정이 많고 검소하였다. 늙어서는 성리학을 연구하였는데 경과 전에 더욱 뛰어났다. 책을 많이 쓰고 학문에 뛰어나 친구들이 받들고 존경하였다.

김우권은 자는 국언, 호는 지암이며, 천품이 총민하고 학문이 뛰어나서 대구 낙육재에서 뽑혔다고 한다. 김재형은 자는 순경, 호는 몽천이며, 형은 김재연이다. 학문에 힘을 기울여 특히 성명과 이기에 밝았다. 경의재김문기의 억울한 죽음과 그 죽음으로 높아진 절개를 기리는 곳이다.

[형태]

경의재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현대식 콘크리트 기와 건물이다. 경의재 동쪽 처마에는 양몽헌(養蒙軒), 가운데 처마에는 관가정(觀稼亭), 서쪽 처마에는 지암정사(旨庵精舍)라는 현액이 걸려 있다. 각각의 현액은 우모하는 선조를 가리키고 있는데, 양몽헌은 김재간과 김재형을, 관가정은 김재간을, 지암정사는 김우권을 추모하고 있다.

후손 김형윤의 상량문이 있고, 지암정사에는 선생을 추모하는 존존계안(尊存稧案)과 묵헌(黙軒) 박천수(朴天銖)의 수계서문(修稧序文)이 있다. 김형윤의 상량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생각건대 이에 살고 이에 거처하면서 화제 동산에서 세 세대 동안 번성하였고, 조상의 뜻을 이어 집을 지으니 지라의 천석에 몇 칸을 얽었네. 아침에 밭 갈고 저녁에 책 읽으며 농사짓기 어려운 가업임을 능히 생각하고, 겨울에는 서경을, 가을에는 예서를 읽어 언제나 실천하는 공부를 더욱 힘쓰리니, 한 삼태기 흙이 모자라 산이 어그러지나, 구덩이를 메우며 물은 반드시 나가노라.

후생들이 잔치에 노래함은 이백(李白)이 춘야연도리원서(春夜宴桃李園序)에 기록하였고, 현인들이 모여들어 계회(稧會)를 염은 왕우군(王右軍)의 난정서(蘭亭敍)에 서술하였다. 광풍제월(光風霽月)에 가슴이 시원하고, 고산유수(高山流水)에 음운(音韻)이 맑기 그지없는데, 세 오솔길의 대나무는 원향(元鄕)의 언덕에 겨우 통하였고, 산간에 날리는 꽃으로 무릉의 별천지가 있으니, 문 앞에 늘어진 버들은 처사 도연명(陶淵明)의 정절이요, 헌함 위의 밝은 달은 노선생(老先生)의 기상이로다.

사방 벽에 빽빽한 서책으로 천추의 집안 명성 없어지지 아니하고, 온 동산의 꽃나무에는 백 세대의 가업을 깊이 감추었으니, 고갯마루의 외로운 소나무는 절개를 지켜 서리를 견뎌내고, 담장 아래 붉은 규화(葵花)는 충성을 머금고 해를 향한다. 어정거리고 노닐면서 여기서 읊조리고 여기서 술 마시니, 땅에 가득한 안개와 노을은 아름다운 경치를 구경하기 위한 것이 아니오, 책상에 쌓아둔 구슬들은 곧 경모하는 정성이로다.

정령이 오르내리시며 좌우에 계신 듯하니, 경건하지 않을쏘냐, 아름답지 않을쏘냐? 장차 들보를 올리려 함에, 공손히 짧은 노래 베푸노라. 어량차 들보를 동으로 던지니, 부상(扶桑)의 상서로운 해가 바다에 붉다. 뜬 구름 모조리 걷어 세속의 누를 없애니, 끝없는 조화는 하느님의 일이로다.

어랑차 들보를 서쪽으로 던지니, 오봉의 빼어난 빛 창에 낮게 들어온다. 응암(鷹巖) 아래 화정리(花亭里)에, 수목이 푸르게 우거져 한 빛으로 가지런하네. 어랑차 들보를 남으로 던지니, 해동의 강물은 쪽빛처럼 푸르다. 안개 짙고 풀이 푸르러 찾을 수 없는 곳에, 목동의 피리, 어부의 노래 두세 소리 들리네.

어랑차 들보를 북으로 던지니, 구곡(狗谷)의 산천에 구름 기운 검구나. 원하기는 풍년들고 요순시대 백성됨이니, 성군을 멀리 바라보며 밝은 덕을 밝히리라. 어랑차 들보를 위로 던지니, 충절이 당당하여 오르내리시는 듯. 아득히 예전에 설원(雪冤)하던 때를 추억하면, 흐르는 피눈물 금하지 못해 더욱 서글퍼지네.

어랑차 들보를 아래로 던지니, 보리 익고 벼가 익는 십리 들판에, 비바람 순조로와 풍년이 들고, 농남으로 날마다 노는 자 많구나. 엎드려 원하옵건대 상량한 뒤로 유도(儒道)가 다시 밝아지고, 문풍(文風)이 일어나서, 어린 학생 기르는 집안에는 수신제가(修身齊家) 이루어지고, 농사 살피는 정자 위에는 나라가 태평하고 해마다 풍년 들기를.”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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