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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403246
한자 西南-
영어의미역 Seonam Village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범어리 서남마을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형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자연마을
총인구(남, 여) 351명[남 189명, 여 162명]
가구수 98가구

[정의]

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범어리에 있는 자연 마을.

[명칭유래]

서남은 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범어리 지역 서쪽에 있는 행정리로, 기존에 불려오던 서리(西里)의 ‘서(西)’ 자와 남정리(南亭里)의 ‘남(南)’ 자를 합하여 서남(西南)으로 부르게 되었다.

[형성 및 변천]

범어리의 형성 시기는 삼국시대 초로, 서남마을 뒤 죽전등(竹田嶝) 아래를 중심으로 4~5세기부터 서남마을에 영동김씨(永同金氏)와 분성배씨(盆城裵氏)가 먼저 정착하여 오다가 풍산홍씨(豊山洪氏), 경주이씨(慶州李氏), 담양전씨(潭陽田氏) 등이 이촌하였다고 전한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자연 마을을 통합하여 리(里)를 없애고 동(洞)으로 마을 이름을 통일하였다. 1914년 당시 범어동 내의 자연 마을로는 동리, 중리, 서리 3개의 자연 마을이 있었다.

조선 말기 남정리에는 2가구 정도가 살았다고 하며, 남정리는 조선 후기에 없어진 범어원(凡魚院)이 있던 자리로 여겨진다. 그 후 남정리는 1910년경 동양척식주식회사의 사무실이 들어오고 동척들, 홍익들 개간에 이어 양산수리조합의 메기들 개간 등으로 마을 앞 늪지가 옥토로 변한 후 많은 사람이 운집하여 남정리가 형성·발전하였다고 한다.

1936년 상서면이 물금면이 되고 물금면의 7개 법정리 중에서 범어리에는 동리, 중리, 서리, 남정리가 있었다. 1941년 행정구역 통합 때 동리와 중리를 합하여 동중리라 하였고, 서리와 남정리를 합하여 서남리라 하여 행정리를 이루었다. 서남마을은 물금 범어리에서 최초로 사람이 주거를 형성한 곳으로 추정하고 있다. 마을 뒤 오봉산에서 발원된 능선인 죽전등(竹田嶝) 아래 범어리 1001번지 일원의 농경지 등지에서는 삼국시대 토기, 기와, 패총 등이 다량 출토되었을 뿐만이 아니라, 인근 물금·양산신도시 건설계획의 일환으로 실시된 지표조사를 통해서도 삼국시대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를 통해 볼 때 적어도 물금 범어리 일대의 주거는 서남마을에서 비롯된 것이 확실해 보인다. 하지만 이를 뒷받침할만한 전언이나 문헌적인 자료는 현재 전해지지 않고 있어 자세한 상황은 알 수 없다.

[자연환경]

마을 뒤쪽에는 오봉산이 위치하고 있어 시원한 녹지 전망을 제공하고 있는 반면, 마을 앞쪽으로는 부산대학교 양산캠퍼스 및 부산대학교병원 건립 공사로 인해서 조망이 다소 차단되고 있는 상황이다. 서남마을을 구성하고 있는 남정리와 서리 사이로는 서들천이 지나고 있고, 남정마을 남쪽으로는 큰들천이 흐르고 있다. 그 앞쪽으로는 멀리 금정산이 한 눈에 들어오기도 한다.

[현황]

2008년 6월 현재 총 98가구에 351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공단 개발과 택지 조성으로 서남마을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을 하고 있다. 서남마을오봉산 아래에 있으며, 지방도 1022호선이 지나가고 있다. 서남마을 인근에 부산대학교 양산캠퍼스 공사가 진행되고 있으며, 2008년 9월 개교 예정이다. 마을 인근에는 마을회관, 탑마트를 비롯한 새마을 금고, 농협, 범어 초등학교, 다수의 교회와 크고 작은 많은 상업시설들이 들어서 있고, 인근에는 오봉초등학교와 범어우체국이 위치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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