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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기억의 조각, 사라호 태풍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4E020106
지역 경상남도 양산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류명환

1959년, 마을을 강타했던태풍 사라의 기억을 더듬어 과거로 거슬러 가보자. 1959년 한가위, 차례를 모시고 나니 엄청난 비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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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의 기억

양산천이 흐르는 교리 다리목에 나가보니 옛날에 있었던 다리의 위쪽까지 물이 차 올라오는데 상류에서부터 소나무, 장농, 뒤주, 절구통, 뱀, 염소, 닭, 온갖 가전제품 외에 산사태로 여러 나무가 뿌리째 뽑혀 내려오는 것이 아닌가. 물이 불어나는 속도는 생각한 것 이상이었다.

물이 이렇게 순식간에 불어난 이유는 상북면 소토마을 아래 대나무 밭이 뿌리째 뽑혀서 다리에 걸쳐있었기 때문이다. 명곡에서 내려오는 하천물이 양산천과 합류하는 지점에 있던 철제수문의 옆이 부유물질들이 교리다리에 걸쳐지고 난 뒤, 10분여 만에 다리가 무너져 내렸다. 다리가 무너져 내리고 난 뒤 삽시간에 엄청난 양의 물이 현 양주초등학교와 종합운동장 일대의 논과 과수원이 함께 물바다가 되어 버렸다.

또한 구 조흥은행 옆의 버스정류소가 물에 잠기고, 양산전매서 연초창고에도 물이 들어 못쓰게 되었으며, 양산양조장, 양주파출소, 무명사진관, 양산 구 시장, 우시장 등 모두가 물에 잠겼다. 그로 인하여 양산전매서와 양산양조장 등이 일동마을 높은 곳에 이사를 갔다. 그 당시 양산고교 옆 신기마을이 전체가 물에 잠기게 되어 이승만 대통령이 직접 양산중학교 앞 신기교에 현지답사하고 수재민을 위로 격려하고 대통령 특별지시로 지금의 신기마을을 복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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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마을

마을 주민들은 추수를 앞두고 벌어진 결과에 대해 받아들이기를 거부하였다. 한가위를 지내는 것은 둘째 치고 먹을 음식조차 찾기 어려운 현실은 마을 주민들에게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힘들게 하였다. 현 양주초등학교와 종합운동장 신도시 일대 전부가 홍수로 인하여 모래밭이 생겨 7,8년 동안 양산 사람 대다수가 모래장사를 했다고 할 정도로 홍수로 많은 토사물들이 내려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후 1976년경 삼성전관을 설치하기 위해서 생각하던 삼성 측이 농지보상가격 조사까지 하고 있던 차, 그 과정에서 사라호 때의 침수피해 사실 정보를 입수한 삼성이 이곳을 포기하고 오늘날의 울주군 삼남면 방기리로 옮기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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