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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소년단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402026
한자 梁山少年團
영어의미역 Yangsan Boy Scouts
분야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경상남도 양산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홍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사회단체
설립연도/일시 1920년 전후
해체연도/일시 1927년 12월 11일연표보기

[정의]

일제 강점기 3·1운동 전후 경상남도 양산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소년 단체.

[설립목적]

양산청년회 등 청년 단체와 함께 양산 지역 주민들에게 애국 계몽 운동을 고취하기 위하여 조직되었다.

[변천]

근대적 소년 운동은 1921년 5월 1일 천도교에서 천도교소년회(天道敎少年會)를 결성하면서 시작되었다. 양산의 소년 단체는 1919년 3·1운동을 전후하여 나타난 것으로 보이며, 문헌상 처음 등장한 것은 1922년 1월 30~31일 양산청년회에서 노동 야학을 위해 개최한 소인극에 동정금을 낸 것이 처음이다. 이후 1920년대 중반까지 토론회, 음악회, 기근 구제 사업 등의 활동을 펼쳤지만 조직적인 변화는 크지 않았던 듯하다.

여러 문헌의 기록으로 미루어 보아 양산소년단은 1927년을 전후하여 해체되고 양산청년회 소년부로 활동한 것으로 보인다. 양산청년회 소년부로 이어졌던 양산소년단은 1927년 12월 11일 양산불교소년회와 함께 해체된 뒤 양산소년동맹을 결성하여 활동하였으며, 1930년 10월 11일 양산소년동맹 하북지부를 조직하였다.

[주요사업과 업무]

양산소년단은 13~18세의 소년들이 중심이 되어 활동한 단체로 독자적인 사업보다는 청년 단체 및 기타 단체의 사업에 협력하는 보조적 역할을 맡았던 것으로 판단된다.

[활동사항]

양산소년단의 활동은 지역 내 소년들의 정보 교환, 토론회 및 기근 구제 사업 등의 봉사 활동이 큰 부분을 차지했다. 1922년 9월 양산청년회와 양산기독청년단, 양산부인회, 동아일보지국 등 5개 조직과 연합하여 황해도 수재민 돕기 의연금 모금 운동을 전개한 기록이 있고, 1923년 물산장려운동이 한창 전개될 때 부산의 초량임술단(草梁壬戌團)과 함께 음악회를 개최하였다.

또한 같은 해 5월에는 양산청년회관에서 ‘지금 조선 소년은 자각이냐 지도이냐’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하였고, 같은 해 8월에는 부형(父兄)들을 대상으로 금주 운동을 펼치기도 하였다. 1924년 11월 1일 양산소년연합회와 함께 기근 구제 사업을 벌였다. 그러나 1920년대 중반 이후의 구체적인 활동상은 찾을 수 없다.

[의의와 평가]

일제강점기에 경상남도 지역에서는 소년 운동과 청년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특히 양산소년단은 1920년대 초반 양산청년회와 함께 문화 운동을 펼친 대표적인 소년 문화 단체로서 대중 문화 운동을 통해 조국의 독립 역량과 실력을 높이려 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를 갖는다. 비록 양산청년회처럼 독자적인 조직이나 활동은 많지 않았지만 당시 여러 문화 운동 단체를 지원함으로써 대중 문화 운동 활성화에 기여하였다. 양산소년단에서 활동했던 10대들은 1930년대 이후 농민조합과 노동조합 등 여러 사회 운동 단체의 중심 역할을 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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