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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신제에서 선(先)북을 치는 사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4A040101
지역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용당리 당곡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종락

가야진 용신제가 열리는 4월 7일 오전 10시, 전날 내리던 봄비도 그치고 대지는 촉촉했다. 덩 궁 따 궁 따 따 궁 궁 척 꾹 - 꾹” 풍물 가락이 울려 퍼지면서 칙사맞이굿이 시작되었다. 풍물은 언제 들어도 좋다.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묘한 마력을 지닌 것 같다.

깃발들이 바람에 휘날리면서 분위기가 고조되고 풍물 가락도 점점 빨라지면서 보는 이들의 흥을 돋운다. 풍물과 그 뒤를 따르는 길놀이는 한 줄이 두 줄이 되었다가 다시 합쳐지고, 한 데 모였다가는 흩어지면서 마당을 빙글빙글 돌기도 한다.

북을 치는 사람들 중 맨 앞에 서 있는 사람의 북소리가 매우 힘차다. 자세히 보니 여자다. 남자 못지않은 체격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이 고스란히 북소리로 승화되어 공중으로 흩어진다. 박자가 점점 빨라진다. 휘모리로 넘어가고 있다.

“덩 따다 궁딱 궁, 덩- 딱딱 궁딱 궁-”

풍물패 북의 맨 앞에서 꽹과리를 받쳐주며 분위기를 주도하는 이, 그가 바로 유마자(57) 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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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자 아주머니

▶ 길 가던 사람도 쉬어가는 ‘참다래가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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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다래가든

지방도 1022호선으로 가다가 원동초등학교를 지나 배냇골과 삼랑진 방향으로 갈라지는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돌아 삼랑진 쪽으로 가다보면 오른쪽에 당곡 마을회관이 나온다.

당곡마을’임을 알리는 표지석이 ‘범죄 없는 마을’이라는 돌비석과 함께 나란히 서 있다. 단번에 이 마을이 평화로운 곳임을 알 수 있다. 거기서 조금 더 가서 모퉁이 하나를 돌면 왼쪽에 ‘참다래가든’이라고 쓴 쭉 뻗은 간판이 보인다. 식당 앞마당에 참다래나무 몇 그루가 서 있다.

이곳이 유마자 아주머니가 남편과 함께 운영하는 식당이다. 출입문을 열면 정면에 지난해(2007) 수확한 박들이 벽에 걸려 있고, 이 지역 시인이 쓴 시가 오른쪽에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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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다래가든에 걸려 있는 시

천태산 모퉁이 산과 강 경계 막고

나지막집 길게 누워 오는 님을 반기네

가을날 연못가에 키위 대래 매달리고

조롱박은 거시기말 늘어져 있는 곳

뒤뜰로 가보게 먼 산천 둘러보게

강 건너 김해 용산 무척산 꼬리인가

오가는 급한 손님 KTX 고속도로

한가한 망중한은 낚시질이 즐겁다

- 이시일, 〈참다래 집〉 전문

이 시처럼 참다래가든은 그리 크지는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드나든다. 주민들과 원동면민 뿐만 아니라 등산객, 여행객, 지나가던 행인들도 이곳에서 잠시 쉬어갈 수 있다.

오랫동안 식당을 운영했기에 단골손님이 많다. 특히 10여 년 전까지는 원동면사무소 앞에서 식당을 운영했는데 그 때의 손님들 중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공무원이 여럿 있고, 오래된 손님 중에는 교수, 장학사, 교사도 있다고 자랑한다. 그들은 ‘자기 집처럼 드나든다.’고 하는데 그것은 식당을 찾은 손님을 주인이 부담 없이 가족처럼 대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사람 사는 것이 별 것 아니다.”고 말한다. “지나가면 손 한 번 흔들어주면 되고, 눈길 마주치면 눈 한 번 껌벅해주면 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나라 전체가 IMF 외환위기라는 혹독한 시련을 겪을 때, 무더운 여름 날 땀을 뻘뻘 흘리며 공중전화를 걸던 이에게 건넨 시원한 물 한 잔은 몇 년이 지난 후, “그 때 정말 고마웠습니다.”라는 인사로 돌아왔고, 꼬불길을 지나오느라 멀미를 하는 이에게 매실액으로 멀미를 잠재우기도 한다. 식당이라고 해서 꼭 음식을 사 먹지 않아도 된다. 돈이 없으면 그저 물 한 모금 얻어 마시면 된다. 거기에는 후한 인심을 가진 주인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가 순탄한 삶을 살아온 것은 아니다. 건강이 좋지 않은 남편의 약값에다 생활비 마련하느라 고생을 했으며, IMF 외환위기가 닥쳤을 때는 약 먹고 자살하는 사람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정도의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변변한 새 옷 입혀보지 못한 것이 한스럽지만 한편으로는 두 아이 업고 걸리면서 시장 보러 다닐 때 울거나 보채지 않은 것이 지금도 고마울 따름이라고 말한다.

