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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사재 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400333
한자 養士齋址
영어의미역 Yangsajae Pavilion for Purification Site
이칭/별칭 구 충렬사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경상남도 양산시 교동 157-1[충렬로 27]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정은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재실 터
원건물 건립시기/일시 1877년연표보기
소재지 주소 경상남도 양산시 교동 157-1[충렬로 27]지도보기

[정의]

경상남도 양산시 교동 춘추공원에 있던 조선 후기 재실 터.

[개설]

충렬사가 국명으로 철폐될 때 재실(齋室)로 바뀌었다. 1877년(고종 14)에 양산군수 이만도(李晩燾)가 중수하였다고 한다. 조선 말기의 학자 김상효(金相孝)의 시문집 『경재유고(敬齋遺稿)』의 잡저 중에 양사재에 관해 기록된 「양산현학양사재기(梁山縣學養士齋記)」를 보면 선비를 양성하는 방법과 제생들이 지켜야 할 학칙 등이 소상하게 기록되어 있다.

[변천]

『양산향교지(梁山鄕校誌)』에 따르면 양사재는 1907년(순종 7)에 양성학교(養成學校)로 명칭을 바꾸어 신학을 가르치다 폐지되었다고 한다.

[현황]

양산재의 모습이 남아 있지 않고, 그 터에 초등학교 교사가 들어서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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