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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402200
한자 鄭鎭瑾
영어음역 Jeong Jingeun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석계리 824[구소석2길 21]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전홍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출신지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석계리 824[구소석2길 21]지도보기
성별
생년 1907년 9월 29일연표보기
몰년 1984년 7월 25일연표보기
대표경력 제헌국회의원

[정의]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제헌국회의원.

[활동사항]

정진근은 상북보통학교와 서울보성고보를 졸업하고, 일본 와세다대학 정치학부 정경과를 졸업하였다. 일본 유학시절 독립운동 학생모임에 가입하여 활동하던 중 아버지 정순모(鄭舜謀)와 상의하여 독립운동 자금을 헌납하였다. 이후 독립자금 헌납 사실이 탄로나 일본 경찰의 수배를 받게 되자, 동문이며 독립운동 동지인 윤치영(尹致暎)과 함께 미국으로 망명하고자 하였다.

망명을 위해 상해임시정부에서 미국행 편을 기다리던 중 일본 경찰의 회유에 넘어간 아버지의 권유로 1934년 귀국하였다. 귀국 즉시 서울 종로 자택에서 잠복 중이던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수개월 옥고를 치르고, 일본 경찰의 감시대상 인물에 올랐다.

1939년 정진근은 다시 상해로 망명하였으나, 태평양전쟁 시기에 가족들을 고향 친척들에게 소개시키기 위해 일시 귀국하였다. 그러나 귀국 즉시 또 다시 서울 영등포역에서 잠복 중이던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년 넘는 옥고를 치르고 석방되어 가족들과 낙향하여 지내던 중 해방이 되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무소속으로 제헌국회의원(양산군, 1948. 5. 31~1950. 5. 30)에 당선되었다.

국회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약칭 반민특위)에서 활동하던 중 국회프락치사건으로 반민특위 의원들의 전원 검거 열풍에 휘말리게 되었다. 그러나 학창시절 독립운동 동지였던 윤치영 당시 내무부 장관이 이승만 대통령에게 독립자금 헌납 및 학창시절 독립운동의 공적을 보고하여 국회프락치사건에서 구제되었다. 이후 지역에서 활동하다가 지병으로 생을 마쳤다. 묘소는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상삼리 산26번지에 있다.

[상훈과 추모]

제헌국회의원으로 헌법 제정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69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참고문헌]
  • 『양산시지』(양산시지편찬위원회, 2004)
  • 세계일보: 인물(http://www.segye.com/Peoples/peopleMain.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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