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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 역사 연구에 바친 정열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4E030102
지역 경상남도 양산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종락

동헌이 있던 중앙동사무소 바로 옆 건물에는 양산향토사연구회 사무실이 입주하고 있다. 법인단체는 아니지만 양산의 향토사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곳이다. 이곳에 75세의 고령이신 정진화 선생이 『양산읍지』의 발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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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향토사연구회사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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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화 선생

정진화 선생은 30년 가까이 경찰공무원과 물금면장을 역임한 뒤 향토의 역사 자료를 찾아 정리하는 일에 여생을 바치고 있다. 20년 넘게 경찰공무원으로 일했던 정씨가 향토사 연구에 매진하게 된 것은 1983년 궐석이던 물금면장에 특별임용되면서부터다. 마침 규장각에 근무하고 있던 딸을 통해 귀중한 양산 관련 자료들을 받아볼 수 있었던 것이 양산의 역사를 아는 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 그 결실은 물금읍지에 손을 댄 지 15년 만에 빛을 보게 된 『물금읍지』(1998)로 나타났다.

물금면장으로 부임하면서부터 물금의 내력과 황산역, 메기들의 형성과정 등을 탐문한 바 속시원히 들려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재임기간에 꼭 물금면지를 편찬하겠다고 다짐을 하였다. 퇴근 후 마을마다 80세 이상의 원로들 가운데에서 총기 좋은 분을 선택하여 소주 한 병 들고 찾아가 옛날이야기로부터 시작하여 1920년대의 메기들의 축조과정, 1934년 물금소재지가 물바다 되고 경부철도가 낙동강의 범람으로 100여m 끊어져 두절되는 등의 이야기를 발굴해 내었다.

또 갑술년 대홍수의 날짜를 기억하는 사람이 없어 그 당시 화재리에서 모심기 갔다 돌아오다가 변을 당한 다섯 사람의 제삿날을 탐문하여 날짜를 확인해 냈다. 이는 전직이 경찰이었기에 가능했으리라. 이처럼 물금 땅에서 일어난 생멸사건은 빠짐없이 조사코자하다 보니 혼자 힘으로는 많은 시간을 요구할 수밖에 없는 작업이었다. 결국 면장 재임기간에 펴내기로 한 자신과의 약속을 어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1995년 물금·양산 신도시건설이 계획되자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되었다. 마침 그때는 양산수리조합장에 재직 중이었으므로 집무실 공간이 넓어 그곳에서 자료들을 펼쳐놓고 집필을 계속하여 1998년 마침내 완성을 할 수 있었다. 물금면지를 만들고자 시작했는데 세월이 흘러 면이 읍으로 승격해서 물금읍지로 탄생하게 된 것이다. 1997년 여름 어느 날, 하루 종일 집필을 하다가 퇴근을 하던 중 영대교를 지나는데 갑자기 앞이 캄캄하여 다리를 지나자마자 차를 멈춘 뒤 정신을 놓아 버렸다. 한참 뒤에 어느 정도 정신이 들자 사람을 불러내어 병원에서 응급치료를 받고난 뒤 의식을 회복한 사연은 그를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지금도 회자되고 있는 일화다.

공직에서 물러난 그는 양산향토사연구소를 설립, 오랜 자료수집과 생존자의 녹취를 통해 양산 지역의 항일운동을 정리한 『양산항일독립운동사(2004)』를 펴냈다. 희수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왕성한 활동력을 보여, 뒤이어서 『삼국사기』, 『삼국유사』, 『조선왕조실록』,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에서 양산 지역에 관한 내용을 발췌, 원문과 역문을 함께 실어 독자의 이해를 도울 수 있도록 한 『양산사료총람』제1집(2005)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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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항일독립운동사(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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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사료총람

이런 공적으로 2007년에는 양산시민대상을 수상했다. 정씨는 비석 몇 개 세워둔 삼조의열단이 아니라 제대로 된 효충사(박제상 사당)를 아우르는 충렬사를 세우는데 미력이지만 여생을 바치고자 한다. 큰일을 이루어내려면 반드시 훌륭한 참모가 있어야한다. 향토사연구회 총무로 항상 정씨의 그림자처럼 좇으며 보좌해주는 정동찬(63세, 전 웅상읍장·양산시 총무국장) 씨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그는 오늘도 묵묵히 회장을 보필해 옛 양산읍(오늘날의 중앙동, 강서동)의 역사를 기록하는 『양산읍지』 발간에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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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찬

2008년 만 75세인 정진화 옹은 아직도 건강하다. 오랜 경찰공무원 생활에서 얻은 신체 단련과 강한 정신력으로 젊은이 못지않은 체력을 유지하고 있지만 자신의 표현대로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노년이라 못다한 사료 정리에 잠시도 쉬지 못한다고 되뇌인다. 노인회 사무실 2층 한 켠에 서너 평 되는 향토사연구회 사무실에서 여름에는 땀을 뻘뻘 흘리며, 겨울에는 작은 가스 스토브 하나로 몸을 녹이며, 굵은 돋보기 안경을 쓰고 작은 글씨와 씨름하고 있는 선생의 모습을 보노라면 무엇이 저 노구를 쉬지 않고 일에 몰두하게 하는 것일까 하는 의구심이 꼬리를 문다.

정진화 선생은 우리 마을지 연구에 도움을 주었다. “양산은 그저 조그만 농촌이 아니었습니다. 신라시대에 황산강(지금의 낙동강 하류)을 경계로 가야와 대적하고 왜구의 침략을 막는 전초기지로서 역할을 다하는 큰 도시였죠. 삽량주는 한때 영남 일대의 12개 군과 34개 현을 관할하는 경주 다음가는 제2의 고을이었지요. 이 점은 우리 후손들이 긍지로 삼을 만한 대단한 과거입니다.” 이렇게 말할 때 그의 표정은 단호하기 그지없다.

정진화 선생의 향토사연구는 고향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자부심에서 출발했기에 한 올의 사심도 없이 정진할 수 있었고 동료 회원들이나 주위의 문화계 인사들도 거부감없이 보조를 맞춰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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