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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계사 제영」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403057
한자 蘇溪祠題詠
영어의미역 Attaches a Subject, Poem Recite in Sogyesa Shrine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경상남도 양산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성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한시
작가 안효진|김사영|이석기
창작연도/발표연도 1950년연표보기

[정의]

1950년 안효진 등이 소계사의 중건 내력과 광주안씨 삼현오충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지은 칠언율시의 한시.

[개설]

「소계사 제영」의 대상이 되는 소계사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소토리에 위치한 광주안씨의 사당이다. 소계사는 소계서원에 딸린 건물로 소계서원은 1783년(정조 7)에 광주안씨 문중에서 태종 때의 유학자인 안몽득과 아들 안우(安宇)·안주(安宙)·안택(安宅) 삼형제, 그리고 임진왜란 때의 공신인 안근(安瑾)·안수(安琇)·안시명(安諟命)·안이명(安以命)·안신명(安信命) 등을 추모하려고 세운 것이다. 소계서원은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다가 1950년에 중건되었다.

「소계사 제영」은 소계서원 중건 시 안효진, 김사영, 이석기 등이 소계사를 중건하게 된 내력을 밝히며, 안몽득의 아들 삼형제와 임진왜란 때의 공신 5명을 합하여 삼현오충(三賢五忠)이라 부르는 광주안씨 인물들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지었다. 이 밖에 1878년(고종 15)에 이능화가 찬한「양산삼현오충가」가 있는데 이는 삼현오충 인물들을 대상으로 이들의 현량함과 충혼을 노래한 것으로 제영시라고 보기는 어려운 한시이다.

[특징]

안효진과 김사영, 이석기의 시는 모두 동일한 운에 칠언율시라는 동일한 형식으로 지어졌다.

[내용]

광주안씨 문중의 사당을 대상으로 하고 있고 지어진 동기도 같으므로, 시의 내용 역시 소계사를 중건하게 된 내력과 광주안씨 문중 삼현오충의 애국혼을 그려내는 데 집중하고 있다. 그 가운데 후손인 안효진의 시를 살펴보면, 수련(首聯)에서는 1950년에 사당을 중건하게 되어 팔현을 모시게 되었다는 작시의 배경을 말하였고, 함련(頷聯)에서는 소계사의 위치가 구포 포구 밖의 천성산 앞임을 말하고 있다.

경련(頸聯)에서는 사당의 건립목적이라 할 수 있는 추원보본(追遠報本)이 오히려 늦어졌음을 한탄하면서 사당의 건립이 향촌 선비들의 중의에 의해 이루어졌음을 말하였다. 결련(結聯)에서는 마지막으로 소계공을 봉숭하기 위해 세워진 이곳 소계사에서 삼현오충의 아름다운 이름을 후세에 길이길이 전하겠다는 다짐을 하였다.

“병인년에 사당을 세운 후 또 다시 인년(寅年)이 되었는데/ 천지에 때가 와서 여기에 팔현을 모시었도다/ 높이 뜬 달로 증험해보니 분명 구포의 포구 밖이고/ 높은 바람 우러러 보니 천성산의 앞이로다/ 남은 후손 근본에 보답함이 어찌 이렇게 늦었던가/ 많은 선비들이 예부터 전해오는 공의 덕화를 논하는도다/ 우리 선조 소계공을 봉숭하는 이곳에서/ 아름다운 이름을 백세토록 이어 전하게 하리라(丙寅祠後又寅年/ 天地時來是八賢/ 證月分明龜浦外/ 高風景仰聖山前/ 殘孫報本今何晩/ 多士論公昔所傳/ 吾祖蘇溪崇奉地/ 遺芳百世繼而傳).”

[의의와 평가]

안효진과 김사영, 이석기의 시 모두 1950년에 지어진 것으로 보아, 해방 직후까지만 해도 서원 등지에서 한시를 짓는 풍습이 여전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안효진의 시는 경련과 결련에서 전(傳)이라는 같은 글자를 운자로 사용하여 한시 작법의 틀을 어기고 있다. 안효진은 이 시를 지으면서 형식보다는 내용으로 추원보본의 뜻을 전하는데 치중하였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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