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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 남아 있는 근대사의 아픈 흔적들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4B010203
지역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지산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향토사연구회

지산리통도사와 함께 영축산 산자락을 끼고 있기 때문에 일제강점기의 공출(똑같이 나누어서 내는 것)을 위한 송진 채취와 6·25 전쟁의 기억들이 주민들에게 저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영축산 가는 길에는 백년은 훨씬 넘었음직한 오래된 소나무들이 껍질이 까진 채 속살이 칼 같은 날카로운 것으로 무수히 긁혀있는 자국이 눈에 띈다. 우리의 뼈아픈 역사를 소나무는 자신의 몸으로 표현한 일제강점기 때의 흔적이다.

무수히 많은 남자들은 강제징용에 끌려가고 마을에 남아 있는 여자들은 송진을 채취해 왜놈들에게 공동으로 냈는데 이것이 바로 송진을 캐낸 자국이라고 전해진다. 그리고 우리 역사에서 동족간의 비극인 6·25 또한 기억되고 있다.

6·25 당시 이곳에 빨치산이 들어왔을 때 통도사에 부대가 하나 있었다. 민간인들이 총이 없었고 대나무를 이용해서 창을 만들었다. 대를 정리하여 비스듬하게 잘라버리면 창이 된다. 당시 주민들은 밤에 방에 있던 초롱불을 다 꺼놓았다. 근무를 설 때 빨치산이 오면 불을 켜서 그 집에 빨치산이 왔다는 신호를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한 사람이 죽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빨치산이 와서 식량을 빼앗아서 산으로 올라갈 때 자기들이 그것을 짊어지고 산을 넘어 가려고 하면 무겁기 때문에 동네사람을 강제로 데리고 갔다고 한다. 따라가지 않으면 죽기 때문에 짊어지고 가자고 하면 가야 되었다. 하지만 따라간 사람은 가족들과 작별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못한 채 그길로 다시 돌아오지 못 할 길을 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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