유마자 아주머니는 당곡마을에서 태어났다. 21세 때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1남 1녀를 키워 시집, 장가보내고 57년이라는 긴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 한 번도 고향을 떠나 본적이 없다. 그래서인지 가끔씩 이곳을 떠나 살고 있는 사람이 부러울 때도 있지만 산 좋고 물 좋고 사람 좋은 고향에 살고 있는 것이 더 좋다고 한다.

그는 두 팔이 불편하다. 3살 때 양쪽 팔에 염증이 생기면서 수술을 받았지만 팔꿈치가 완전히 펴지지 않는다. 양쪽 손에는 제대로 성장을 하지 못해 짧은 손가락이 하나씩 있다. 거기다가 30살 때 입은 화상에다가 근래에는 눈길에 미끄러져 다치거나 교통사고 등 몇 차례 부상을 당한 적이 있어 지금도 몸이 성하지 않다고 한다.

남편 또한 장애를 겪고 있는데다가 아들마저 군에서 허리를 다쳐 의가사 제대를 한 뒤 올해(2008) 국가유공자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3명의 장애인이 있는 가정이지만 그런 분위기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화목함과 사랑이 넘치는 가정이다. 손자 손녀의 재롱에다 바쁠 때 마다 아들과 며느리, 딸과 사위가 와서 거들어 준다. 단지 대학원(무기질공학 전공)까지 나왔지만 의가사 제대로 인해 번번이 취직에 실패하며 아직 직장을 잡지 못한 아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고 한다.

장애인이 북을 친다면 모르는 사람들은 의아하게 여길지 모를 일이지만 그는 비장애인보다 더 잘한다. 북을 친 세월도 28년 정도이다. 이렇게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남들보다 더 피나는 노력을 했기 때문이다.

북을 처음 잡은 것은 28년 전, 체육대회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농악대에 들면서이다. 행사는 있고 참여할 사람이 적으니까 솔선해야겠다는 생각에 참여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첫 해 농악할 때는 양반 역을 할 사람이 없어서 체격이 좋은 그가 양반역할을 한 적이 있고 그 이듬해부터 지금까지 북을 놓은 적이 없다. 그 당시 농악을 함께한 사람들은 대부분 고인이 다 되었다며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한다.

그가 풍물에 푹 빠져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는 것에 대해, “친정어머니가 춤을 잘 추셨고 아주 흥이 많은 분이었는데 그걸 물려받은 것 같다.”고 말한다. 북을 칠 때 흥이 없으면 지겹고 팔이 아프기 마련인데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임한다고 한다. 북을 치고 나면 모여 있던 근육이 풀리고, 쌓여있던 스트레스는 금방 날아간다고 말한다. 지금은 손녀가 장구를 잘 한다고 자랑한다.

친정어머니께 바느질도 배워 솜씨가 아주 좋은데, 무엇보다 동동주 담그는 것도 배운 것을 제일로 손꼽는다. 식당에서 내놓는 동동주는 모두 직접 담근 것이다. 발효제를 넣지 않고 쌀 조청을 누룩과 함께 적절한 비율로 섞어 발효시키는 것이 그만의 노하우인 것 같다. 얼 듯 말 듯한 온도를 유지해야 맛이 좋으며 그렇지 않으면 식초가 되어버린다고 한다. 그가 빚어낸 술은 찹쌀 건더기를 다 걷어냈기 때문에 막걸리처럼 탁하지 않고 청주처럼 말간 것이 특징이다. 물론 반찬에 쓰이는 식재료도 모두 손수 재배하여 쓰고 있다.

그는 36년을 함께한 1살 차인 남편과 생일이 같으며 태어난 시(時)도 같다. 이것이 천생연분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부부는 지역을 위해 봉사활동도 많이 했다. 우선 남편은 장애인 원동면분회장, 자율방범대장, 청소년선도위원장 등을 맡아 봉사활동을 했다. 유마자 씨는 새마을 지도자를 거쳐 원동면 부녀회장을 4년 넘게 했고, 구국여성봉사단 원동면지회장, 새마을봉사단, 적십자사 원동면 총무를 맡아 봉사활동을 했으며, 지금은 현역에서 물러나 생업에 몰두하면서 이웃 할머니를 돕거나 먹을거리를 나눠주는 등 베풀며 삶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그는 북을 치면 기분이 좋아지고 흥이 절로 나며 그 기운이 생활로 이어져 신명나는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한다. 굿거리장단에는 내 몸 전체가 날아가는 기분을 느끼며 무거운 것이 훨훨 날아 가버리는 듯한, 새가 나는 듯한 기분을 느끼고, 자진모리장단에는 내 몸의 힘 전체를 뿜어내며, 휘모리장단에는 머리까지 빠져 나가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급기야 내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쏟아낸다고 한다. 그리하여 악(樂)이 끝나면 몸과 마음이 개운해진다고 한다. 그것이 바로 승화(昇華) 인가보다. 그가 말한다.

“북을 치면 정말 좋아요. 말로 해서는 그 기분 모릅니더. 직접 해 봐야 압니더. 한 번 해보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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