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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시등 유래」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403122
한자 倭尸-由來
영어의미역 Origin of Japanese Corpse Ridge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상남도 양산시 삼호동
집필자 김국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지명유래담
주요 등장인물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
관련지명 구 웅상읍 왜시등
모티프 유형 왜구의 무덤이 등성이가 된 왜시등

[정의]

경상남도 양산시 삼호동에서 지역 이름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왜시등은 임진왜란과 관련된 지명 유래담으로 양산 지역민의 항일 의식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채록/수집상황]

1995년에 발간된 『웅상읍지』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왜시등은 양산 지역의 구 삼호리(현 삼호동) 삼려마을 앞에 있는 등성이이다. 임진왜란 때 왜군은 울산성을 향해 진격하고 있었다. 이때 왜장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인솔한 왜병들이 하진(下陳)하자 그들을 무수히 무찔러 시체를 한곳에 모아 두었다. 그 무덤이 등성이가 되어 왜시등이라고 한다. 일제 때는 일본 헌병이 칼을 차고 말을 몰아 왜시등을 지나다가 죽었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임진왜란 당시 울산성 부근에서 왜구의 시체가 등성이를 이루었다는 말은, 사실 여부를 떠나 그만큼 왜구에 대한 양산 지역민의 저항 의식이 컸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왜시등은 양산 지역민의 항일 의지의 상징인 것이다. 때문에 일제 때 일본 헌병이 무장한 채로 왜시등을 지나다가 죽었다는 이야기도 생겼을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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