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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402196
한자 金若水
영어음역 Gim Yaksu
이칭/별칭 김두전,김두희,두전,두희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남도 양산시
시대 근대/근대,현대/현대
집필자 전홍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정치가
출신지 경상남도 동래군 기장면
성별
생년 1893년 10월 21일연표보기
몰년 1959년연표보기
대표경력 제헌국회 부의장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

[개설]

별명은 두전(枓全)·두희(枓熙)이고 국적은 북한이다.

[활동사항]

김약수는 휘문의숙, 경성공업학교와 니혼[日本]대학 사회과를 졸업하였다. 1918년 중국 난징[南京]으로 건너가 진링[金陵]대학에 입학하였다. 1920년 귀국하여 한국 최초의 노동 운동 단체인 조선노동공제회 상무간사를 맡았다. 1921년 일본으로 건너가 사회주의 단체인 도일·흑도회·북성회 등을 조직하고, 기관지 『대중시보』를 경영하였다.

1922년 2월에 다시 귀국하여 한국 최초의 계급 투쟁 선언인 ‘동우회 선언’을 발표하였으며, 1924년 11월 ‘북풍회’를 조직하여 국내 사회주의 운동을 이끌어 나갔다. 1924년 조선농민조합 청년동맹을 조직하고, 1925년 조선공산당 창당 요원으로 활동하였다. 이후 신의주사건이라 불리는 조선공산당 제1차 검거사건으로 1926년 검거되어 1931년까지 6년간 복역하였다.

8·15광복 후에는 건국준비위원회의 간부로 선출되었으나 이를 거부하고, 우익 진영인 한국민주당 발기인으로 참가해 조직부장을 맡았다. 1946년 토지 개혁 문제로 한국민주당과 마찰을 빚자 원세훈(元世勳)과 함께 탈당하여 민중동맹을 결성하여 활약하였다. 이후 1947년 조선공화당을 창당하고 위원장이 되었다.

1948년 5월 제헌국회의원(동래군, 조선공산당, 1948. 5. 31.~1950. 5. 30)이 되었으며, 1948년 제헌국회 부의장(1948. 8. 4~1949. 7. 2)에 선출되었고, 이후 국회에서 ‘외군 철퇴 요청 결의안’ 상정을 주도하였다. 1949년 국회프락치사건에 관련되어 징역 8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에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출옥하여 월북하였다. 1956년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상무위원 겸 집행위원이 되어 평화 통일 사업을 하다가 1959년 반동분자로 몰려 숙청되었다고 전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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