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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당에 살고 있는 강원도 사람의 내력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4A040303
지역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용당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엄원대

사면은 첩첩이 산들로 둘러싸여 있고, 열려있는 곳이라고는 동그란 하늘밖에 없는 강원도 양구군 양구면 운진리에서 태어난 박상권 씨는 1973년 소양댐이 건설되면서 그야말로 먹고 살기 위해 대처로 나왔다.

고향 양구를 떠나 처음 취업한 곳이 청평에 있는 제지공장이었다. 성실하게 일한 것이 사장의 눈에 띄어 1974년에 같은 계열의 이곳 ‘국일농원’으로 차출되어 오게 되었다.

▶ 농사를 시작하며

주로 돼지를 사육하는 이 농장에서 일하다 15년이 되던 해에 그 동안 키워온 양돈의 노하우와 푼푼이 모은 단돈 99만원을 가지고 독립해서 소를 키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수입한 소들은 제반 환경이 맞지 않아 감기 등으로 많이 죽어날 때였다. 거기다 소 값의 폭락으로 80만원에 구입한 소를 2년간 키워 60만원에 내다 파는 현상이 벌어지는 최악의 상태일 때였다. 그런 와중에서도 박씨는 좀 아픈 한우를 50만원에 구입해서 정성껏 치료하고 키워서 70만원에 팔아 이익을 남겼다고 한다.

그런데 1990년 비닐로 만든 우사가 돌풍으로 날아가 버렸다. 어쩔 수 없이 70~80만원하는 어미 소 두 마리와 송아지 여덟 마리를 팔아 만든 450만원으로 현재 딸기농사를 짓고 있는 중리 앞 땅 4300㎡를 구입하게 되었단다. 구입 당시 이 땅은 습지나 다를 바 없는 상습 침수 지역이었다. 그러나 이 땅을 옥토로 바꾸어 오늘의 부를 누리게 되었으니 우사가 돌풍에 날아간 것은 말 그대로 천우신조였던 것이다.

▶ 딸기농사로 정착의 틀을 닦다

객토를 가져다 농지를 북돋우고 자갈들을 골라내어 농지로 만드는데도 적잖은 인력과 시간이 걸렸다. 딸기농사는 적잖은 기술이 필요한데 이에 대해 문외한이었던 박씨가 처음 딸기를 재배하겠다고 나섰을 때, 이우성 씨를 위시한 주위 분들이 자기 피붙이 같이 살갑게 가르쳐줬음에 대해 지금도 고마워하고 있다.

딸기농사 또한 가축을 기르는 일만큼이나 만만치 않았단다. 보통 한 농가당 모종을 십만 주 정도 구입하는데 여기에 소요되는 금액만 2천만 원이 들어가는 농사이므로 한 해만 그르치게 되면 기천만원의 빚은 순식간에 지게 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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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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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농사

또한 수확은 전부 수작업으로 해야 하기 때문에 적잖은 일손이 필요한데 이곳에서 딸기농사를 짓는 100여 농가가 같은 시기에 서너 명의 일꾼을 조달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란다. 거기다 해마다 하우스의 비닐을 교체해야 하는데 그 비닐 값만도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농산물은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한다. 끊임없는 애정으로 돌보지 않으면 한 해 농사를 망치기 십상이다. 오죽하면 딸기농사를 14개월 농사라 했을까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용당에서 밭농사를 짓는 사람들 대부분은 딸기와 수박농사를 병행하고 있다. 이렇게 두 종류를 경작하는 농가에서는 4월 20일 전후로 딸기를 걷어내고 수박을 심는다. 그러나 박씨는 5월 20일까지 딸기를 수확한다. 수박농사를 짓는 농가보다 꼭 한 달을 더 수확하게 되는 데 그 소득 또한 적잖아 일천 만원 가까이 된다고 한다. 어차피 수박 재배기간에는 낙동강 물이 범람하여 농경지를 덮어 작물을 망치게 될 확률이 높기 때문에 조바심 내어 가면서까지 수박재배에 투기(?)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박씨의 지론이다.

대부분의 농가가 수박을 심음으로써 딸기 생산이 되지 않는 틈새를 노린 것으로, 수박을 재배하는데 따르는 모종구입비, 시설·경작비, 출하비 등을 따졌을 때 딸기 한 가지만 심어 한 달 더 수확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오히려 이익이기 때문이란다.

35년간의 딸기농사 노하우를 가진 베테랑 농사꾼 박씨가 농사 초기도 아닌 올해(2008) 처음 고전했다고 한다. 퇴화된 딸기 모종을 모르고 속아 구입한 것이 화근이었다. 딸기 모종은 조직배양을 통해 대체로 F2에서 F5까지로 나누는데, 숫자가 높아질수록 퇴화되어 어미모종에 가까운 품종이 나온다고 한다. F5 정도가 되면 웬만큼 정성을 들여 농사를 잘 지어도 딸기의 크기가 작고 맛도 없어 상품가치가 없게 된다는 것이다. 퇴화된 모종을 구입한 박씨는 출하 당시에 딸기 가격이 좋게 형성되었기 때문에 천만다행으로 크게 손실을 보지는 않았다고 한다.

▶ 신용과 성실함으로 다져진 마을 속의 삶

박씨는 가격이 널뛰듯 하는 공판장에 내다 팔지 않고 10년간 줄곧 한 가게에다 위탁판매하고 있다고 한다. 공판장에 내다팔지 않는 이유는 가격이 불안정하기 때문이란다. 물건이 적을 때는 엄청난 가격대가 형성되지만 물량이 많을 때는 딸기를 담는 플라스틱으로 만든 소쿠리 한 개당 200원밖에 안될 때도 있다는 것이다.

