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401129
한자 麻姑山城
영어의미역 Magosanseong Fortress
이칭/별칭 오봉산 고장성,할미산성,마고성,산성고개,성산만딩이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경상남도 양산시 교동 산171-1
시대 고려/고려
집필자 선석열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성곽
양식 포곡식 산성
건립시기/연도 고려시대
소재지 주소 경상남도 양산시 교동 산171-1 지도보기

[정의]

경상남도 양산시 교동에 있는 고려시대 포곡식 석축 산성.

[개설]

마고산성양산시 교동원동면 화제리 간 경계를 이루는 오봉산(해발 479.9m)의 9부 능선을 따라 축조한 산성이다. 마고산성은 주민들에 의해 ‘할미산성’, ‘마고성’, ‘산성고개’, ‘성산만딩이’ 등으로 불리고 있었다. 마고산성은 5~6세기에 쌓은 테뫼식이 아닌 대규모의 포곡식 산성인 점으로 볼 때 7세기 이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양산 지역의 성곽들은 대부분 왜구를 막기 위해 쌓은 것이다. 마고산성은 683년(신문왕 3)에 쌓았다는 골쟁현성으로 추정된다. 현재 마고산성이 있는 곳과 주변은 양산시와 원동면 사이에 사잇재가 있어 예로부터 지름길로 사용되었다. 마고산성양산천변을 방비했으며, 그 외에도 낙동강과 원동을 거쳐 넘어오는 적의 침투를 막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건립경위]

마고산성의 축조 연대와 관련되는 기록은 『삼국사기』에 남아 있는데, 683년에 “9월에 삽량주(歃良州)의 골쟁현성(骨爭峴城)을 쌓았다”라는 내용이 주목된다. 이는 성의 입지 상태 및 이름과 관련해 볼 때 골쟁현성과 연결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신문왕 당시는 삼국통일이 막 이루어진 직후로서, 문무왕이 유언으로 동해(東海) 용왕(龍王)이 되어 왜적의 침입을 막겠노라고 말한 사실을 살펴볼 때, 동해안과 남해안으로 쳐들어오는 왜의 침입에 대한 대비책으로 양산에 커다란 성을 쌓았을 것으로 보인다. 양산은 신라 9주의 하나로, 삽량주를 설치한 다음 왜에 대비하기 위해 마고산성을 쌓았던 것이다.

[형태]

마고산성의 지형은 체성의 구축선에서 정상부로 이어지면서 급경사를 이루고 있으며 정상 부위의 봉우리를 중심으로 경사가 둔화된 대지상에 가깝다. 특히 서쪽 봉우리 부근은 평탄화 작업을 하여 반듯하다. 축조 형태는 정상부 아래쪽의 9부 능선을 따라 돌로 쌓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옛 장성(長城)은 황산강(黃山江)의 동북쪽에 있으며, 흙과 돌을 섞어 쌓았다”라고 하였는데, 마고산성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붕괴된 성벽의 일부분을 통해 보면 단순 치석한 평평한 대석의 반듯한 면이 바깥으로 향하게 아래위를 어긋나게 쌓고, 그 틈새는 할석으로 메웠다. 기초부와 성벽의 상단 처리 방식은 알 수 없고 경사가 다소 둔한 북성벽과 서·남 성벽에 남아 있는 엄청난 양의 붕괴 석축으로 보아 체성의 형태는 협축(夾築)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급경사지에 구축된 동·서 성벽은 잔종상을 토대로 볼 때 편축(片築) 위주였을 가능성이 높다.

체성과 관련된 시설물은 뚜렷하게 드러나 있지 않다. 성문 터는 지형상으로 보아 오봉산으로 이어지는 쪽과 교동 쪽으로 뻗은 능선의 줄기 부분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또한 서쪽 봉우리를 중심으로 한 평탄 대지부에는 성과 관련된 건물 터 등이 분포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 이밖에 성내 곳곳에 돌출된 큰 암벽들은 망대(望臺) 등으로 활용되었을 것이다.

[현황]

북쪽 성벽과 오봉산 쪽으로 이어지는 서남쪽 성벽에 무너진 석축이 남아 있다. 그러나 동쪽과 서쪽의 성벽으로는 석축 흔적이 제대로 남아 있지 않다.

[의의와 평가]

마고산성은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과 지명 고증을 통하여 확인되었다. 성의 규모는 양산시에 산재한 여러 성곽들 중에서 최대이며, 체성의 대부분이 붕괴되기는 하였으나 보존 가치는 충분하다고 여겨진다. 따라서 문화재로 지정, 보존될 수 있도록 해야겠다.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