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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이 머물던 객사터, 나그네 머무는 호텔이 들어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4E010204
지역 경상남도 양산시 중부동|북부동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이종봉

객사는 동헌과 함께 지방군현 관청의 중심이다. 객사에는 건물의 중앙에 임금을 상징하는 위패, 즉 궐패(闕牌)와 전패(殿牌)를 모셔놓고 초하루와 보름(음력 1일과 15일)에 지방 수령이 대궐을 향해 제사를 올리는 곳이다. 따라서 양산객사에 모셔놓은 위패는 살아있는 임금을 상징함으로 일반적인 사당과는 그 의미가 전혀 다르다. 또한 객사는 외부의 손님이 오시면 접대하는 일종의 영빈관의 역할도 한 곳이다. 객사의 위치는 현재 흔적이 남아있지 않아 알기 힘들다. 일설에는 현재 양산문화원의 위치를 객사의 터라고 하고 있다.

그러나 양산의 객사는 양산의 고지도를 통해 어느 정도 추정할 있는데, 18세기의 고지도에는 남향을 향하고 있는 의춘당(동헌)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양산문화원은 동헌(현 중앙동사무소)의 동쪽이므로 객사터와 정반대쪽이다. 양산의 객사 위치는 읍성의 서쪽에 있었음을 고려한다면 현재의 양산호텔을 포함한 동편 쪽의 중심지역(양산호텔, 축협, 법무사 사무소, 상가, 주택)에 있었을 것이다. 객사의 일반적 구조는 본사를 중심으로 좌우에 각각 객실을 두고, 앞면에는 내·중·외 3문이 있으며, 옆에 아영청(亞營廳)·무신사(武臣祠) 등 부속건물을 두었다. 본사는 기와와 돌을 깔고, 좌우의 객실은 온돌을 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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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 편 쪽의 중심지역

양산객사도 이런 구조를 가졌을 것이므로 그 규모는 상당하였을 것이다. 양산객사의 방향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현존하는 고지도에 따라 서향 또는 남향으로 다르게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전국의 군현은 동헌과 객사는 주로 남향을 향하고 있는데, 이는 풍수와 연관이 있다. 일제강점기 객사터는 양산공립보통학교로 이용되다가 지금의 양산초등학교로 이전하면서 민간에게 불하되어 호텔이 들어서 있다. 객사의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없는 것은 양산의 중심지였던 읍성과 그 안에 있는 모든 흔적들이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정말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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