소쿠리 두 개(하나는 딸기를 담고, 하나는 그 덮게임)의 값이 300원하는데 그 용기 값도 못 받는 일도 생긴다는 것이다. 그러나 박씨가 택한 위탁판매는 아무리 가격이 쌀 때라도 한 소쿠리 당 1,500원은 받기 때문에 안정적인 가격을 유지하면서 출하를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딸기는 손으로 몇 번만 만져도 물러져서 상품가치가 떨어지게 되는데, 박씨는 일체 영업용 차량을 이용하지 않고 반드시 직접 운전해서 조심스레 운반함으로써 상처가 나거나 물러지는 상품이 최소화 되도록 각별히 노력한 덕분에 위탁 받는 쪽이나 하는 쪽 모두 일대일로 10년 동안 변함없이 거래를 하고 된 것이란다. 상호 돈독한 신뢰가 없이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 농민이 이야기 하는 유럽종 딸기

유럽종 딸기란 말 그대로 우리나라나 일본이 아닌 유럽에서 개량한 품종을 일컫는 말이라 한다. 재배용 딸기는 금향·도찌오도메·도치노미네·레드펄(육보) 등 다양한 품종이 있단다.

품종 이름에 ‘홍’이나 ‘향’이 많이 들어가는 것은 딸기는 색이 붉고 향이 좋아야 당연히 맛도 좋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일본 이름이 많은 것은 우리나라에서 개량한 품종보다 일본으로부터 수입한 품종이 상대적으로 많다는 것을 나타낸다. 로열티를 주게 되는 시점이 되면 딸기를 재배하는 농가에서는 엄청난 타격이 올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고 한다.

이 가운데 찰리·대홍 등의 유럽종 딸기는 생식용이 아닌 잼 등의 가공용으로만 이용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를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만 생식하고 있단다. 유럽종 딸기는 당도가 낮은 대신에 육질이 단단해 다른 품종들보다 보관이 오래간다는 이점이 있단다. 그래서 공동판매장에서는 그런 딸기 값을 일반 딸기보다 더 높게 책정할 때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문제는 소비자들이 딸기의 모양만 보고는 유럽종 여부를 구분할 수 없다는 점이다. 어쩌다 유럽종을 사 먹은 소비자들은 ‘올해(2008) 딸기가 맛이 없다.’며 두 번 다시 사 먹지 않기 때문에 유럽종을 심은 농가는 말할 것도 없고, 좋은 품종으로 정성껏 재배한 농가마저 피해를 보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서울 등지의 공판장에서는 이들 상품을 걸러내어 주거나 아예 공판장에 들이지 못하게 하고 있는데 반해 유독 부산 공판장에서만 이들을 걸러내어 주지 않고 있다고 한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이들을 들여온 지 7년여가 된 상태라 많이 퇴화되어 상품가치가 떨어짐으로 해서 지금은 대부분 농가에서 재배하지 않고 일부에서만 재배하고 있다. 하루 빨리 달고 육질이 단단하면서 생산량이 높은 품종이 우리나라에서 개발되어야겠다.

▶ 농민이 본 대운하사업 : 다른 모습의 홍수

용당 앞을 흐르는 낙동강 물은 지역민들에게 더 이상 삶의 젖줄이 되어주지 못하고 있다. 오염의 정도가 심해서 검디검게 흐르고 있는 강물은 그야말로 ‘낙똥강’ 물이 되어 농업용수로도 부적합한 상태이므로 바로 옆에 엄청난 양의 물을 두고도 농가마다 지하수를 끌어올려 농사를 짓고 있는 실정이다.

당곡마을은 원래 가야진사가 있는 낙동강 변에 형성되어 있었다. 일제강점기만 해도 가야진사 주변에 원동면사무소가 있었을 정도로 번성했던 곳이다. 그러나 백중·칠석·추석을 전후로 하여 매해 범람하는 강물은 주거지마저 현재의 당곡마을로 소개시키게끔 하였다고 한다. 그만큼 낙동강은 용당 주민들에게 있어 젖줄이 되기도 하지만 원망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박씨가 당초 구입한 땅은 4300㎡였으나 농로 확장 공사 등으로 인해 현재 3300㎡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웬만한 집 대지면적밖에 안 되는 이 땅이 이들 부부의 삶의 터전 전부다. 이 땅에 딸기 심어 네 가족이 여유롭게 먹고 살아왔으며, 두 딸을 공부시키고 출가도 시켰다. 그런데 대운하 사업이 본격화 되어 정부가 공시지가로 보상을 해 주게 된다면 그 돈으로 다른 곳에다 대토를 할 수도 없는 금액이 될 것이 자명하기에 시름이 깊어가고 있다.

낙동강 상류에 들어선 댐들로 해서 근래에는 강물이 범람하는 일은 많이 줄어들었다. 그래도 어쩌다 한 번씩 범람하게 되면 그해 한해 농사는 완전히 망치게 된다. (반면에 범람한 강물은 농약과 비료로 오염된 토양을 깨끗이 청소하는 한편, 다양한 유기물질을 실어다 주어 토양을 비옥하게 해주는 이점도 있단다.)

그런데 대운하를 건설하게 되면 강물의 범람이야 사라지겠지만 덩달아 농지마저 잃게 될 것으로 믿고 있기에 박씨를 비롯한 주민들은 이구동성으로 대운하 사업의 시작은 유사 이래 가장 큰 홍수가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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